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국 뉴스인문학] 통영이 570개의 섬?… 8월8일 '섬의날' 비밀의 여행
2020-08-03 14:23
세계 4위의 섬나라
한국은 '섬나라'다. 3,300여개의 섬을 가진 나라로 세계에서 4번째로 꼽히는 다도국(多島國)이다. 섬은 섬이지만 섬뿐인 것은 아니다. 섬은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고, 관광과 휴양의 국토자원이며, 독도에서 보듯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해양영토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인 섬들은 그러나 그간 뭍과는 다른 역외(域外)로 여겨져온 감이 있다.
2019년 8월8일은, 얼굴 없는 섬들과 이름 없는 섬들과 쓸쓸하고 적막한 이땅의 많은 섬들에겐 뒤늦게 찾아준 '생일'이 됐다. 그 전해 3월에 도서개발촉진법이 개정됨에 따라 이날이 '섬의 날'이 된 것이다. 첫해 생일상은 전라남도 목포의 삼학도에서 차렸다.
그런데 왜 하필 8월8일을 섬의날로 지정했을까. 이 날짜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을까. 올해를 기준으로 보자면 이 날은, 입추에서 하루 지난 날이고, 말복에서 일주일 앞선 날이다. 더위에 지쳐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정에 드는 날쯤 된다. 이 때 바다를 못 보면 1년 내내 후회할 것 같은, 후텁지근한 복날 혹서(酷暑)기의 길목을 잡았다. 여름피서 관광 대목과 연결한 센스다.
8월8일의 비밀
다른 풀이도 있다. 숫자 8을 옆으로 눕히면 무한대를 뜻하는 기호가 된다. 그러니까, 섬은 무한대의 상상과 무한대의 가치와 무한대의 여운을 지녔다는 얘기다. 섬은 사실, 바닷물 위로 솟아오른 부분만이 보일 뿐 그 아래, 저 바다의 바닥까지 깊숙이 닿은 그 바탕과 몸집이 있다. 실상은 바다의 깊이보다 더 키가 큰 거인이다. 위의 몸집이 작은 섬이라고, 전체가 다 작으란 법도 없다. 그러니, 섬은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고 많다. 상상과 가치와 여운은 거기에서 나온다.
섬, 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 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 하면서
섬에 한번 가봐라, 그 곳에
파도 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달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 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 게 뭔가
삶이란 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눈 밝혀야 하리
안도현의 '섬'
이 섬은 어쩐지 불편하다. '섬'이 아니라, 육지의 강박증이 따라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라고 주문하는 말 속에는, 섬에 갇혀 있는다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함부로 섬이니 자유니 하면서 여행자의 객기를 부리지 말라는 충고가 살짝 들어있다. 거기 하룻밤 파도 소리 속에 앉아 있으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거다.
섬은 자유다
이런 말 또한 일리가 있지만, 이 말은 섬의 말이 아니라 섬에서 딱 1박 하고 튀어나온 사람의 말에 가깝다. 까닭은, 자신이 섬이 아니라 곧 육지로 나가야할 존재이기에, 그 구류를 사는 기분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의 주소가 육지이고 육지로 나갈 형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섬은 곧바로 감옥이 될 수 밖에 없다. 객기로 불쑥 감행한 여행이기에, 그 객기를 후회하며 섬에서 줄행랑칠 수 밖에 없는 접시물 속같은 인내심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난 투철하게 하룻밤 고민해 봤거든 하는 정도의 기분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섬이 되어본 것은 아니지 않을까. 섬은 애당초 그런 감정조차 없다. 천년을 그 '하루'보다도 더 느긋이 보내온 이력이 있다.
섬의 생일은 섬이 주인공인 날이다. 많은 이에게 섬은 늘 뭍에서 바라보고 외부에서 내다보고 지나가며 스쳐보는 존재였다. 섬은, '관점'이다. 섬은 익숙하고 굳은 관점을 획기적으로 바꿔보도록 하는, 놀라운 스승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섬은, 바다에 갇혀 있는 외로운 죄수처럼 보인다. 도망칠 데도 없는 빠삐용처럼 보인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천형(天刑)처럼 저렇게 갇혀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나그네의 시선이며 과인(過人)의 기우일 뿐이다. 섬 안에서 보면, 길이 360도 거의 무한대로 나있는 자유의 나그네다. 바다가 크고 넓다지만, 사실은 섬들의 밑둥이 들어올리고 있는 작은 접시물일지도 모른다. 섬은 늘 바다보다 클 수 밖에 없다. 죄수가 아니라, 바다의 신이다. 이렇게 섬을 봐야 '섬의날'이 예사롭지 않은 날임을 알게 되리라.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