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호이! 호이!'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와 나눈 이야기
2020-07-04 05:00
만화가 김수정 작가는 1983년 4월 22일부터 10년 동안 만화잡지 ‘보물섬’에 ‘아기공룡 둘리’ 이야기를 연재했다.
남극에서 빙하에 갇힌 채 한국으로 떠내려 둘리는 우이천에서 철수와 영희에게 발견된 후 고길동 집에 더부살이를 한다. 철수·영희 외에도 희동이, 도우너, 또치 등과 함께 좌충우돌 일상을 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TV’에서 펭수의 남극유치원 1기 선배로 등장해 ‘호이!’라는 손짓 한 번에 순간 이동을 하는 초능력을 보이는가 하면 "라떼는 빙하 타고 다녔지"라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둘리 아빠'에서 동화작가로 변신한 김수정 작가가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A. 2009년도에 NEW 둘리 제작이 끝나고 얼음별 대모험 제작사들이 모여서 '방부제 소녀들의 지구 대침공'이라는 제목으로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다가 중단됐어요. 그 뒤에 2012년부터 ‘모두 어디로 갔을까?’라는 동화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그림 작업까지 거의 7년 정도 걸렸어요.
Q. 그 이후에 둘리 관련 작업은 안 하신 건가요?
A. 못했죠. 책을 내기까지 7년 이상 걸리다 보니까 할 수가 없었어요.
Q. ‘모두 어디로 갔을까?’의 배경이 캐나다이고 주인공 이름도 김수정 작가의 딸 이름인 시하(영어명 세라)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네, 제 딸 이름이 시하이고 이 동화를 처음 쓰게 된 이유도 딸 때문이었어요. 딸이 만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딸이 태어나기 전에 그려진 제 만화에 빠져들었어요. 그러다가 딸이 자기를 소재로 한 만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딸을 위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풍경을 신기해 하는 딸의 모습을 글과 만화로 표현했죠.
A. 못했죠. 책을 내기까지 7년 이상 걸리다 보니까 할 수가 없었어요.
Q. ‘모두 어디로 갔을까?’의 배경이 캐나다이고 주인공 이름도 김수정 작가의 딸 이름인 시하(영어명 세라)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네, 제 딸 이름이 시하이고 이 동화를 처음 쓰게 된 이유도 딸 때문이었어요. 딸이 만화를 보기 시작하면서 딸이 태어나기 전에 그려진 제 만화에 빠져들었어요. 그러다가 딸이 자기를 소재로 한 만화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딸을 위한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던 중에 캐나다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풍경을 신기해 하는 딸의 모습을 글과 만화로 표현했죠.
Q. 동화를 본 딸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우리 딸이 지금 고2인데, 이야기 소재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따왔어요. 시간이 많이 흘렀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성숙해졌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Q. 언제부터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셨나요?
A. 모든 걸 좋아하지만 특히 그중에서도 아이들을 더 좋아해요. 동물도 새끼들을 더 좋아하고요. 아이들을 소재로 작업을 하다 보면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고, 순수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Q. 어떤 만화를 좋아하나요?
A. 간혹 어렸을 때 봤던 만화 중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것들이 있는데, 이제 구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어요. 그런 만화 중에서 다시 한번 보고 싶은 것들이 꽤 많아요.
Q. 이번에 동화를 집필하면서 둘리를 그릴 때와 무엇이 달랐나요?
A. 지금까지는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 글을 썼어요. 만화는 대사 위주로 움직이는데, 동화는 글로써 상황을 다 설명해야 되는 거예요. 만화를 그리면서 구상해왔던 것을 글로 표현하려다 보니까 오래 걸렸죠. 글을 쓴 뒤에는 이야기가 진부하다고 생각해서 지우느라 애를 먹었어요. 그림으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는 걸 글로 표현하려다 보니까 쉽지 않았죠.
Q. 둘리가 올해로 37살이 됐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둘리를 보면 어떠한 기분이 드나요?
A. 일러스트화되거나 애니메이션화된 건 최근에 나온 둘리예요. 그중에서도 디지털화된 건 제 손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 많아요. 근데 30년도 넘은 옛날 원고를 보면 감회가 새로워요. 마감에 쫓겨서 밤을 새고, 실수해서 화이트로 지우고 했던 것들이 엊그제 일처럼 느껴지는데, 시간이 빠르다는 걸 실감해요.
