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남수의 열린경제] 국가부채 증가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20-06-22 18:32
나랏빚 효자론'에 지금 '좋아요'하는 까닭
[최남수의 열린 경제] 찬반 논란이 거센 이슈일수록 그 논의를 살펴보면 ‘톱다운’ 방식이다. 이미 해당 사안에 대한 입장을 정해놓고 이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게 다반사이다. 실제 데이터나 상황을 본 다음 판단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부채 증가에 대한 논란이다. 반대하는 쪽이나 찬성하는 쪽이나 이미 국가부채에 대한 선입견을 정해놓고 의견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글에서는 제기된 요인 하나하나를 찬찬히 따져본 다음 국가부채에 대해 결론을 내려 보려한다.
두말할 나위 없이 지금의 국가부채 증가는 코로나19 사태 속의 전 세계적 현상이다. 포퓰리즘에 의해서가 아니라 위기 극복을 위한 비상조치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미 G20 국가들의 재정지출 규모는 GDP의 11%에 달해 금융 위기 당시의 3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맥킨지는 그 결과 올해 세계 각국 정부의 재정적자 폭이 GDP의 12~15%인 9조~11조 달러로 늘어나고 2023년에는 25조~30조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IMF도 올해 선진국들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위기 이전 예측치인 105%를 상회한 122%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11조7000억원 규모의 1차 추경과 23조9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에 이어 규모를 더 늘린 35조3000억원 규모의 3차 추경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세 차례에 걸친 추경 편성에 따라 국가채무는 2019년 본예산 기준 740조8000억원에서 840조2000억원으로 늘어나고,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37.1%에서 43.5%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국가부채 증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재정 파탄으로 가는 길인가? 위기 소방수로서의 합당한 역할인가? 재정지출 확대에 대한 반론의 근거로 주로 제시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미래의 재정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은 나랏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논리. 언뜻 보아 크게 무리가 없는 주장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 위기가 전례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재정지출의 긴박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의견이다. 현재의 경제 위기는 수요 급감과 공급 충격이 동시에 겹쳐 사실상 경제가 정지되다시피 한 위기이다. 신중한 조치보다 지나칠 정도의 공격적인 대응이 바람직하다는 데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작은 정부’를 지지해온 대표적 보수 경제학자인 그레그 맨큐 하버드대 교수조차 미국 정부가 국민에게 1인당 1000달러를 지급하는 등 적극적으로 재정지출을 해야 한다고 촉구하며, 지금은 정부 부채 증가에 대해 걱정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했을 정도이다. 대표적인 시장경제 옹호론자인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가 1995년 “야전 참호에서는 모두가 (정부의 적극적인 경제 개입을 지지하는) 케인스주의자가 되는 것 같다”며 비상 상황에서의 재정지출 확대를 인정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특히 방만한 재정 운용을 억제하기 위해 미리 정부 씀씀이(재정수지 및 정부부채)의 제한선을 정한 ‘재정준칙’을 운용하고 있는 EU도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한시적으로 준칙 운용을 중단하는 등 재정지출에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
국가부채 비율이 오르면 반드시 신용등급은 떨어지는 것일까? 그 타당성도 진단해봐야 한다. 재정지출 확대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OECD 평균치인 109.2%에 비해 크게 낮다는 점을 강조한다. 신용등급이 위험하다는 주장과 재정 여력이 충분하다는 입장. 어느 쪽이 맞을까? 신용등급 하락 우려를 제기하는 쪽은 우리나라가 기축 통화국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재정여력론’을 견제한다. 기축 통화는 국제 결제나 금융거래 시 주로 쓰이는 미국 달러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을 가리킨다. 이들 통화를 발행하는 나라는 부채비율이 높아도 신용등급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중요한 점은 부채비율의 높낮이와 신용등급 사이에 뚜렷한 비례적 상관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싱가포르와 캐나다는 부채비율이 각각 126%와 89.7%로 한국보다 크게 높지만, 국가신용등급은 최고 수준인 AAA이다. 거꾸로 러시아, 인도네시아, 터키, 페루는 국가부채 비율이 한국보다 낮지만 신용등급은 BBB나 BB의 부실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재정의 씀씀이를 절제하는 ‘재정규율’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재정의 회복을 위한 노력도 당연히 병행돼야 한다. 국가부채의 증가는 잘못 관리되면 민간투자를 위축시키고 향후 물가 상승의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미 입장을 밝힌 것처럼 이미 다른 나라들이 운용하고 있는 ‘재정준칙’을 도입해 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재정준칙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의 상한선을 정해놓고 이를 지키도록 강제화하는 제도이다. EU의 경우 재정적자를 GDP의 3% 이내, 공공채무를 60% 이내로 제한하는 준칙을 운영하고 있다.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어서면 매년 초과분의 20분의 1을 감축하도록 하고 있다. 크로아티아, 키프로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등 국가에 이 규정이 적용됐다. 다만, 심각한 경기침체 등 중대한 상황이 발생하면 이 규정의 적용을 잠정적으로 면제하는 예외 조항을 두는 등 유연하게 실행되고 있다. 즉, 강제성과 유연성을 조화시키고 있다.
지금은 ‘큰 정부’의 시대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민간 부문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황에서 민간의 마중물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재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적극적 재정 투입으로 경제 회복을 물꼬를 열어나가되 불요불급한 예산의 구조조정 등을 통해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정부 앞에 주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