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K-방역의 국제표준화: 기회는 살리는 것이 당연하다
2020-06-15 15:47
아무리 나쁜 일에도 좋은 일이 하나는 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우리나라는 물론 전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고,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전세계가 우리의 코로나19 방역체계에 대해 칭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에 정부가 우리의 코로나19 방역 모델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 길잡이를 발표하였다. 초기 해외 언론의 칭찬에 따른 자기자랑을 넘어, 지난 11일 산업통상자원부는 ‘K-방역모델을 세계 표준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그게 무슨 대단한 일이냐고 호들갑 떤다 하는 분도 분명 계실 거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국제표준이라는 것은 호들갑을 떨어도 될 만큼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전염병 방역체계가 ISO, IEC 같은 국제적 기구로부터 공인을 받아 전세계 방역의 표준 프로세스가 되는 것이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될 부분이다.
보도 이후, 많은 분들이 표준이라는 것은 제품에 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시는데, 제품뿐 아니라 공정(process)에 대해서도 표준화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ISO 9001(품질경영시스템)이나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과 같이 기업의 환경에 맞게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갖추었는지 평가하는 것 역시 표준이다.
또한, 경영학에서 국제표준은 초기 시장장악과 국제시장 선점이라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 수출과 무역의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국제무역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WTO(세계무역기구) 시대, 사라져가던 보호무역주의가 코로나 이후 다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를 타개하는 주요방법 중 하나가 바로 국제표준이다. 만약 우리의 방역 모델이 국제표준이 된다면, 이는 국제적 신뢰의 상승뿐 아니라, 우리 기업의 직접적인 이익 극대화와도 연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제표준의 제정은 새로운 수출동력으로 발현될 수 있다. 우리의 방역체계에 대한 세계언론의 칭찬과 보도가 가져온 기회이다. 인명을 앗아간 전쟁을 가지고 이러한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만, 과거 CNN을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된 걸프전의 폭격 장면은 ‘비디오 게임 전쟁’이라는 별명까지 생겨날 정도로 치밀한 미국의 무기 광고 전쟁이었다. 당시 미국이 자랑한 미사일과 관제시스템을 통한 자위 시스템은 이후 중동지역 및 전세계에 팔려 설치되었을 뿐 아니라 미국은 중동지역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는 헌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과 방역관련 기업들이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다. 다만, 예전처럼 정부의 공명을 위해 우리의 의료진이나 기업을 희생시키는 일이 발생할지 몰라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K-방역의 국제표준화를 위해 우리 정부에게 부탁이 있다.
우선 국제표준은 제안 후에도 빨라야 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조급함에 애꿎은 이들에게 결과를 부추기면 안된다. 또한, 정부 차원의 로드맵을 발표한 것과 같이 정부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3T 과정 중 역학·추적 단계는 자가격리자 등을 효과적으로 추적·관리하기 위한 모바일 앱(app), 전자의무기록(EMR), 역학조사 지원시스템 등이 포함되며, 격리·치료 단계는 확진자 등을 격리하고 치료하기 위한 생활 치료센터 운영,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체외 진단기기의 긴급사용 승인 절차 등 모두 표준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역학·추적·격리 등 주요 단계별 개인정보의 수집·처리 시 적법성, 완전성, 투명성 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개인정보보호 방법 및 절차 등에 대한 표준안 개발도 추진된다. 이는 민간의 영역이 아니다.
이번 로드맵은 우리가 현재 활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방역체계를 모두 국제표준화로 제안하는 것이다. 국제표준은 국제적 신뢰와 관심을 통한 합의(consensus)에 의해 이루어진다. 다른 나라나 다른 회사들이 모두 합의를 해주어야 표준이 될 수 있다. 과거 미국의 걸프전과 같이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접근은 아무리 좋은 방법과 기술이라 하더라도 이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우리의 이익을 버리면서까지 진행하라는 것 역시 아니다. 표준은 시장 선점의 효과가 높으며, 이와 함께 특허기술의 반영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 다양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표준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기업 역시 표준은 특허와 달리 자기의 기술을 빼앗긴다고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표준화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기업은 자사의 특허기술을 표준화할 수 있는 적극성이 요구된다. 이에 정부는 기업의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목표를 세웠으니 너희는 따라라 하는 구태의연한 발상은 더 이상 힘을 얻기 힘들다.
또 하나 우리 정부에게 요청하는 것은 국제표준을 위한 합의를 이루는 데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힘’이다. 합의의 힘을 얻기 위해 지금 당장은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국가 및 기업들과의 ‘외교’가 표준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많이 채택되고 사용되고 있는 것이 표준으로 합의될 가능성이 높기에 우리의 체계가 다수의 국가에서 채택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이 요구된다.
앞서 이야기한 좋은 일에 있어, 코로나가 좋은 일이라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란다. 다만 이 위기를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 새로운 기회를 찾아낼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가 우리 사회에 넘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