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영의 재팬 플래시] 기시다 얼굴에 감도는 아베
2021-10-05 17:08
日파벌정치의 내막
일본 정치는 당분간 ‘아베 시즌2’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1년 전 사임하고 그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후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마저 물러나면서 아베 시대가 실질적으로 종언을 고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베 군단’의 컴백으로 귀결됐다.
지난달 29일 실시된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승리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재는 4일 중·참 양원 총리지명투표에서 일본 제100대 총리로 선출됐다. 지난해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스가와 맞붙었다가 큰 표 차로 떨어지면서 “기시다는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가 이번에는 아베의 충실한 추종자 역을 자임하면서 대망을 이룬 것이다.
이번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는 파벌 타파를 외치는 소장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아 일본 정치에 지각변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막후 물밑에서는 파벌 간의 합종연횡이 분주하게 작동했다. 그 중심인물은 아베였다. 그의 노련한 정략은 일본 정치의 새로운 기운을 가볍게 찻잔 속의 태풍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번 총재선거에서 파벌정치를 가장 위협한 존재는 고노 다로(河野太郞) 행정규제개혁담당상이었다. 아소파 소속인 고노는 개혁적 성향으로 파벌 내에서는 까탈스러운 존재였지만, 젊은 의원들과 당원, 국민들에게는 압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총재선거는 1차에서 당 소속 의원과 당원 선거인단이 같은 비율로 참가하고, 과반 득표자가 없어 1, 2위 간에 결선투표를 할 경우 의원 표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국민과 당원의 지지를 받는다고 해서 집권당 총재, 곧 총리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아베는 우선 1차에서 고노의 득표를 최소화하는 데 진력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충실한 추종자인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전 총무상의 지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했는데, 이는 그녀의 당선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고노의 표를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분석됐다. 선거결과는 아베의 계산이 적중했음을 보여주었다. 1차 투표에서 예상을 뒤엎고, 기시다가 1표 차로 1위로 결선에 올라간 것이다. 유력 파벌들의 결속 앞에서 파벌 탈피를 내세운 ‘당풍 운동’은 가을바람에 낙엽이 돼 버린 것이다. 고노는 1차에서 당원 투표는 1위였지만, 의원 득표에서는 86표에 그쳐, 기시다 146표, 다카이치 114표에 크게 뒤졌다. 고노 선거캠프에서는 “확실하게 표를 주겠다고 한 의원이 100여 명은 됐는데, 이렇게 배신할 줄은 몰랐다”는 한탄이 터져 나왔다. 기시다와 다카이치 표가 모인 결선투표의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9선 중의원인 기시다는 자민당의 전형적인 정치 가문 출신 세습 정치인이다. 도쿄 시부야구(區)에서 태어났지만, 조부 때부터 3대가 본적인 히로시마현에서 중의원을 지냈다. 통상산업성(현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으로 5선 중의원을 지낸 아버지 기시다 후미타케(岸田文武)의 근무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미국 뉴욕에서 보냈다. 도쿄의 명문 가이세이(開成)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3수에도 도쿄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와세다대학교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장기신용은행에서 근무하다 1987년 아버지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고, 부친이 사망한 뒤 1993년 아버지의 선거구(히로시마 1구)를 물려받아 그해 처음 당선됐다. 이때 함께 당선된 중의원 동기가 아베다.
기시다는 1957년 결성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민당의 가장 뿌리 깊은 파벌인 ‘고치카이(宏池会)’의 회장을 2012년부터 맡고 있다. 그래서 이 파벌은 현재 기시다파로도 불린다. 고치카이는 전통적으로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태평양 외교를 중시해 왔다. 이 파벌이 배출한 역대 총리는 4명으로 기시다가 다섯 번째다. 한·일 수교의 주춧돌을 놓은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김종필-오히라 메모’의 주인공인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1992년 일본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사과한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등이 이 파벌이 배출한 총리들로, 한·일관계에 적잖은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다. 기시다는 외무상이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도출해 냈다. 기시다가 외교정책에서 아베 총리와는 상당히 다른 색깔인데다 파벌이 다른데도 불구하고(아베는 호소다파) 아베 내각에서 장기간 외무상을 지낸 사실에서도 두 사람의 끈끈한 관계가 확인된다.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는 2018년 자민당 총재선거에서도 발휘되었다. 이 선거에서 아베는 총재 3선(집권당 총재가 총리)을 노리고 있었다. 당시 기시다파에서는 젊은 의원들을 중심으로 기시다의 출마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기시다는 입후보를 포기하고 아베 지지를 표명했다. 이때 아베가 3선 이후 다음 총재 자리를 기시다에게 물려준다는 밀약을 했다는 소문이 정계에 파다했다. 그러나 아베가 코로나19 확산과 도쿄올림픽 연기 등으로 곤란을 겪으면서 건강상 이유로 2020년 돌연 총리에서 물러나면서 기시다의 꿈도 엉키고 말았다. 아베의 분신격인데다 니카이파의 지지를 받은 스가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아베는 이번 선거에서 기시다에 결정적 도움을 줌으로써 3년 전 밀약을 지킨 셈이 됐다.