Q. 펭수를 통해 아기공룡 둘리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습니다. 기분이 어떤가요?
A. 내가 볼 때는 펭수랑 아무 관련이 없는데, 둘리가 단지 남극 선배라는 것 하나만으로 둘리가 주목 받고 있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요.
Q. 둘리를 통해 얼마나 성장했나요? 둘리를 그리기 전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뤘나요?
A.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둘리를 그리면서도 뭔가 아쉽고 부족했다고 생각했어요. 잘된 것보다 잘 안된 것들이 남아요.
Q. 아기공룡을 소재로 했던 이유가 뭔가요?
A. 그때만 해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의인화한 그림들이 많았어요. 외국에는 ‘스누피’나 ‘톰과 제리’ 같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서도 만화가 강철수 선생이 ‘돌돌이’라는 강아지 그림을 그렸고요. 저는 흔하지 않고, 남들이 안 그렸던 것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룡을 생각했죠. 그때 당시 사회적으로 만화에 대한 심의가 강해서 만화를 자유롭게 그리지 못했어요.
심의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원시시대 공룡이 노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하려다 보니까 만화가 박수동 선생이 ‘고인돌’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공룡이 현대로 오는 과정을 머리가 빠질 정도로 고민하다가 얼음 속에 있던 공룡이 한강으로 오는 걸 구상했어요.
Q. 고길동이나 마이콜, 철수, 영희, 희동이와 같은 사람이 나오는 건 문제가 없었나요?
A. 그때 당시 만화 캐릭터인 아이가 건방진 행동을 하면 안됐어요. 아이가 못된 소리를 해서도 안 됐고요. 근데 동물인데 뭐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심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한테는 감지덕지거든요. 그것 때문에 동물인 둘리를 주인공으로 했는데, 그 뒤에도 심의에서 많이 걸렸어요. 그래서 수정을 많이 했죠. 도우너 같은 경우에는 외계에서 왔잖아요. 그게 외계에서 온 아이가 아니라 사람인 아이가 “길동아” 그러면 되겠어요? 안되죠. 약간의 수를 쓴거죠.
Q. 둘리의 롤모델이 있나요?
A. 둘리의 롤모델은 없어요. 박수동 선생의 ‘고인돌’ 같은 경우 롤모델이 미국의 조니 하트의 ‘원시인’이라는 만화였어요. 고인돌은 거기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은 걸로 알고 있는데, 둘리는 롤모델 같은 것 없이 심의를 피해갈 방법으로 머리를 굴리다 보니까 나온 거예요.
Q. 제 이름이 둘리의 초능력 ‘호이’와 같아서 '둘리'라는 별명을 얻곤 했습니다. 초능력을 호이로 정한 이유가 뭔가요?
A. 좀 다르게 해보고 싶었어요. ‘이얍!’이나 ‘으라차!’ 같은 건 너무 뻔하잖아요(웃음). 나중에 보니까 호이는 중국말로 “좋아!”라는 뜻이더라고요.
Q. 둘리는 육식공룡입니다. 근데 둘리의 엄마는 초식공룡인 이유가 뭔가요?
A. 만화를 그리다 보면 작가가 어느 한 부분에서 완벽하지 못해요. 처음에 케라토사우르스를 둘리의 모델로 했어요. 케라토사우르스는 티라노사우르스와 같은 과로 굉장히 사나운 공룡인데 아기니까 귀엽게 묘사했어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엄마 부분이 나오는데, 엄마는 푸근하고 후덕해야 된다는 생각만으로 그렸는데 크고 순하고 예쁜 공룡이 나온 거예요. 그때는 둘리가 케라토사우르스라는 걸 까먹고 있었죠. 그러다 보니까 엄마가 초식공룡으로 나왔어요.
Q. ‘아기공룡 둘리’에서는 둘리 엄마가 초록색인데 ‘얼음별 대모험’에서는 분홍색이에요. 이유가 있나요?
A. 얼음별 대모험에서의 실수를 바로 잡으려고 둘리의 엄마도 육식공룡으로 갔던 거예요. 근데 나중에는 ‘원래대로 가자‘ 하고 초식공룡으로 했어요(웃음).
Q. 둘리의 결말은 어떻게 됐나요?
A. 둘리는 결말이 없어요. 사건이 해결되는 스토리물 같은 경우에는 결말이 있는데, 둘리는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둘리의 끝을 잘 몰라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끝난 게 아니니까요. 인터넷에서 나오는 둘리의 결말은 마지막으로 그린 부분이에요. 나중에 둘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이어갈 수도 있는 거죠.
