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국회 밖 이상한 협치

2020-07-30 17:34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






문재인 대통령이 21대 국회가 개원하는 자리에서 행한 연설에서 야당에 다시 한 번 ‘협치’를 제안했다. 하지만 여당이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가 개원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내년 4월로 예정된 보궐선거에서 ‘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여당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강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코로나19의 성공적인 방역으로 급상승했던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부동산 가격의 폭등으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폭락하면서 ‘데드크로스’마저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의 ‘협치’ 주문과는 무관하게 현실의 정책에서는 전혀 의도치 않은 ‘협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치와 외교는 여당이, 경제는 야당이 각각 담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협치’를 가장 희망하는 의제가 ‘남북합의서’의 국회비준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남북대결을 정체성의 일부로 끊임없이 확인하는 야당에게 ‘남북합의서’의 공동 비준은 자기부정을 의미한다. 더욱이 미국이 마땅치 않게 바라보는 남북관계 개선에 야당이 동조할 이유도 없다. 야당으로서도 북·미관계의 종속변수나 다름없는 남북관계가 대결노선으로 전환된다면 국정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발판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협치’에 응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남북협력은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진전시켜야 하는 여당 프로젝트이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당초 의도와는 전혀 무관하게 어느덧 ‘야당 대선후보 키우기’ 프로젝트로 변질되고 있다.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아 임명된 검찰총장은 ‘살아 있는 권력도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덕담 섞인 격려를 ‘살아 있는 권력만 수사’하는 뚝심으로 변환시켜 여당의 유력한 ‘후계자’를 장관에서 밀어냄으로써 여당과의 갈등을 잔뜩 증폭시켰다. 이에 여당이 검찰총장 힘빼기에 진력하면서 검찰 개혁은 방향을 잃고 있고, 현직 검찰총장은 불과 몇 달 사이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야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부상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중점사업인 검찰 개혁은 인사 실패에 이어 공수처 출범마저 지연되면서 야당의 의도대로 오리무중이 되고 있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경제 분야에서는 사실상 기재부를 통한 야당 대행체제가 정권 출범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대 기재부장관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좌초시키고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기업(재벌)중심의 공급주의로 복원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 첫해 최저임금 16.4% 인상에 대한 기재부의 보완책은 소상공인과 영세중소기업을 위한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이었다. 지원대상은 ‘경제적 약자’라는 점에서 옳았지만 방법은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의 확립, 임금 격차의 해소, 기술탈취 근절 등을 통해 이들의 자생능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소득주도성장 전략에 반하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대통령의 경제철학이 경제정책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퇴임하는 그에게는 야당 영입 여부에 관한 기자 질문이 던져졌고,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는 그가 대선 후보로도 오르내리고 있다. 지금은 누구도 ‘소주성’을 입에 담지 않는다.

기재부의 야당 친화성은 두 번째 장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기재부는 재난기본소득 지급에서 마지막까지 지급범위 70%를 굽히지 않으면서 이를 회의록에 남길 것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부처 내부는 물론 은행 등 유관 기관에 지원금을 국고로 환수할 것을 독려하는 등 정책효과의 극대화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여당은 기재부를 견제·견인하고자 하지만 재난지원금 지급범위를 둘러싼 당정청 회의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설득이 아니라 호통으로 제압하려는 모습밖에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경멸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부동산정책의 연이은 실패가 급기야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급락으로 이어지면서 국토부와 여당은 제대로 된 수요대책 한번 실행해 보지도 못하고 결국 공급확대정책으로 선회했다. 투기수요 억제대책에서 핵심을 이루어야 할 투기수익의 환수는 시도도 해보지 못하다가 최근 23번째 부동산 대책에 포함되었다. 7월 15일 오전 ‘그린 뉴딜’을 발표한 기재부가 오후에는 ‘그린벨트 해제’의 바람몰이를 시작했다. 오전에 지은 집을 오후에 허물려 했다. 다행히 대통령의 결단으로 그린벨트 해제는 없던 일이 되었지만 ‘투기 광풍’은 숨고르기를 할 뿐이다. ‘행정수도 완성’이라는 여당의 다소 뜬금없는 제안은 수도권 부동산가격 안정이 아니라 투기판의 확대를 가져올 조짐을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 야당은 ‘주택 100만호 공급’ 제안으로 판을 더욱 키우고 있다. 결국 부동산정책도 부동산 재벌 및 투기꾼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야당의 페이스로 넘어가고 있다.

인간사회가 총체적이므로 정부정책도 총체적이어야 한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서 대한민국이 선방을 넘어 ‘소부장 2.0’으로 오히려 판을 키우며 공세로 반전할 수 있게 된 바탕에는 사상 초유의 ‘부처 간 협력’이 자리하고 있다. 부동산대책은 일자리대책, 노후대책, 출산장려대책 등을 모두 아우르는 정책조합이 필요하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는 정책결정에서 건전한 상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정책의 혼선과 난맥이 심각할수록 ‘사람 중심’의 자기 정체성을 되새길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