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코로나19와 기상 이변이 주는 메시지

2020-08-05 14:01

[임병식 위원]



올여름, 인류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코로나19와 기상 이변까지 겹쳐 우울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게 탐욕 때문이다. 5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 사망자는 70만2172명으로 70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는 민낯을 드러내는 여과지다. 콧대 높은 선진국, 미국과 유럽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코로나 사망자 시신을 뉴욕 외딴섬에 무더기 매장하는 장면은 믿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EU 국가도 무기력하긴 마찬가지다. 제러미 리프킨이 찬사를 보냈던 <유러피언 드림>과는 거리가 멀다. 코로나19는 지구촌을 초토화시켰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지 8개월 만이다. 누구도 코로나19가 재앙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일시적인 전염병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코로나19는 평범한 일상과 생태계를 흔들어 놓았다. 인류는 그동안 누려왔던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홍수, 폭염, 태풍 등 기상 이변이 더해져 고통은 배가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은 물바다로 변했다. 한국은 43일째 폭우 속에 있다. 기습적인 폭우로 지금까지 12명이 숨지고 14명이 실종됐다. 일본 규슈는 지난달 폭우로 70명이 숨졌다. 중국은 국가 재난 상태다. 지금까지 사망이 158명, 이재민은 5500만명을 넘어섰다. 이재민 수가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다. 재산 피해액도 1444억 위안(약 24조6000억원)에 달한다. 무엇보다 쌴샤(三峽)댐 붕괴가 우려된다.

반면 유럽은 불볕더위로 신음하고 있다. 스페인 북부 산세바스티안은 42도를 기록, 폭염에 휩싸였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다. 이탈리아 14개 도시에는 폭염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프랑스는 3분의1에 달하는 101개 지역에 폭염 경보가 발령됐다. 얼음 왕국 러시아 시베리아도 예외는 아니다. 고온으로 산불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미국은 허리케인으로 동부에서만 3명이 숨지고 270만 가구가 정전됐다. 코로나19도 벅찬 마당에 기상재해까지, 세계는 고통스러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코로나19와 기상 이변이 보내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그칠 줄 모르는 탐욕에 대한 마지막 경고다. 욕망을 절제하고 자연과 공존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필요 이상 소비하고 생산하면서 자연을 파괴해왔다. 옥수수 사료를 더 얻기 위해 아마존 산림을 불태우고, 자동차 속도를 더 내겠다며 제주 중산간 삼나무 숲을 베고, 편하다는 이유로 1회용 플라스틱을 쏟아내 무고한 바다생물을 죽였다. 탐욕의 종착지는 공멸이다.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새삼 화제다. 36년 전 개봉됐음에도 코로나19 팬데믹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탐욕과 파괴, 재앙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코로나 사피엔스>에서 김누리 교수는 “인간과 자연이 화해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가 인간화되지 않으면 22세기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최재천 교수는 자연과 절제된 접촉을 하고, 생태중심 경제활동을 주문했다. 장하준 교수는 성장 중심 경제에서 벗어나 생명, 공공, 복지가 중심이 되는 패러다임으로 전환을 제시했다. 관통하는 메시지는 자연과의 공존이다.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심각한 중병에 처했다. 자연은 무한정 파내고 할퀴어도 새살이 돋는 화수분이 아니다. 이미 자기 치유 능력을 상실했을지도 모른다. 독일 대학생 83%는 소비할 때 죄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비행기 타는 것을 죄악시 여기는 ‘풀룩샴’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또 유럽에서는 녹색당이 원내정당에 진입한 지 오래다. 녹색당을 귀찮은 환경단체 정도로 여기고, 소비를 미덕으로 배운 우리와 대조된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충고를 무시했다가 죽는다. 코로나19와 기상 이변은 너무 높이 날지 말라는 최후 통첩이다. 우리가 스스로 멈추지 못하자 강제로 멈춰 세운 것이다. 자연이 주는 신호를 흘려듣는다면 공멸은 물론이고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다. 최근 ‘한국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은 한국은 온난화 속도가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넘게 빠르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개발을 만능으로 알아온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수도권 중심 정책은 아쉽다. 4일 정부는 서울과 수도권에 주택 13만2000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용적률을 500%까지 상향하고, 층수도 35층에서 50층으로 완화하기로 했다. 수도권 집값을 잡고 주거안정을 꾀한다는 것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인지 묻고 싶다. 자연을 거스르고 투기꾼과 개발업자만 배불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예상했던 대로 건설 관련 주식은 일제히 급등했다. 자연과 지방은 소외된 근시안적인 정책이라는 생각이다.

올해 처음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앞질렀다. 수도권 인구는 2596만명(50.1%)으로 비수도권 2582만명을 넘어섰다. 관련 통계가 만들어진 1970년 이후 처음이다. 수도권 인구는 1970년 913만명에서 50년 새 1683만명 늘었다. 같은 기간 비수도권 인구 증가율과 비교하면 무려 16배 빠르다. 반면 지방은 갈수록 피폐하다. 전국 228개 기초단체 가운데 소멸 위험지역은 93곳, 올해는 105곳으로 절반에 육박하고 있다.

그런데 수도권에 또 대규모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태릉골프장은 녹지공간이나 다름없다. 그 자리에 아파트를 건립하는 발상이 공감을 얻으려면 지역민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서울시립대 정석 교수는 “마구잡이로 땅속을 헤집고, 대규모 택지개발과 아파트를 건립하는 바람에 생태계는 심각하게 파괴됐다. 코로나19와 기상 이변은 그 결과물”이라면서 개발지상주의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다.

자연과 화해하고 공존하는 삶은 불가능할까. 분명한 점은 대규모 개발과 대량 소비가 더는 미덕이 아닌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자각이다. 코로나19와 기상 이변이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지금, 인류는 멸망과 공존이란 갈림길에 서 있다. 어느 길을 선택할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변화를 원한다면 네가 그 변화가 되어라”고 했다. 나부터 변하자.

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전 국회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