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에 묻히고 싶다"... 백선엽 장군 국립묘지 안장 자격 논란
2020-05-29 14:50
친일·반민족행위 전력으로 찬반 양론 팽팽
국립묘지법 5조 의거 현충원 안장 자격은 갖춰
국립묘지법 5조 의거 현충원 안장 자격은 갖춰
올해로 만 100세를 맞은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그가 사망할 경우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찬반 양론이 맞서고 있다. 그의 친일·반민족행위 전력 때문이다.
백 전 장군은 국립묘지법 5조에 따라 국립서울현충원이나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을 갖춘 것은 맞다.
그는 한국전쟁 초기 전세를 역전하는 계기가 된 ‘낙동강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무훈 등으로 2차례 태극무공훈장을 받았으며, 이외에도 ‘평양전투’와 ‘중공군 춘계공세 저지’ 등 한국전쟁 중 그의 전공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그러한 ‘구국의 영웅’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친일·반민족 행위자'로 분류되기도 한다. 2차대전 당시 조선인 독립군 토벌로 악명 높은 만주군 육군 휘하 ‘간도특설대’에서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장교로 복무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여권 일각에서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다른 곳으로 이장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해당하는 백 전 장군을 국립묘지에 안장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 내용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라도 친일 행적이 있다면 국립묘지에 더는 안장될 수 없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보훈처는 백 전 장군이 사망하면 여분의 장군묘역 자리가 없는 서울현충원 대신 대전현충원에 묘역을 조성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백 전 장군 측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립서울현충원 안장에 대한 약속이 현 정부에서 지켜지지 않을 경우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지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백 전 장군은 1943년 2월 간도특설대의 일원으로서 압록강, 두만강 상류 일대에서 중국 항일 게릴라 토벌에 종사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이 주도한 항일 게릴라에는 중국인, 만주인과 함께 조선인도 포함돼 있었다.
백 전 장군은 1944년 봄, 팔로군(八路軍·1937∼1945년 일본군에 맞선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 중 하나) 토벌 작전에 참가해 정보수집에서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여단장 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간도특설대에 몸담았던 시절에는 독립군과 싸운 적 없다고 했지만 간도특설대 자체는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아야 한다'는 일제 방침에 따라 조직된 특수부대였다.
특히 간도특설대는 백 전 장군이 몸담기 전인 1939년 천보산 전투에서 '동북항일연군'과 교전을 벌인 후 포로로 잡힌 독립군을 고문·살해한 부대로 알려져 있다.
친일·반민족 행위를 조사·연구하는 시민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출간한 친일인명사전의 백 전 장군 관련 기술은 다음과 같다.
"만주국이 초급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중앙육군훈련처에 1940년 3월 입학해서 1942년 12월 졸업하고, 1943년 4월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했다. 자무쓰 부대를 거쳐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 1943년 12월 러허성(熱河省·지금의 허베이·랴오닝성 및 네이멍구자치구의 경계지점에 위치했던 옛 중국 행정구역)에서 간도특설대 소속으로 팔로군 공격작전에 참가했다. 일제 패망 당시 만주국군 중위였다."
이어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간도특설대에서 항일세력을 탄압'했다는 이유로 백 전 장군을 포함했다.
당시 백 전 장군은 "직접 독립군 토벌에는 참여하지 않았다"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위원회는 근거 자료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백 전 장군은 국내에서 출간한 두 권의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복무 사실을 서술했지만, 이를 명확히 반성하거나 사죄하는 내용은 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