Q. 김수정 작가의 상상력과 영감은 어디서부터 나오나요?
A. 누구든지 상상력은 가지고 있는데 실천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예요. '이런 걸 떠올렸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는 하면 돼요. 근데 보통 사람들은 잘 안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 상상력이 나오면 일단 한번 해봐요.
Q. 한국에서는 상상력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답을 내려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A. 사실 그게 문제예요. 누군가의 생각을 잘라버리는 것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 어른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상상하는 걸 멈추지 않도록 놔두라고 얘기를 해요. 부모들은 “공부해야 되는데 엉뚱한 짓 하고 있냐”고 해요. 물론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려면 많이 놀게 하는 게 중요해요. 놀다 보면 위험을 하나씩 헤쳐나가는 지혜가 나오는데, 그게 상상력의 뿌리예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며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방법을 찾거든요.
Q. 작가님의 딸에게는 공부와 노는 것 중 무엇을 우선시하도록 하나요?
A. 저는 우리 딸한테 공부하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안 해도 엄마가 하니까, 굳이 저까지 ‘시하야 공부 안하니?’라고 할 필요는 없거든요. 저는 비교적 놀라고 해요. 놀면서 상상하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걸 이루니까 공부하라고 하지는 않아요.
Q.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가 아닌 불리고 싶은 호칭이 있나요?
A. 아직 생각은 안 해봤지만 어찌됐건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건 만화가이기 때문에 그냥 ‘만화가 김수정’이라고 하면 제일 좋아요.
Q. 둘리의 아빠로 알려졌습니다. 둘리 아빠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떠신가요?
A. 제가 둘리를 그리기 전에는 ‘달자 아빠’라고 불렸었어요. 둘리보다 먼저 나왔던 만화 중에 ‘오달자의 봄’이라고 있었는데 그게 81년도에 나왔고, 83년도에 둘리가 나왔거든요. 그때는 오달자가 여고생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서 그 이름을 따서 ‘달자 아빠’라고 불렸는데 둘리가 나오니까 달자 아빠라는 호칭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둘리 아빠’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붙었어요.
Q. 둘리 아빠가 고길동이 아니냐는 말도 많이 하거든요.
A. 둘리 아빠는 고길동이 아니죠. 둘리는 거기서 더부살이를 했으니까, 아빠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아빠는 저 김수정이죠(웃음).
Q. 둘리가 나오기 전에는 어떤 만화들을 그렸나요?
A. 둘리가 나오기 전에 ‘홍실이’라는 만화가 새소년에서 연재돼서 나왔고 ‘신인부부’와 ‘날자 고도리’라는 직장인 만화가 연재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1남 4녀 막순이’라는 만화가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우리 딸이 ‘1남 4녀 막순이’를 되게 좋아했어요. 왜냐면 노는 게 자기랑 비슷하거든요(웃음). 1남 4녀 막순이를 보면서 낄낄대며 웃더라고요. 막순이를 보면서 자기를 소재로 한 만화가 없냐고 물어본 것 같아요.
Q. ‘길동이가 불쌍해지면 어른이 된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저 같은 경우 만화를 그릴 때 모든 걸 아동에 초점을 두지 않아요. 애들은 애들 나름대로 행동을 하면 되고, 어른들은 어른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있어요. 길동이는 시종일관 어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요. 둘리는 아이의 입장에서 선물도 받고 싶고 어딘가 가고 싶은 거고요. 점점 커가면서 고길동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거죠.
둘리를 연재할 때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초등학생이 “길동이를 골탕 먹여주세요”라고 쓴 거예요. 길동이가 미워 죽겠다는 거죠. 그게 둘리의 입장에서 보는 길동이의 모습이었어요. 그런 아이가 분명 커서는 “길동이가 천사네”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Q. 만약 둘리, 도우너, 또치 같은 아이들이 작가님 집에 들어오면 어떻게 할 건가요?