기시다는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으로 ‘적을 만들지 않는 정치인’으로 불린다. 그러나 “여기저기 신경 쓰느라 제대로 된 결정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따라다닌다. 총재선거 유세 기간이던 지난달 25일 한 토론회에서 초등학생이 “새우튀김 꼬리가 질긴데 남겨도 되냐”고 질문했는데 기시다는 “새우 꼬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다. 누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라고 답했다. 보다 못한 사회자가 “나는 먹는다”고 답하라고 재촉하는 웃지 못할 장면이 벌어졌다. 외무상 시절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지방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되어 청중 대부분이 졸고 있었다는 증언도 많다.
파벌정치를 배경으로 승리한 기시다는 내각 출범에 앞서 실시한 당 인사에서 철저한 논공행상, 보은 인사를 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당 요직에는 아베 최측근들이 포진했다. 당 살림과 정책을 총괄하는 간사장에는 아소파의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당 세제조사회장이 임명됐다. 아소파 소속이지만 아베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아마리는 이번 총재선거에서 아베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을 대신해 파벌들의 기시다 지원을 이끌어냈다. 아베의 지지를 받으며 예상을 뛰어넘는 선전으로 고노의 당선을 저지한 다카이치도 당 요직인 정무조사회장 자리를 차지했다. 아베와 함께 고노 돌풍을 잠재운 아소는 당 부총재로 자리를 옮겼다.
4일 내각 출범에 맞춰 발표한 개각에서는 기시다가 독자적인 색채를 내기 위해 나름 애를 썼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오십보백보였다. 내각의 입이자 2인자격인 관방장관에 아베가 추천한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 대신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전 문부과학상이 임명됐다. 마쓰노는 아베와 같은 파벌 소속으로, 아베가 주도하는 ‘일본창생’이라는 보수의원 모임에 참여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다만 대중적 인지도가 낮아 곧바로 아베가 떠올려지는 하기우다보다는 기시다의 사람으로 인식될 수 있는 측면도 있다는 정도다. 하기우다는 경제산업상으로 이동했다.
기시다는 이번 개각에서 20명의 각료 중 13명을 처음 입각하는 인물로 뽑았다. 이번에 신설된 경제안전보장담당상은 니카이파 출신인 3선의 46세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 의원에게 돌아갔다. 그는 기시다와 가이세이 동문으로, 니카이파지만 이번 총재선거에서 1차는 다카이치, 2차는 기시다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의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유임됐고, 재무상에는 아소의 처남인 스즈키 순이치(鈴木俊一) 전 환경상이 발탁됐다.
결국 기시다의 첫 조각(組閣)은 아베의 의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룬다. ‘아베 상왕(上王)’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아즈미 준(安住淳) 국회대책위원장은 “기시다 얼굴을 한 아베 내각이 됐다”고 비판했다.
기시다는 내각을 출범시키자마자 다음 달 7일 혹은 14일로 예정돼 있던 중의원 총선거를 이달 31일로 앞당기는 승부수를 띄웠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총선에서 심판받아 초기에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총재선거 당시 7개 파벌의 3선 이하 젊은 의원 90명이 모여 만든 ‘당풍(黨風) 일신 모임’을 주도했던 후쿠다 다쓰오(福田達夫) 의원을 당 총무회장에 임명한 것이나, 대중적 지지가 높은 고노를 한직이긴 하지만 당 홍보본부장에 앉힌 것도 중의원 선거를 겨냥한 배치로 보인다.
기시다 내각은 외교정책에서도 일단 아베 전 총리의 노선을 전반적으로 계승할 것으로 여겨진다. 미·일관계를 중시하면서, 한국과의 관계에서는 위안부 및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해 아베의 강경한 입장을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높다. 한·일관계와 관련된 부서인 외무성과 방위성 장관들이 그대로 유임된 데다, 수출규제와 관련된 경제산업성에도 아베의 최측근이 임명된 사실 등이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기시다는 정계 입문 이후 줄곧 한·일관계를 중시해 왔고 2015년 아베를 설득해가며 한·일 위안부 합의를 추진한 당사자다. 기시다 내각이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 등을 통해 안정기에 접어든다면 아시아 중시의 전통적 ‘고치카이’의 색채를 반영한 외교정책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아무래도 문재인 정부 임기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새로운 한·일관계는 한국과 일본의 새 정부가 열어갈 과제로 남게 될 것이다.
조윤영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
△이화여대 북한학 석사 △일본 와세다대 국제관계학 석·박사 △뉴시스 도쿄특파원 △<北朝鮮のリアル(북한의 현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