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알리바바 도시’ 중국 항저우의 '슬기로운 소비생활'
2020-05-14 06:00
2900억어치 소비쿠폰 수차례 나눠 발급···2분 만에 동났다
베이징대 MBA도 연구한 항저우 디지털 소비쿠폰 효과
1위안짜리 쿠폰이 3.5위안 소비 창출···소상공인 살렸다
종이쿠폰, 현금다발 뿌리기보다 '과학적·합리적'
베이징대 MBA도 연구한 항저우 디지털 소비쿠폰 효과
1위안짜리 쿠폰이 3.5위안 소비 창출···소상공인 살렸다
종이쿠폰, 현금다발 뿌리기보다 '과학적·합리적'
"항저우시 정부의 6차 소비쿠폰이 오늘 저녁 8시 발급된다. 40위안어치를 소비하면 10위안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 3장이 들어있는 전자 쿠폰지갑으로, 물량은 총 300만개다. 전자 쿠폰지갑을 발급받은 주민은 항저우 시내 지정된 소상공인, 자영업자 가게에서 알리페이를 통해 결제해야 할인 쿠폰을 사용할 수 있다. 쿠폰 사용 유효기간은 일주일이다."
노동절 연휴를 앞두고 지난달 30일 항저우에서 6차 소비쿠폰이 발행될 것이라는 공지가 떴다. 항저우 주민들 사이에선 이날 저녁 8시 알람을 맞춰 놓고 준비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너도나도 소비쿠폰을 ‘쟁취’하겠다며 열을 올렸다. 앞서 항저우가 4차 발급한 쿠폰지갑 150만개도 1분 49초 만에 동이 났을 정도로 인기였다.
◆ 2900억어치 소비쿠폰 수차례 나눠 발급···2분 만에 동났다
빠른 손놀림으로 6차 소비쿠폰을 쟁취한 항저우 시민 장(張)씨. 그는 노동절 연휴인 2일 시내 한 쇼핑몰의 모자가게에 갔다. 60위안짜리 야구모자를 쇼핑몰 할인행사로 42위안에 팔고 있었다. 장씨는 알리페이로 42위안을 결제하면서 10위안짜리 소비쿠폰을 써서 거의 정상가의 반값인 32위안에 모자를 살 수 있었다. 요새 소비쿠폰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게 항저우 주민들의 말이다.
항저우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소비를 살려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취지에서 디지털 소비쿠폰을 발급했다. 지난 3월 27일 1차 쿠폰 발급을 시작으로 2차(4월 1일), 3차(4월 3일) 4차(4월 10일), 5차(4월 20일), 6차(4월30일)까지 소비쿠폰을 순차적으로 발급했다. 항저우시는 이달 말까지 모두 16억8000만 위안(약 2900억원)어치 소비 쿠폰을 '한방'에 쏘지 않고 순차적으로 나눠서 발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앞으로도 몇 차례 소비쿠폰 발급이 더 이뤄질 예정이다.
쿠폰 발급 방식도 갈수록 진화했다. 처음엔 아침 8시에 발급했는데, 나중에 출근길 직장인을 배려해 저녁 8시로 시간대를 옮겼다. 쿠폰 액수도 제각각 다채롭게 설정됐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후 첫 연휴인 청명절 연휴를 앞두고 발급된 3차 쿠폰은 할인액수가 무려 100위안에 달하는 가장 '통 큰' 혜택이 담겼다. 100위안어치 사면 20위안을, 200위안어치 사면 35위안을, 300위안어치 사면 45위안을 깎아주는 방식이다. 연휴 기간 소비 창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 베이징대 MBA도 연구한 항저우 디지털 소비쿠폰 효과
항저우의 슬기로운 디지털 소비쿠폰 사용 효과에 대한 연구 보고서 결과도 나왔다. 중국 명문 베이징대 MBA인 광화관리학원 원장 류차오 연구팀은 최근 알리바바그룹 산하 앤트파이낸셜연구소와 함께 '코로나19 소비 회복'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항저우 전자소비쿠폰 발급 효과를 연구해 디지털 소비쿠폰이 주민 소비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했다. 소비쿠폰도 슬기롭게 발급하고 사용해 소비 창출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게 연구 취지다.
연구팀이 항저우 사례를 연구한 건 중국에서 항저우가 '디지털 도시'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중국 '인터넷공룡'인 알리바바가 소재한 이 도시는 이미 '현금 없는 사회'로 변한 지 오래다.
