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1년] ①"3개 품목 중 2개 업계 붕괴"...1년 수출규제에 日 기업만 초토화

2020-06-11 06:00
"마이너스 영업이익 속출" 불화수소·플루이미드 생산 업체 고사 직전
1년간 주가 스미토모 -28.2%·가네카 -25.68%·쇼와덴코 -14.51% 폭락

[그래픽=전미진 기자]


최근 코로나19 사태와 경기 침체로 실각 위기에 빠진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1년여 만에 수출규제 조치를 재개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작년 7월 4일 0시부로 일본 정부는 우리 주력 산업인 반도체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수출 규제를 단행했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이 즉각 국산화와 수입선 다변화 조치로 대응하면서 사실상 해당 전략은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오히려 관련 일본 업계에 역풍으로 돌아왔다. 당시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는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감광재),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이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판매하는 대표적인 일본 기업은 △스텔라케미파 △다이킨공업 △쇼와덴코 △모리타화학공업(비상장)이며, 포토레지스트는 △도쿄오카공업(TOK) △신에쓰화학 △JSR코퍼레이션,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가네카 △스미토모화학 △우베흥산 등이다.

지난 1년간 이들 기업의 주가와 실적을 확인해 보면, 일본이 수출을 제한한 3개 품목 중 2개의 일본 내 산업은 그야말로 초토화 상태다.

10일 도쿄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발표 직전인 작년 6월 28일부터 지난 9일까지 약 1년 동안 일본증시 대표지수인 닛케이지수는 8.53% 증가한 데 비해 같은 기간 수출규제의 영향을 받은 일본 기업들의 상승 폭은 3.5%에 그쳤다.

이 기간 동안 업체별로는 스미토모화학(-28.2%)과 가네카(-25.68%), 쇼와덴코(-14.51%) 순으로 큰 타격을 받은 반면, 도쿄오카공업(55.65%)과 신에쓰화학(24.46%), JSR코퍼레이션(17.81%) 등 포토레지스트 생산업체들의 주가는 올랐다.

우리 정부의 소재·부품 국산화 정책으로 고순도 불화수소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 대한 대(對) 일본 의존도는 대폭 줄었지만, 포토레지스트는 아직 국산화 대체와 양산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우리나라 수출 외에 매출 선이 다양한 대기업의 경우에도 수출규제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

지난해 7월 수출규제 초기 고순도 불화수소 생산업체가 가장 먼저 부진을 겪었으며, 1년 전체를 통틀어서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생산업체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작년 6월 28일 3000엔을 기록했던 스텔라케미파의 주가는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8월 7일에는 18%나 빠지며 2460엔까지 떨어졌다. 규제 이전 스텔라케미파는 LG디스플레이에 순도 99.9999999999%(트웰브나인)의 불화수소를 공급해왔다.

스텔라케미파의 주가는 양국이 사태 해결의 의지를 보인 작년 11월 18일에야 3325엔까지 반등한 후 올해 3000~3100선을 유지하다 우리 정부가 제시한 답변 시한 다음날인 지난 1일 2639엔으로 떨어지며 다시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기체 불화수소를 공급해 왔던 쇼와덴코 역시 수출규제 상황에 따라 증시가 큰 폭으로 오르내렸다.

작년 6월 28일 3170엔이었던 쇼와덴코의 주식은 수출규제가 한창이던 8월 26일 2552엔으로 19.5%나 빠졌다. 이후 양국의 갈등 국면이 해소되던 같은 해 11월 13일 3305엔으로 4.26% 반등한 후 3000엔대에 머물다가 지난 1일에는 다시 2571엔까지 추락했다.

일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생산업체들은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 수출 규제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 국내 생산이 가능했던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일본 정부가 원재료 수입까지 제한하지는 않았기에 약간의 생산라인 증설만으로 쉽게 대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작년 6월 28일 4050엔이었던 가네카의 주가는 수출규제 상황으로 같은 해 8월 26일 3060엔까지 24.44%나 빠졌다. 양국의 갈등 조짐이 다시 격화한 지난 1일에는 2863엔까지 떨어지며 1년 전에 비해 29.5%나 하락한 상태다.

스미토모화학의 타격도 컸다. 수출규제 시작 전 500엔이던 주가는 작년 수출규제 당시 9.4%(8월 13일, 453엔) 급락한 후 올해 6월 1일 다시 339엔으로 추락하며 32.2%나 빠진 상태다.

반면, 일본산 대체가 어려운 포토레지스트 생산업체들의 주가는 지난 1년여간 평균 32.64%나 성장했다.

지난해 7월 중순까지 3주 정도 신에쓰화학과 JSR코퍼레이션의 주가가 4%가량 빠지는 정도에 그치는 등 작년 수출규제가 한창인 당시에도 이들 업체의 타격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화수소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생산업체들의 기업 실적 역시 매우 악화됐다.

스텔라케미파는 작년 2분기 97억3300만엔의 매출과 7억6800만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나, 3분기에는 각각 74억700만엔과 1억2600만엔까지 급감했으며, 올해 1분기에야 89억9800만엔, 7억2700만엔으로 회복했다.

쇼와덴코의 경우 작년 4분기 마이너스 이익을 기록하기도 했다.

작년 2분기 2407억6700만엔의 매출을 낸 쇼와덴코는 당시 384억900만엔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2108억7900만엔의 매출을 기록한 같은 해 4분기에는 영업손실과 순손실이 각각 50억2800만엔과 78억7300만엔에 달했다.

작년 3분기 5543억3900만엔의 매출과 영업이익 401억6900만엔, 순이익 151억7100만엔을 기록했던 스미토모화학은 우리나라에서 플루오린 국산화를 본격화한 지난해 4분기부터 실적이 급격하게 쪼그라들었다.

올해 1분기 스미모토화학은 5750억7100만엔으로 매출 수준을 유지했지만, 98억5500만엔의 영업이익과 66억5500만엔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실적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그뿐만 아니라 스미토모의 한 해 순이익 역시 1년 사이 무려 4분의1로 줄어들었다. 2018년 4월~2019년 3월 당시 1179억9200만엔의 스미토모의 순이익은 2019년 4월~2020년 3월에는 309억2600만엔으로 급감했다.

또 다른 플루오린 생산업체인 가네카의 순이익 역시도 같은 기간 222억4000만엔에서 140억400만엔으로 반토막났다.

작년 하반기 반년 동안 우리나라 수출길이 대부분 막힌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는 코로나19 사태까지 덮치면서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일부 기업들은 일본 정부에 수출규제 원상복귀 조치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모리타화학공업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지난 1월 초순 수출규제가 일부 완화됐지만, 한국 판매량은 이전보다 30% 감소했다"면서 "일본 기업들은 정부에 한국 대기업에 대한 납품 물량을 원상복귀시켜 달라고 요청 중이지만, 한국 기업들이 다시 일본산 소재를 사용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너무 커졌다"며 부정적인 전망을 전했다.
 

작년 7월 12일 일본 됴쿄 경제산업성에서 열린 수출 규제 강화 조치와 관련한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과장급 실무회의 모습.[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