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칼럼] 사회적 묵인 강요하는 '코로나 빅브라더'

2020-05-18 18:25

[김재영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교수]




진정되나 싶더니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의 발생과 증가는 우리의 가슴을 또 한번 철렁하게 했다. 다행스럽게도 급격한 지역 내 확산은 나타나지 않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의 정보전달 과정에서 나타난 개인의 사생활 및 취향을 특정하는 정보공개는 새로운 논란을 가져왔다. 실제 이와 관련된 초기 기사들은 확진자의 동선 추적 결과를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기자협회의 감염병 보도 및 인권 보도 준칙에도 어긋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을 부추긴 것이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사소한 개인의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시민단체가 많은데도 이상하게 코로나19와 관련된 침해사례에 있어서는 별로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문제는 공론화되지 않는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형성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지금의 정부 대응이 위기상황에 따른 임시적인 선택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하라리 교수는 역사적으로 위기상황을 극복한 이후에도 동일한 통제와 감시를 지속하였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위기상황 속 임시방편은 사회적 묵인에 따른 체제의 경직성으로 그 방법이 타당한지 신중한 숙고 없이 진행되고, 상황이 지나고 난 이후에도 고착되기 마련이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특수한 상황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에도 이를 사회적으로 묵인하고 용인되는 현실이다.

전세계는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pandemic)을 경험하며, 그 어떤 때보다 정부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은 바로 빅브러더의 출현이다. 빅브러더(Big Brother)는 조지 오웰의 소설인 <1984년>에 등장하는 전체주의 사회 속에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정보를 통제함으로써 영속적인 집권을 기획한 가공의 인물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만 존재하던 빅브러더의 위협(Big Brother is watching you)은 사회적 묵인과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라 언제라도 우리 주변에 나타날 수 있다.
물론 하라리 교수의 기고문에서는 한국과 대만, 홍콩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모범국가로 소개하고 있다. 그 어떤 나라보다 빠른 진단키트 검사와 드라이브스루 방식과 같은 창의적 검진, 실시간 확진자 동선 앱과 같이 시민과 정부가 서로간의 신뢰를 쌓아가는 한국의 모습에 대해서는 본인 역시도 자랑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전세계에 없는 확진자 동선 제공을 위한 역학조사시스템 등은 모두가 열광하였다.

정부 역시 이번 이태원발 확진자 조사를 위해 역학조사시스템을 더욱 고도화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코로나19 발발 초기인 올해 초만 하더라도 확진자 동선 추적을 위해서는 조사관이 관계기관에 하나하나 전화하여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신용카드 사용내역정보 등을 수집하고, 이를 기초로 그 동선을 추적하는 시스템이었다. 반면, 이번 고도화된 시스템은 더욱 진보하여, 확진자가 확인되면 곧바로 앞선 휴대전화 위치정보와 신용카드 사용내역정보를 자동 취합함으로써 단지 10분 이내에 코로나19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해 낼 수 있다 발표하였다.

본래 해당 시스템은 공문서를 통해 진행이 되었지만,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문서를 일일이 작성하고 발송했던 기존 시스템은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인식되었다. 오히려 정보 공개의 지체로 인한 방역 공백 우려가 크다며, 사회적 묵인을 유발하였다. 결국 정부는 위치정보를 가진 기업들이 신속하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자동화하였다. 빠른 처리과정을 위해 개인의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 위험을 검증할 수 있는 부분을 건너뛰게 된 것이다.

이제 역학조사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정보가 이동하며, 질병관리본부가 확진자 정보를 올리고 경찰청이 ‘동의’하는 순간 통신사와 카드사로 요청내역이 전송된다. 원하던 속도는 빨라졌다. 하지만, 중간 과정이 사라지며 프라이버시 침해를 막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시스템의 필요성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 가능성보다 커지면서 논의없이 진행된 것이다.

유사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방송통신 3법(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전기통신사업법, 정보통신망법)에 대한 일부개정법률안 역시 마찬가지이다. 각각 ‘데이터센터 규제법(방송통신발전기본법)’은 재난이 발생할 경우 국민의 소중한 데이터를 지키자는 취지로 민간 데이터센터 역시 국가 재난관리 시설에 포함시키자는 것이고, ‘넷플릭스법(전기통신사업법)’은 급증한 동영상 데이터 트래픽 때문에 국내 인터넷망의 품질이 떨어지지 않도록 통신 품질유지 의무를 부여하자는 것이다. 또한, ‘n번방 방지법(정보통신망법)’은 불법 음란물 유통을 더욱 강력하게 차단하는 개정안이다.

이번 3법 모두 개정 취지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안의 상세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껏 논란의 중심에 있던 문제들로 이러한 개정안이 충분한 공론화와 의견수렴이 이루어지지 않고, 처리하려 한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특히 전 국민적 공분을 사며 제기된, ‘n번방 재발 방지법’은 국회 청원 1호 법안으로 전국민의 관심을 끌었지만, 정작 내용은 초기 청원 내용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국회는 이러한 실천적 부분보다는 n번방 재발 방지법을 처리하였다는 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법의 제정은 강제와 구속을 전제로 한다.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는데 일단 통과시키고 시작하자는 것은 너무 위험한 접근이다. 무언가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이 이야기를 하며, 사회적 묵인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명분은 좋아 보이지만, 아직 해외기업들에 대해서는 법적 집행력도 갖추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처리가 될 경우, 결과적으로 민간사찰, 통신비에 대한 가계지출 증가에 따른 개인과 국내 인터넷 스타트업에 그 부담이 그대로 전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마치 일단 시작하고, 중요한 문제는 다음에 풀어가자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점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는 초등학생들도 안다. 현재의 상황만을 강조하며, 시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바꾸면 된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임시방편의 한계이다. 우리가 내리는 작은 결정 하나도 우리가 살아갈 미래를 형성할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