A. 에이, 나는 못 키워. 저는 쫓아내요. 생각해보세요. 내가 만화가인데 만화 원고에 먹물 엎지르고 더럽게 하면 두고 보겠어요?
Q. 둘리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서 작가님과 닮은 것이 있나요?
A. 사람들은 나보고 고길동 씨를 닮았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마이콜이 작가님 모델이죠?”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아니에요. 둘리가 자서전을 쓸 때 나오는 김파마를 제일 닮았어요(웃음).
Q. 동화작가와 만화가의 삶 중 뭐가 더 잘 맞나요?
A. 당연히 만화가죠. 동화는 이번에 처음 썼는데, 공부도 나름 하긴 했어요. ‘이런 세계가 있구나’라는 걸 느꼈는데 그래도 제 본성은 만화가예요.
Q. 대중에게 사랑 받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대중의 심리는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캐릭터를 만드는 입장에서 작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야 돼요. 작가가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신경을 쓰다 보면 오버 페이스가 될 수 있어요. 일단은 작가 스스로가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푹 빠져야 돼요. 그러다 보면 그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죠. 작가가 캐릭터를 사랑하면 대중들도 서서히 이심전심으로 오게 되어 있어요.
캐릭터는 살아 있는 생명체예요. 그 생명을 사람들이 같이 공유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 공감이 필요해요. 펭수 같은 경우도 처음에 봤을 때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귀여운 것만 가지고 있으면 식상해요. 근데 펭수가 그동안의 캐릭터와 달랐던 건, 탈 인형은 굉장히 많았지만 그 속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건 없었어요. 근데 펭수 같은 경우는 인형 속에서 감성과 액션이 그대로 전해져서 교감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펭수 하나로만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하나의 캐릭터로만 가다 보면 식상해요. 분명 아기 펭수를 비롯해서 하나의 가족처럼 확장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Q. 둘리도 처음에는 둘리 하나만 그렸다가 확장이 된 건가요?
A. 그렇죠. 처음에 캐릭터 잡을 때는 둘리, 희동이, 고길동, 영희, 철수 정도였다가 점점 캐릭터들이 확장되면서 이야기의 폭도 넓어졌죠.
Q. 흔히 우리가 예시로 들 때 철수와 영희를 말합니다. 둘리와 연관이 있나요?
A. 철수와 영희는 본래 우리 교과서에 나왔었어요. 그리고 고길동은 홍길동에서 영감을 얻었고요. 한국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쓰는 흔한 이름을 그대로 옮겨온 거예요. 홍길동이라고 하면 너무 흔하니까, 고길동이 된 거예요.
Q. 무엇이 김수정 작가에게 영감을 주나요?
A. 작가에게는 환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캐나다로 이주를 하고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그 경험들이 동화로 나왔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일본 작가들을 선망했어요.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만화가들의 울타리가 좁았죠. 저는 어쩌다 보니 캐나다로 갔는데, 자연스럽게 현지의 풍경이 작품 속에 들어왔어요.
Q. 웹툰에 도전해보실 생각은 없나요?
A. 웹툰은 작업 환경이 힘들어요. 둘리를 그릴 때 월간지를 맡고 있었는데 마감을 위해 십수 년간 살아왔거든요. 마감을 한다는 게 굉장히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어요. 근데 웹툰은 매주 마감을 해야 되잖아요. 페이지도 많고. 우리가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그래서 웹툰은 어렵고, ‘모두 어디로 갔을까’와 같은 요정 시리즈 동화를 3부작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적어도 한 작품은 그림책으로 할 예정이에요.
Q. 만화가로서의 김수정, 소설가로서의 김수정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김수정, 사람으로서의 김수정은 어떠한 사람인가요?
A. 김수정은 김수정이에요. 가족들에게 창피함을 주거나 돈만 밝히는 사람도 아니고, 만화를 그리면서 인기를 위해 비열해지는 사람도 아니에요. 집에서 가부장적인 사람도 아니고요. 가장 소시민적 사람이 나예요.
Q. 김수정 작가의 꿈은 무엇인가요?
A. 표현하고 싶은 걸 최대한으로 만족스럽게 표현해서 작품에 담아내는 거예요. 그리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동안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게 꿈이에요.
Q. 마지막으로 둘리와 함께 자란 어른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어른이 됐지만 둘리를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순수하다는 거예요. 그러한 순수성과 감성, 동심을 계속 잃지 않고 가져가 줬으면 좋겠어요.
