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칼럼] '기본소득 유토피아'에 관한 솔직보고서
2020-07-28 18:48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과 관련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학계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가 몇 년 전부터 있었지만,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의 지급을 전후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다. 일부 지자체를 중심으로 특정계층에 대한 한시적인 현금지원제도를 기본소득이라고 칭하고는 있으나, 보편적인 완전한 기본소득은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일정수준 이상 정액의 현금을 자산소득 조사나 기여 등 아무런 조건 없이 지속적으로 지급되는 것이어야 한다. 일각에서 제시되고 있는, 전체 국민에게 1인당 월 30만원을 매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를 위해 필요한 180조원가량 재원 조달의 불가능성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반대 견해가 있지만, 재원 조달 이전에 기본소득에 대한 사상적 배경이 다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개념의 역사적 원류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1516년)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아내의 바가지에 마음을 상할 이유가 없고, 아들의 가난을 염려하지 않고, 딸의 결혼지참금을 걱정하지 않으며, 나이 들어 일을 못하게 되더라도 아직 일을 하고 있는 사람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손대대의 생활과 자신의 행복이 약속되어 있어서 즐겁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는 그 책이 나온 지 500년이 지난 2020년에도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다. 그런 유토피아를 현대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제도가 기본소득이라 할 수 있다.
1960년대 유럽 등 선진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도 2차대전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자동화가 진전되어 미래의 일자리가 걱정되고, 1968년 로마클럽 보고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의 무분별한 물질 중심 성장주의에 따른 환경파괴와 자원과 에너지의 고갈 위험으로 지구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본소득 논의는 코로나19에 의하여 제기되고 있는 지난 60년간의 맹목적 성장주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그렇지만, 기본소득제 도입 필요성의 전제가 되는 경제사회적 환경은 그리 무르익은 것 같지는 않다.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른 일자리 감소 우려도 코로나19에 따른 취업자 수의 감소 요인을 빼면 그리 진행되고 있지 않다. 고용정보원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플랫폼경제 종사자 수도 전체 취업자 수의 2%를 넘지 않고 있고, 노동소득분배율도 2017년 62.0%에서 2019년에는 65.5%로 다시 상승했다. 무엇보다도 혁명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자면, 국민들의 공동체의식이 충분히 성숙되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기존 조사연구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의 공동체의식이 유럽, 미국 등 경제선진국뿐만 아니라 미얀마 등 저개발국과 비교해서도 낮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특히 근로소득세 면제자 비율이 38.9%(2018년 기준)나 되는 현실에서 보편적인 기본소득제를 시행할 수 있는 재원 조달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8년 기준으로 16.7%에 이르는 빈곤인구를 선제적으로 축소하기 위해서는 보편적인 정액의 기본소득보다는 선별적인 보충적 소득지원제도가 동일한 예산조건에서는 더 우월함이 명확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침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시기에 기존의 사회복지제도와 대부분 대체가 쉽지 않은 기본소득 도입에 필요한 재원 마련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