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잘나가던 '대구 능금주스'는 왜?

2020-07-06 16:11
권대영 한국과학기술한림원 농수산학부장

[사진=아주경제DB ]

식품분야는 1970년대만 해도 어떻게든 공장에서 만들기만 해도 큰돈을 벌었다. 찐빵을 소위 산업화한 모식품의 호빵만 하여도 큰돈을 벌었다. ○○당을 포함한 몇몇 빵집들은 공장형 빵을 만드는 데 앞다투어 경쟁하였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1990년대 들어와서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대부분 망했다. 물론 식품의 주기능이 칼로리 섭취 후 일을 하는 데 있었는데, 1990년대는 소비자가 칼로리 그 이상을 원한다는 사회의 요구를 생산으로만 대처한 결과이다.

우리나라 식품산업은 1990년대 이후에도 제조와 개발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물론 일부 대기업은 새로운 시대 변화의 흐름을 알고 이에 대응해 산업주의 경향을 탈피하려 노력하였지만, 정부와 특히 학계는 산업화와 기술 개발에만 매진해 왔다. 사실 식품제조 기술은 선진국에서도 1980년대 이후 큰 진척은 없었고,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거의 근접하여 필요하면 못 만드는 기술이 없다. 그런데도 식품산업에서의 할 일이 마치 산업화·실용화가 모두인 양 착각하여 많은 돈과 세금이 들어갔다.

당시에 대표적으로 산업화 기술만이 우선이라며 추진된 사업이 대구 능금주스 개발이다. 좋은 사과는 일반 상품으로 팔고 품질이 열악한 낙과(落果) 등을 가공하면 농가의 부가가치 소득도 올리고, 국민들은 사과주스도 마실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취지에서 개발된 것으로, 1990년대 초에는 농협 마트 등에서 많이 팔렸다. 당시 농림부 관리가 TV와 라디오에 나와서 연일 자랑하였다. "좋은 사과는 상품으로 나가고 품질이 떨어진 낙과를 이용하여 능금주스를 개발, 농어민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고 홍보하였다. 이러한 방송이 나간 후 능금주스 소비는 확 떨어져 정말 감쪽같이 사라지고 대신 외국의 사과 주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소비자, 특히 젊은 주부는 낙과로 만든 사과 주스를 자기 아이들에게 마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덕분에 글로벌기업이 한국시장에 들어오게끔 시장만 개척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1990년도 이후에 내가 근무했던 한국식품연구원을 비롯, 정부가 기업에 기술이전하여 기업이 성장하는 것보다 망하게 하는 사례가 더 많을 것이다. 이처럼 식품산업은 제조와 가공기술 개발만 갖고 되는 시장이 아니다.

식품산업이 제조만 갖고 되는 산업이 아닌 또 하나의 이유는 식품산업이 기술만 갖고 되는 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약이나 전자산업과 같이 물질이나 알고리즘은 확실하게 보호되지만 식품 소재원료나 제조기술의 보호벽은 그다지 높지 않다.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 맛과 문화로 승부하는 산업이라서 얼마든지 특허를 피해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만들어 시장을 개척해도 대기업이 나중에 미투 제품을 만들어 경쟁 제품을 죽이고 시장을 잠식하는 경우가 많다. ‘맥콜’과 같이, 어떤 경우는 미투 제품을 만들어 시장 자체를 죽여버리는 경우도 있다. 소비자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제품만 만든다고 해서 시장에서 절대 발전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기업만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이 식품산업과 시장이다.

산업화 이후 식품시장은 소비자의 선택권이 매우 중요하다. 맛, 건강, 신뢰, 문화, 재정 등 식품을 선택하는 데 고려할 것이 매우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식품산업만큼 다양성이 요구되는 산업도 없다. 소비자의 요구가 다양하기 때문에 대기업 하나로서 소비자의 요구에 다양하게 반응할 수 없다. 수많은 중소업체가 필요하면서 동시에 세계를 리드할 대기업이 필요한 것이다.

미래 식품산업은 제조, 기술, 제품, 생산성과 같은 하드웨어적 요소보다도 건강, 안전, 신뢰, 브랜드, 맛, 문화, 관광 등 수많은 소프트 파워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