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조명' 켜진 美..."성 소수자 직장 내 차별은 위법”

2020-06-16 14:10
민권법 제7조 '성차별 금지'에 LGBT로 불리는 성 수자 차별도 금지
보수성향 강한 대법원에서 나온 '획기적인 사건'이라는 평가 나와

15일(현지시간) 미국 대법원이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해고될 수 없다면서 개인의 성적 성향에 의한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리자 한 성소수자 지지자가 워싱턴DC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프라이드 플래그'(성소수자의 인권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를 펼쳐 들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 무지개 조명이 켜졌다. 동성애자나 성전환자(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해고할 수 없다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성 소수자(LGBT) 근로자들에 대한 직장 내 차별금지가 미국 전역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1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대법원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제7조가 동성애자와 성전환자에게도 적용된다는 판결을 내놨다. 소위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로 불리는 성 소수자들이 개인의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직장에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 1964년 제정된 민권법은 인종과 피부색, 국적과 종교뿐 아니라 성별에 근거해 고용주가 직원을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제7조가 동성애자와 성전환자에게도 적용되는지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도 불법인 '성 차별'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주심인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을 포함해 존 로버츠 대법원장 등 대법관 6명이 찬성 입장을 밝혔고, 3명은 반대 의견을 냈다. 대법관들은 성향은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구성돼있는데, 여기서 성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외신은 평가했다.

찬성표를 날린 고서치 대법관은 "답은 분명하다. 동성애자나 성전환자라는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고용주는 다른 성별의 직원들에게는 묻지 않았을 특성이나 행위를 이유로 그 사람을 해고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성별이 그러한 결정 과정에서 역할을 하는 것은 정확히 민권법 제7조가 금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인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은 직장 고용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

반면 소수 의견을 낸 알리토 대법관은 "성차별의 구체적인 내용은 의회가 법으로 규정해야 할 일"이라며 "대법원이 해석해 판결할 일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로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물론 사생활과 안전까지 위협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성전환자가 새로 바뀐 성에 따라 화장실 또는 라커룸을 이용하거나, 스포츠팀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때 복잡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고서치 대법관은 "우리는 화장실과 라커룸과 같은 시설 이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직장 내에서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을 이유로 해고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라며 반박했다.
 

[사진=AP·연합뉴스]


판결이 나오자 미국 사회는 크게 환호했다. 미국시민자유연합 LGBTQ&HIV 프로젝트 이사인 제임스 에섹스는 "성 소수자 평등을 위한 큰 승리"라며 "성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법에도 어긋난다는 대다수 국민의 인식을 법원이 따른 것"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역시 성명을 내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단순하고 심오한 개념을 확인한 것"이라며 대법원 판결과 뜻을 같이했다. 이어 "누구나 진정한 자아를 두려움 없이 공개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요 외신도 환호하는 분위기다. 뉴욕타임스(NYT)는 성 소수자 단체들이 가장 원하던 성격의 성취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대법원 판결을 치켜세웠다. 이어 "일자리에서 공정한 대우가 이뤄졌다"며 "동성 결혼 합법화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앞서 대법원은 2015년 6월 동성 간 결혼을 합법화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성 소수자 보호에 전환점을 마련했었다.

AP통신 역시 "성 소수자 권리가 보수 성향의 대법원으로부터 거둔 압도적인 승리"라며 이번 판결이 미국 전역에 있는 성 소수자 근로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해 "놀라운 판결이다. 이제 이 판결과 함께 살아야 한다"며 조심스러우면서도 불만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가 임명한 보수 성향의 고서치 대법관이 찬성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또한 11월 대선까지 5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성향 대법관의 변심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워싱턴포스트(WP)는 성적 소수자 권리 운동에 반대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지명한 대법관에 의해 난관에 부닥쳤고, 오는 11월 대선에서도 도전을 맞게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 기독교종교자유단체인 '자유수호연합(ADF)'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진실로 문제가 있다"며 날을 세웠다. ADF는 블로그를 통해 "이번 결정은 혼란을 일으키는 한편, 태생이 아닌 성적 성향에 따라 성을 구체화하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대명사로 동료를 지칭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소송은 동성애자 남성 2명과 성전환자 여성 1명이 실직 후 성적 성향을 이유로 해고돼 차별을 당했다며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