성범죄 저지른 의사, 면허취소 왜 못하나?

2020-08-19 14:34
취소 사유에 성범죄 포 의료법 개정안 번번이 무산... 최근 5년간 성범죄 의사 611명이나 적발
의사협회 "면허취소는 명예훼손"

#1. 1995년부터 2008년까지 14년간 브라질에 있는 자신의 병원에서 50여 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70대 산부인과 의사 호제르 아비데우마시는 지난 2010년 브라질 법원에서 1심에서 278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자 법원의 판단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지난 2011년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도망을 쳤고, 4년간 도피생활을 하던 그는 브라질과 파라과이 경찰의 합동작전 끝내 붙잡혔다.
그가 가진 의사면허는 당연히 취소되었다.

비단 브라질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해외 대다수 국가에서는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강력하게 제재한다.

우선 독일은 의사가 형사피고인이 되는 경우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면허를 정지하고, 직무 수행과 관련한 위법이 있다고 확정되면 면허를 일시 또는 영구정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다수의 주에서 의사가 환자를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면허를 정지시키며, 형이 확정되면 면허를 취소시켜 면허 재취득을 불가능하도록 한다. 일본도 벌금 이상의 형사처벌을 받으면 형의 경중에 따라 의사면허가 취소되거나 정지된다.
#2. 지난 2007년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홍광식 지원장)는 수면내시경 치료를 받으러 온 여성환자들을 다시 마취시킨 뒤 잇따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당시 41세 의사 A씨에게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를 적용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잘못하면 사람이 치사에 이를 수 있어 철저한 단속이 필요한 마취제를 50개나 갖고 있었고 수사에 한계가 있어 밝혀내지 못했지만, 추가범죄가 있었을 가능성도 추측할 수 있다"며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에게 위험한 마취제를 사용해 성폭행한 것은 의료인으로서의 근본이 안돼 있어 검찰이 한 구형 그대로 징역 7년을 선고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A씨는 현재 다른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의료법상 성범죄는 의사면허 취소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행 의료법상 의사면허 취소 사유는 정신질환자, 마약중독자, 금치산자(현행 피성년후견인제도), 면허 대여, 허위 진단서 작성 및 진료비 부당 청구 등 일부 범죄에만 한정돼 있다. 때문에 의사가 살인, 강도, 성폭행 등으로 처벌을 받아도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의사에 대한 느슨한 면허 규제는 다른 전문직에 비해서도 매우 이례적이다. 변호사, 법무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등 대부분의 전문직은 형사처벌을 받으면 범죄 종류를 불문하고 등록이 취소되거나 자격에 대한 제재가 가해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의사들의 성 관련 일탈 행위는 점차 늘어가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범죄를 저질러 입건된 전문직 4760명 중 의사는 611명(12.8%)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중 강간 및 강제추행으로 검거된 의사는 539명에 달한다. 발생 빈도도 2014년 83명에서 2018년 163명으로 약 2배 증가했다.
성범죄자 의사, 법적 제재 가할 방법은 없나?

현행 의료법 제66조는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때에 보건복지부장관이 1년의 범위에서 해당 의료인의 면허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의료법 시행령 제32조는 ‘비도덕적 진료행위’를 의료인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 중 하나로 보고 있다.

현행법상 보건복지부장관이 의료법 제66조와 의료법 시행령 제32조의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따른 '의료인의 품위 손상'에 성범죄를 포함 해석해, 1년 이내 범위에서 의사 면허 정지를 내릴 수 있는 것이 전부인 것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해당 규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대상을 성폭력특례법상 강간, 강제추행, 미성년자 간음 추행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 때문에 불법 촬영이나 진료실 밖 성범죄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마저도 의사가 성범죄를 저질러 면허 정지를 당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실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의료법 시행령 제32조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자격을 정지당한 의사는 총 74명이었다. 이중 성범죄로 인한 경우는 4명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받은 처분은 전부 자격정지 1개월에 불과했다.

때문에 “현행 의료법을 개정해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한 면허 취소 규정을 추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물론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 개정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만 10여 건의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됐다.
 
의료계의 반대..."명예 실추, 과도한 피해 우려"

당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되는 과정에서 대한의사협회에서 “헌법상 평등원칙을 과도하게 침해해 특정 직업군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과잉규제”라고, 대한병원협회에서 “의료인의 면허취소가 개인 명예실추 등 과도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측면 등을 고려해 의료정책적 관점에서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이 살인,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고 면허취소 처분을 받은 의료인의 성명, 위반 행위, 처분내용 등과 같은 정보를 환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6월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권 의원은 “면허 정지나 취소된 의료인의 정보를 모르고 진료를 받는 것은 환자 권리가 침해되는 것으로, 의료인 면허 규제와 징계 정보 공개를 통해 의사를 비롯한 국민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중요시해야 한다”며 “일부 범죄자 의료인’으로 인해 ‘진정한 의료인’으로서 최선을 다해주시는 분들이 신뢰를 잃지 않도록 (의료법 개정안은) ‘범죄자 의료인 퇴출’과 국민의 ‘의료인 신뢰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라고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이유를 설명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업적 특수성 및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을 고려하여 특정강력범죄를 범한 의료인을 결격사유로 추가하는 개정안의 입법 취지에 공감한다. 그리고 범죄를 저질러 징계를 받은 의료인의 정보를 공개해 의료인의 강력범죄를 예방하고 국민이 안심하고 의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법안 취지 역시 공감한다”며 의료법 일부 개정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대한의사협회는 “헌법상 평등원칙을 과도하게 침해하면서 특정 직업군을 불합리하게 차별하는 과잉규제”라며, 대한병원협회는 “의료인의 면허취소·징벌적 공표행위가 개인 명예실추 등 과도한 피해를 야기할 수 있는 측면 등을 고려하여 의료정책적 관점에서 허용되어서는 않된다”며 여전히 의료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의료계의 반대로 번번히 국회 통과가 무산되었던 ‘의료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이번 21대 국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