대다수 슈퍼마켓, 편의점, 택시에서는 휴대폰이 없으면 아예 결제를 할 수가 없다. 지난해까지 항저우 디지털경제는 20개 분기 가까이 연속 두 자릿수 성장세를 이어갔다. 지역경제 성장 기여도는 50%가 넘는다. 항저우 제조업체의 디지털화 비율도 70%에 달한다.
◆ 1위안짜리 쿠폰이 3.5위안 소비 창출···소상공인 살렸다
연구팀은 항저우에서 발급된 1~3차 소비쿠폰 사용 현황을 분석했다. 우선 1차 발급된 전자 쿠폰지갑 200만개 중 무작위 추첨으로 10만개 사용 샘플을 골라내 연구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소비쿠폰 1위안이 3.5위안의 소비를 창출한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3.5배의 승수효과를 낸 셈이다. 승수효과는 재정지출 증가에 따른 소비 증가 효과를 측정한 지표다. 연구팀이 소비쿠폰을 발급받은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의 소비행위를 비교하고, 연령, 성별, 소비습관 등이 미치는 영향도 모두 제외하고 얻어낸 결론이다.
또 소비쿠폰액이 클수록 승수효과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3차 소비쿠폰 액수는 100위안으로, 1차 쿠폰의 2배였는데 무려 5.8배의 승수 효과를 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연구팀은 항저우가 정해진 장소에서만 알리페이로 결제해 소비쿠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타깃층을 철저히 설정함으로써 소비쿠폰 혜택이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외식업종 등 소상공인, 자영업자로 흘러들어갔다고도 분석했다.
소비쿠폰 액수가 적을수록 '생존형 소비'에, 소비쿠폰 액수가 클수록 '향유형 소비'가 늘어난다는 결론도 얻었다.
눈여겨볼 점은 소비수준이 낮은 저소득층, 나이 많은 중노년층, 온라인 소비성향이 낮은 인구층에서 소비쿠폰을 더 적극 사용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41~50세 중장년층에게서 디지털 소비쿠폰을 통한 소비 견인 효과가 가장 뚜렷이 나타난 것. 일반적으로 디지털에 취약한 노년층일수록 디지털 소비쿠폰 사용도가 낮을 것이란 예상이 빗나갔다.
◆종이쿠폰, 현금다발 뿌리기보다 '과학적·합리적'
보고팀은 이를 통해 항저우 소비쿠폰 발급 방식을 전국적 범위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전국적 범위에서 대규모로 디지털 소비쿠폰이 발급되면 단기적으로 소비를 살리고 내수시장을 확대해 3000만 중소기업과 9000만 자영업자 경영난을 해소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디지털 쿠폰 발급 방식은 종이 쿠폰이나 직접 현금 지원 방식과 비교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소비를 부양하는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종이쿠폰보다 비용은 적게 드는 데다가, 빅데이터를 통해 소비쿠폰 활용도와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소비 쿠폰이 제대로 발급됐는지, 어디에 쓰였는지, 중간에 딴 데로 새지는 않았는지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어서 관리 감독도 한결 수월해졌다.
이밖에 소비쿠폰 사용 업종과 대상은 물론, 발급 주기도 유연성있게 설계해 소비 효과를 극대화해야 함을 강조했다. 이는 간접적으로 중소기업에겐 세수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효과도 있다고 덧붙였다.
마량 중국 인민대 국가발전전략연구원 원장조리는 "디지털 소비쿠폰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지원으로 소비 쿠폰 사용 시간과 장소, 방식 등을 추적할 수 있는 게 장점"이라며 "정부도 이를 통해 소비 쿠폰 정책을 효과적으로 조율해 나갈 수 있다"고 전했다.
항저우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소비를 살리기 위해 전국적으로 170여개 도시에서 모두 200억 위안어치 소비쿠폰을 발급했다. 이중 상당수는 알리페이 등 플랫폼을 통해 발급된 디지털 소비 쿠폰이다.
이는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을 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알리페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84%가 디지털 소비쿠폰이 장사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천만개 넘는 오프라인 상점이 수혜를 입었으며, 이 중 90% 이상이 중소 영세업자라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 디지털경제 인프라가 소비쿠폰 효과를 높이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아이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국 모바일결제액은 59조8000억 위안(약 1332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4% 증가했다. 중국 내 모바일결제 이용자는 10억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