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펜데믹, 세계 경제 '일본화' 부추기나
2020-05-29 11:22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세계 경제가 일본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후 디플레이션과 막대한 부채에 짓눌리면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블룸버그는 28일(현지시간) 세계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충격에 대응해 각국이 천문학적인 돈풀기에 나섰지만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상황을 말한다.
1990년대 경제 버블이 터진 후 일본은 수요가 붕괴하면서 디플레이션을 수년 동안 겪었다. 디플레이션이 위험한 건 소비자와 기업들이 앞으로 가격이 떨어질 것을 기대하기 때문에 씀씀이를 미룬다는 점이다. 수요가 더 줄어들고 가격도 더 떨어지는 악순환에 갇히는 것이다.
일본은 디플레에서 탈출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물가를 띄우는 데 고전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주요 7개국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가장 낮다.
경제 일본화의 전조는 선진국 곳곳에서 이미 보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저금리를 유지했는데도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한참 밑돌았다.
설상가상 올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는 글로벌 경제를 마비 상태에 빠뜨리면서 수요를 얼어붙게 하고 국제유가에 하방압력을 가하면서 물가를 떨어뜨리고 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소비자물가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디플레가 장기화하면 앞으로 물가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더 강해질 수 있다. 일본처럼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수십 년 동안 유지해도 디플레 사고를 깨뜨리기 어렵게 돼 만성적인 성장 부진에 시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에 맞서 각국이 유례없는 부양책을 쏟아내면서 재정적자와 공공부채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 역시 일본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부추긴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세수가 위축하자 국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채 발행으로 충당했다. 그 결과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1990년 67%에서 지난해 235%까지 올랐다.
최근 FT는 각국 정부들이 전례없는 도구들을 총동원해 부양에 나서면서 일본 경제의 고질병으로 꼽히는 막대한 공공부채와 재정적자가 만성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증세나 정부 지출 삭감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이런 긴축 정책은 성장률을 짓누르게 된다. 일본이 소비세를 인상할 때마다 번번이 경기 침체에 빠진 이유이기도 하다.
고미네 다카오 일본경제연구센터 연구고문은 "1997년까지만 해도 일본은 경제 마력을 되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뒤이어 찾아온 금융위기와 세금 인상은 이런 희망을 산산조각 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