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오디세이(21)] ‘아테네의 하얀 장미’ 나나 무스쿠리 ③

2020-05-08 13:43
[정숭호의 '북클럽 지중해 오디세이'(21)] ‘디바’ 칼라스의 격려를 받다

[지중해 오디세이 21] ‘아테네의 하얀 장미’ 나나 무스쿠리
③‘디바’ 칼라스의 격려를 받다
 

 


나나의 클럽에 찾아온 마리아 칼라스는 나나의 노래에 반해 그를 테이블로 불러 대화를 나눕니다. 나나는 세계적 ‘디바’로 자리 잡은 마리아가 자기 노래를 인정해주자 감격했지만 음악원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부모가 바랐던 오페라 가수가 되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놓습니다. 마리아는 후배 나나의 손을 잡고,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대”라고 부르며 “오페라 가수의 세계는 잔인하지요. 누구나 ‘노르마’ ‘토스카’ ‘라 트라비아타’를 부르고 싶어 하지만 소수만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요즘에는 무명 오페라 가수보다 유명 대중가수가 되는 게 더 좋아요. 무엇을 하느냐보다 그것을 얼마나 잘 하느냐가 더 중요하지요”라고 나나를 격려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달라며 나나를 무대로 돌려보냅니다. 나나는 자기 어머니도 좋아했던 그 노래를 정성껏 불러 마리아의 격려와 사랑에 보답합니다. <박쥐의 꿈 (양진아 역, 문학세계사)>

마리아와의 관계는 좋았던 반면 멜리나 메르쿠리와의 관계는 약간 긴장된 것이었습니다. ‘일요일은 참으세요’의 주제가 ‘피레우스의 아이들’ 때문입니다. 원래 멜리나가 부르도록 작곡한 이 노래를 작곡가 마노스가 처음 본 나나에게 시켜보고는 나나가 녹음하고 영화에서는 멜리나가 립싱크를 하도록 했다가 멜리나 쪽의 반발로 영화에서는 멜리나가 부르되 나나의 목소리로도 레코드를 내게 한 겁니다. 둘은 나중에는 가까워졌으나 당시 나나는 대선배 멜리나의 심기를 건드린 걸 못내 걱정했다고 하지요.

나나가 프랑스에서 물 오른 활동을 하던 1967년 그리스에서 군사혁명이 일어나 독재가 시작됐습니다. 나나는 그리스로 돌아가지 않고 ‘자유를 위한 노래’를 발표하는 등 군사정권에 저항했습니다. 나나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체제 운동을 했던 멜리나는 군사정권이 무너진 후 그리스 문화부 장관이 돼 18세기에 영국이 무단반출해간 파르테논 신전 유물 반환운동을 주도했습니다. 나중에 그리스를 대표해 EU(유럽연합)의회 의원이 된 나나도 파르테논 유물 반환운동을 벌였습니다. 멜리나의 뒤를 이은 거지요.

2008년 7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옆 유서 깊은 헤로데스 아티쿠스 야외극장에서 고별공연을 한 후 재혼한 남편과 제네바에서 살고 있는 나나는 간혹 매우 특별한 무대에는 선다고 합니다. 2010년 방만한 연금 운용 등으로 그리스가 경제위기에 봉착하자 “내 조국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게 싫다”며 연금을 포기해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마리아와 멜리나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나는 올해 여든 여섯입니다. 유골이 에게해에 뿌려진 마리아는 여신이 되어 그리스를 내려다 볼 것 같고, 멜리나의 혼령은 자기가 보호하려던 파르테논 신전을 맴돌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나나는 아테네의 하얀 장미로 다시 태어나 불행한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