A. 내가 볼 때는 펭수랑 아무 관련이 없는데, 둘리가 단지 남극 선배라는 것 하나만으로 둘리가 주목 받고 있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요.
Q. 둘리를 통해 얼마나 성장했나요? 둘리를 그리기 전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뤘나요?
A. 저뿐만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만족하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둘리를 그리면서도 뭔가 아쉽고 부족했다고 생각했어요. 잘된 것보다 잘 안된 것들이 남아요.
Q. 아기공룡을 소재로 했던 이유가 뭔가요?
A. 그때만 해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의인화한 그림들이 많았어요. 외국에는 ‘스누피’나 ‘톰과 제리’ 같은 강아지나 고양이를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아요. 우리나라에서도 만화가 강철수 선생이 ‘돌돌이’라는 강아지 그림을 그렸고요. 저는 흔하지 않고, 남들이 안 그렸던 것들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룡을 생각했죠. 그때 당시 사회적으로 만화에 대한 심의가 강해서 만화를 자유롭게 그리지 못했어요.
심의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원시시대 공룡이 노는 모습이 떠올랐어요. 원시시대를 배경으로 하려다 보니까 만화가 박수동 선생이 ‘고인돌’을 그리고 있더라고요. 공룡이 현대로 오는 과정을 머리가 빠질 정도로 고민하다가 얼음 속에 있던 공룡이 한강으로 오는 걸 구상했어요.
A. 그때 당시 만화 캐릭터인 아이가 건방진 행동을 하면 안됐어요. 아이가 못된 소리를 해서도 안 됐고요. 근데 동물인데 뭐 어쩌겠어요? 그렇다고 해서 심의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한테는 감지덕지거든요. 그것 때문에 동물인 둘리를 주인공으로 했는데, 그 뒤에도 심의에서 많이 걸렸어요. 그래서 수정을 많이 했죠. 도우너 같은 경우에는 외계에서 왔잖아요. 그게 외계에서 온 아이가 아니라 사람인 아이가 “길동아” 그러면 되겠어요? 안되죠. 약간의 수를 쓴거죠.
A. 둘리의 롤모델은 없어요. 박수동 선생의 ‘고인돌’ 같은 경우 롤모델이 미국의 조니 하트의 ‘원시인’이라는 만화였어요. 고인돌은 거기에서 약간의 힌트를 얻은 걸로 알고 있는데, 둘리는 롤모델 같은 것 없이 심의를 피해갈 방법으로 머리를 굴리다 보니까 나온 거예요.
Q. 제 이름이 둘리의 초능력 ‘호이’와 같아서 '둘리'라는 별명을 얻곤 했습니다. 초능력을 호이로 정한 이유가 뭔가요?
A. 좀 다르게 해보고 싶었어요. ‘이얍!’이나 ‘으라차!’ 같은 건 너무 뻔하잖아요(웃음). 나중에 보니까 호이는 중국말로 “좋아!”라는 뜻이더라고요.
Q. 둘리는 육식공룡입니다. 근데 둘리의 엄마는 초식공룡인 이유가 뭔가요?
A. 만화를 그리다 보면 작가가 어느 한 부분에서 완벽하지 못해요. 처음에 케라토사우르스를 둘리의 모델로 했어요. 케라토사우르스는 티라노사우르스와 같은 과로 굉장히 사나운 공룡인데 아기니까 귀엽게 묘사했어요.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엄마 부분이 나오는데, 엄마는 푸근하고 후덕해야 된다는 생각만으로 그렸는데 크고 순하고 예쁜 공룡이 나온 거예요. 그때는 둘리가 케라토사우르스라는 걸 까먹고 있었죠. 그러다 보니까 엄마가 초식공룡으로 나왔어요.
Q. ‘아기공룡 둘리’에서는 둘리 엄마가 초록색인데 ‘얼음별 대모험’에서는 분홍색이에요. 이유가 있나요?
A. 얼음별 대모험에서의 실수를 바로 잡으려고 둘리의 엄마도 육식공룡으로 갔던 거예요. 근데 나중에는 ‘원래대로 가자‘ 하고 초식공룡으로 했어요(웃음).
Q. 둘리의 결말은 어떻게 됐나요?
A. 둘리는 결말이 없어요. 사건이 해결되는 스토리물 같은 경우에는 결말이 있는데, 둘리는 그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둘리의 끝을 잘 몰라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끝난 게 아니니까요. 인터넷에서 나오는 둘리의 결말은 마지막으로 그린 부분이에요. 나중에 둘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이어갈 수도 있는 거죠.
