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미중 동남아 혈투] 중국앱 지우라고?…"美에만 줄서는 건 모험"

2020-08-19 07:00
미국, 중국 앱 삭제 압력가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들어
거대 무역파트너인 中…"안간힘 다해 중립 지킬 것"

미·중의 디지털 전쟁도 동남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남아에는 특히 중국 출신의 시민들이나 화교들이 많다. 이들은 단순히 비즈니스용이 아니라 중국 내에 있는 친지나 친구들과의 연락을 위해 위챗과 같은 중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최근 중국 앱 사용을 금지하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이 주목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중국 출신의 유학생, 기업인, 이민자들은 동남아 정부들이 중국과 유사한 정책을 취할 수 있다는 우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최근 전했다.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틱톡을 미국 자본에 팔도록 지시했으며, 미국 기업들에 위챗과의 사업을 금지했다. 이런 양대 강대국의 충돌은 동남아 국가들에 무역에서부터 기술, 코로나바이러스까지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경 분쟁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경색된 인도의 경우 일부 중국 앱을 이미 금지했다. 미국의 대표적 동맹인 일본 역시 틱톡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키이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 차관은 지난 6일(이하 현지시간) 기자들에 "미국은 동맹과 파트너국가의 정부와 기업들이 중국의 공산당으로부터 데이터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에 동참해주기를 바란다"면서 "중국의 감사체제와 방화벽 시스템 속에서 데이터는 들어가지만 나오지 않으며 각종 선전은 나오지만, 진실은 들어가지 않은 곳이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물론 미국은 동맹국들에 중국의 앱 제거를 강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 견제를 위해 내세우고 있는 클린 네트워크 이니셔티브에 참여할 것으로 촉구하고는 있다.

전문가들은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 앱 금지에 나서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약소국들은 결국 언젠가는 한 편을 택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싱가포르의 ISEAS-유소프 이샥 연구소의 중국외교정책 부문의 라이 리앙 푹 선임 연구원은 SCMP에 작은 국가들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푹 연구원은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한 채 이끌려가는 경우가 많은 작은 국가들은 중립에 머물고자 할 것이다"라면서 "이들은 어느 한 국가의 시스템과의 단절을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국가도 군사 부문이나 기밀 정보를 다루는 부문에서는 중국 앱 사용을 꺼릴 수는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이었던 필리핀도 중국 앱의 완전한 차단에는 나서지 않는 모양새다. 최근 친중 행보를 보여온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지난 4일 미국의 중국 앱 금지 정책을 따를 의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필리핀 정부는 발언의 자유 등을 이유로 웹사이트나 앱을 금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찬 춘싱 싱가포르 통상산업부 장관은 11일 경제성장률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최근 미·중갈등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찬 장관은 "이제 세상은 완전히 바뀌었다"면서 "싱가포르가 미·중 갈등 사이에 갇히거나 복잡해지는 무역 관계 속에서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우리가 미국에서 사업을 하길 원한다면 왓츠앱을 써야 하며, 위챗은 미국에서 사용을 못 하게 될 수 있다"면서 "이런 종류의 갈등은 향후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피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개인정보 유출과 보안을 문제로 중국 앱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에서는 정보 유출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높지 않은 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조사 기업인 인도차이나 리서치가 18살에서 54살 사이의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온라인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를 표한 이들은 3분의 1에 불과했다는 조사가 나오기도 했다.

SCMP는 "필리핀의 경우에는 10명 중 7명이 소셜 미디어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편리함을 위해서는 보안에 대해서는 특별히 신경을 쓰지는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틱톡의 경우 필리핀의 10대들 사이에서도 크게 유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대부분 동남아 국가의 주요 무역파트너 중 하나다. 미국의 조치에 따르다가 중국 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동남아 국가들의 선택을 더욱더 힘들게 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보건 부문의 리스크를 키우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가장 앞서고 있는 국가 중 하나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만 몰입하다가는 백신을 얻을 기회를 놓치는 것도 아세안 국가들의 친미 행보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신랑망 등 중국 언론은 18일 중국 바이오 제약사 중국의약집단(中國醫藥集團 시노팜)의 류징전(劉敬楨) 회장이 코로나19 백신을 오는 12월 말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이날 전했다.

시노팜의 코로나19 백신 후보가 당국의 승인 절차를 밟고 있으며, 외국에서 진행하는 3상시험이 끝나는 대로 연말에는 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