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전향’ 한마디에…사상 검증장으로 변질한 이인영 인사청문회

2020-07-24 10:12

“‘나는 주체사상을 버렸다. 더는 주체사상 신봉자 아니다’라고 하신 적 있습니까.”

귀를 의심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에서 ‘사상 전향’을 묻는 질의가 등장했다.

이기명 고(故) 노무현대통령후원회장이 칼럼을 통해 “통일부 장관 청문회를 지켜보며 또 땅을 쳤다. 묻고 듣는다는 청문회. 차라리 귀를 막고 싶었다”라고 밝힌 것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질문자는 북한 외교관을 하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었다.

그는 자신은 대한민국에 와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사상전향을 했다고 강조하며, 이 후보자의 사상 전향 공개선언 여부를 물었다.

탈북민 출신이자 초선 의원이 4선 국회의원은 물론 여당(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신인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사상 전향’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대북관, 주체사상 등은 반드시 공개적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후보자의 사상검증은 필요하다.

하지만 ‘사상 전향’ 요구는 이미 이 후보자가 북한의 최고 통치 이념인 ‘주체사상’을 따르고 있다고 전제한 셈이다. 대한민국의 4선 의원이 주체사상 신봉자였고 이런 인물을 서울 구로구갑 주민들이 국회의원으로 뽑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송영길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도 “사상 검증은 필요할 수 있지만, ‘사상 전향’이라면 주체사상 등 특정 사상이 있다고 전제하는 발언이어서 논리의 모순이 있다”고 꼬집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등으로 힘차게 달렸던 한반도 평화의 열차는 1년이 넘게 멈춰있고, 재가동 시점도 불투명한 상태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에 투자했던 기업인들은 정부의 ‘대북정책’을 믿고 투자에 나섰다가 하루아침에 길바닥으로 내앉았다. 더 큰 문제는 관련 사업들이 언제 재개될지도 모르고, 재개된다고 해도 다시 일어날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번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향후 한반도 평화의 열차를 다시 움직일 수 있는 구상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였어야 한다..

그러나 태 의원이 쏘아 올린 ‘전향’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사청문회는 ‘사상 검증장’으로 변질했고, 정책 검증은 뒷순위로 밀렸다. 이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여부를 앞둔 현재 인사청문회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면 정책 검증보다는 ‘사상 검증’, ‘사상 전향’, ‘여야 대립’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다뤄지고 있다.

통일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의 ‘색깔론’ 공방이 우리 국민 나아가 국가 통일 안보를 위한 정책 검증 시간을 갉아먹은 셈이다.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