Q. 김수정 작가의 상상력과 영감은 어디서부터 나오나요?
A. 누구든지 상상력은 가지고 있는데 실천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예요. '이런 걸 떠올렸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는 하면 돼요. 근데 보통 사람들은 잘 안 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 상상력이 나오면 일단 한번 해봐요.
Q. 한국에서는 상상력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답을 내려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A. 사실 그게 문제예요. 누군가의 생각을 잘라버리는 것이거든요. 저 같은 경우 어른들을 만나면 아이들이 상상하는 걸 멈추지 않도록 놔두라고 얘기를 해요. 부모들은 “공부해야 되는데 엉뚱한 짓 하고 있냐”고 해요. 물론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지만,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려면 많이 놀게 하는 게 중요해요. 놀다 보면 위험을 하나씩 헤쳐나가는 지혜가 나오는데, 그게 상상력의 뿌리예요.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며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방법을 찾거든요.
Q. 작가님의 딸에게는 공부와 노는 것 중 무엇을 우선시하도록 하나요?
A. 저는 우리 딸한테 공부하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왜냐하면 내가 안 해도 엄마가 하니까, 굳이 저까지 ‘시하야 공부 안하니?’라고 할 필요는 없거든요. 저는 비교적 놀라고 해요. 놀면서 상상하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걸 이루니까 공부하라고 하지는 않아요.
Q.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가 아닌 불리고 싶은 호칭이 있나요?
A. 아직 생각은 안 해봤지만 어찌됐건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건 만화가이기 때문에 그냥 ‘만화가 김수정’이라고 하면 제일 좋아요.
Q. 둘리의 아빠로 알려졌습니다. 둘리 아빠라는 말에 대해서는 어떠신가요?
A. 제가 둘리를 그리기 전에는 ‘달자 아빠’라고 불렸었어요. 둘리보다 먼저 나왔던 만화 중에 ‘오달자의 봄’이라고 있었는데 그게 81년도에 나왔고, 83년도에 둘리가 나왔거든요. 그때는 오달자가 여고생들 사이에서 굉장히 인기가 좋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서 그 이름을 따서 ‘달자 아빠’라고 불렸는데 둘리가 나오니까 달자 아빠라는 호칭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둘리 아빠’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붙었어요.
A. 둘리 아빠는 고길동이 아니죠. 둘리는 거기서 더부살이를 했으니까, 아빠는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아빠는 저 김수정이죠(웃음).
Q. 둘리가 나오기 전에는 어떤 만화들을 그렸나요?
A. 둘리가 나오기 전에 ‘홍실이’라는 만화가 새소년에서 연재돼서 나왔고 ‘신인부부’와 ‘날자 고도리’라는 직장인 만화가 연재되고 있었어요. 그리고 ‘1남 4녀 막순이’라는 만화가 단행본으로 나왔는데 우리 딸이 ‘1남 4녀 막순이’를 되게 좋아했어요. 왜냐면 노는 게 자기랑 비슷하거든요(웃음). 1남 4녀 막순이를 보면서 낄낄대며 웃더라고요. 막순이를 보면서 자기를 소재로 한 만화가 없냐고 물어본 것 같아요.
Q. ‘길동이가 불쌍해지면 어른이 된 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저 같은 경우 만화를 그릴 때 모든 걸 아동에 초점을 두지 않아요. 애들은 애들 나름대로 행동을 하면 되고, 어른들은 어른들의 자연스러운 행동이 있어요. 길동이는 시종일관 어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요. 둘리는 아이의 입장에서 선물도 받고 싶고 어딘가 가고 싶은 거고요. 점점 커가면서 고길동의 입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거죠.
둘리를 연재할 때 독자들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초등학생이 “길동이를 골탕 먹여주세요”라고 쓴 거예요. 길동이가 미워 죽겠다는 거죠. 그게 둘리의 입장에서 보는 길동이의 모습이었어요. 그런 아이가 분명 커서는 “길동이가 천사네”라고 이야기할 거예요.
A. 에이, 나는 못 키워. 저는 쫓아내요. 생각해보세요. 내가 만화가인데 만화 원고에 먹물 엎지르고 더럽게 하면 두고 보겠어요?
Q. 둘리에 나오는 캐릭터 중에서 작가님과 닮은 것이 있나요?
A. 사람들은 나보고 고길동 씨를 닮았다고 하는데, 아니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마이콜이 작가님 모델이죠?”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아니에요. 둘리가 자서전을 쓸 때 나오는 김파마를 제일 닮았어요(웃음).
Q. 동화작가와 만화가의 삶 중 뭐가 더 잘 맞나요?
A. 당연히 만화가죠. 동화는 이번에 처음 썼는데, 공부도 나름 하긴 했어요. ‘이런 세계가 있구나’라는 걸 느꼈는데 그래도 제 본성은 만화가예요.
Q. 대중에게 사랑 받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대중의 심리는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캐릭터를 만드는 입장에서 작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야 돼요. 작가가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신경을 쓰다 보면 오버 페이스가 될 수 있어요. 일단은 작가 스스로가 자기가 만든 캐릭터에 푹 빠져야 돼요. 그러다 보면 그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죠. 작가가 캐릭터를 사랑하면 대중들도 서서히 이심전심으로 오게 되어 있어요.
캐릭터는 살아 있는 생명체예요. 그 생명을 사람들이 같이 공유하는 건데, 그러기 위해서 공감이 필요해요. 펭수 같은 경우도 처음에 봤을 때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귀여운 것만 가지고 있으면 식상해요. 근데 펭수가 그동안의 캐릭터와 달랐던 건, 탈 인형은 굉장히 많았지만 그 속에서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건 없었어요. 근데 펭수 같은 경우는 인형 속에서 감성과 액션이 그대로 전해져서 교감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펭수 하나로만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하나의 캐릭터로만 가다 보면 식상해요. 분명 아기 펭수를 비롯해서 하나의 가족처럼 확장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해요.
Q. 둘리도 처음에는 둘리 하나만 그렸다가 확장이 된 건가요?
A. 그렇죠. 처음에 캐릭터 잡을 때는 둘리, 희동이, 고길동, 영희, 철수 정도였다가 점점 캐릭터들이 확장되면서 이야기의 폭도 넓어졌죠.
Q. 흔히 우리가 예시로 들 때 철수와 영희를 말합니다. 둘리와 연관이 있나요?
A. 철수와 영희는 본래 우리 교과서에 나왔었어요. 그리고 고길동은 홍길동에서 영감을 얻었고요. 한국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쓰는 흔한 이름을 그대로 옮겨온 거예요. 홍길동이라고 하면 너무 흔하니까, 고길동이 된 거예요.
A. 작가에게는 환경이 중요한 것 같아요. 캐나다로 이주를 하고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그 경험들이 동화로 나왔어요. 우리가 어렸을 때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일본 작가들을 선망했어요. 그때만 해도 해외여행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만화가들의 울타리가 좁았죠. 저는 어쩌다 보니 캐나다로 갔는데, 자연스럽게 현지의 풍경이 작품 속에 들어왔어요.
Q. 웹툰에 도전해보실 생각은 없나요?
A. 웹툰은 작업 환경이 힘들어요. 둘리를 그릴 때 월간지를 맡고 있었는데 마감을 위해 십수 년간 살아왔거든요. 마감을 한다는 게 굉장히 피를 말리는 작업이었어요. 근데 웹툰은 매주 마감을 해야 되잖아요. 페이지도 많고. 우리가 소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그래서 웹툰은 어렵고, ‘모두 어디로 갔을까’와 같은 요정 시리즈 동화를 3부작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적어도 한 작품은 그림책으로 할 예정이에요.
A. 김수정은 김수정이에요. 가족들에게 창피함을 주거나 돈만 밝히는 사람도 아니고, 만화를 그리면서 인기를 위해 비열해지는 사람도 아니에요. 집에서 가부장적인 사람도 아니고요. 가장 소시민적 사람이 나예요.
A. 표현하고 싶은 걸 최대한으로 만족스럽게 표현해서 작품에 담아내는 거예요. 그리고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동안 이 시간을 잘 활용해서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게 꿈이에요.
Q. 마지막으로 둘리와 함께 자란 어른이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A. 어른이 됐지만 둘리를 좋아한다는 건 그만큼 순수하다는 거예요. 그러한 순수성과 감성, 동심을 계속 잃지 않고 가져가 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