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튜링을 만난 히포크라테스, 노벨상으로 빛나다

2024-10-13 14:19
인공지능 의료 시대의 서막

 
[권순용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교수]



2024년 노벨상은 마치 한국의 해처럼 빛났다. 한국의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고, 노벨 화학상은 AI 의료 분야의 혁신적 연구로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에게 돌아갔다. 그가 만든 알파고가 2016년 한국의 이세돌 9단을 꺾어 세계를 놀라게 한 지 8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물리학상 역시 AI 의료 기술의 획기적 발전에 기여한 연구자에게 수여되었다.

이들의 수상 소식은 한국과 AI, 그리고 의료 기술의 놀라운 만남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만난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AI의 선구자와 문학의 거장이 세계를 향해 동시에 날갯짓을 한 셈이다. 이 역사적인 순간은 AI 의료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자 인류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여는 서막이었다.

AI 의료, 판도라의 상자에서 피어난 희망의 아스클레피오스

하사비스의 AI 의료 연구는 신약 개발 과정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AI 시스템은 수백만 개의 화합물을 분석하여 잠재적 치료제를 찾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수년에서 수개월로 단축시켰다. 이는 마치 헤파이스토스가 신들을 위해 마법의 도구를 만들어낸 것처럼 현대 의학을 위한 강력한 도구를 창조해낸 것이다.

의료계에 불어닥친 AI 혁명은 재앙이 아닌 축복이다. AI는 의사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 방대한 의학 정보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제공한다. 더불어 AI의 초인적인 패턴 인식 능력은 미세한 이상 징후도 놓치지 않아 진단의 정확도를 높인다. 이로써 의사들은 차트, 진찰실, 수술방을 벗어나 환자와의 소통, 공감, 그리고 창의적인 치료 방법의 연구개발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고 의료정책과 행정,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K-시니어 시대, AI가 여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

K-시니어는 광복의 여명부터 1965년 베이비붐의 황혼까지를 아우르는 세대로,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경제 기적을 일궈낸 주역들이다. 그러나 이제 이들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매년 50만명씩 65세 이상 인구에 편입되고 있으며, 그중 89.5%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더욱이 73%가 2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가진 복합이환자라는 점이 우리 의료 시스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는 K-시니어 시대의 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AI 기반의 예측 모델은 K-시니어 세대의 건강 데이터를 분석하여 개인별 질병 위험을 예측하고, 맞춤형 예방 전략을 제시한다. 또한 복합이환자를 위한 최적의 치료 계획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주며, 약물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제안한다.

원격 의료 분야에서도 AI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AI 챗봇을 통한 초기 상담,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한 지속적인 건강 관리는 K-시니어 세대가 병원을 자주 방문하지 않고도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이는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의료 자원의 효율적 분배에 기여할 것이다.

의료의 르네상스, AI와 함께 피어나다

우리는 지금 의료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15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이 인간의 몸과 정신을 새롭게 탐구하고 표현했듯이, 우리는 이제 AI 기술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재정의하고 확장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2024년 9월 오픈AI CEO 샘 올트먼이 예고한 'AI Medical Advisor(AI 의료 조언자)'의 출현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이 AI 의료 조언자는 개인의 유전정보, 생활습관, 환경 요인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을 위한 맞춤형 조언을 제공한다. 이는 의료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치료' 중심에서 '예방과 최적화' 중심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더욱이 AI는 의사들에게 진정한 과학자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AI가 일상적인 의료 업무를 보조하면서 의사들은 그들의 유능한 두뇌와 오랜 임상 경험에서 얻은 인간적 감성, 철학을 더 넓은 영역에서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의사들은 이제 병원의 울타리를 넘어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진정한 과학자로 변모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한강의 펜, AI 시대의 인간성을 그리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은 AI의료 시대의 인간성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제공했다. 그녀의 작품 <소년이 온다>에서 보여준 인간의 고통과 연민에 대한 섬세한 탐구는 AI 의료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돌봄'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채식주의자>에서 드러난 인간의 내면 세계와 욕망에 대한 탐구는 AI가 인간의 복잡한 심리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 그리고,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그려진 생명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찰은 AI 의료 기술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를 상기시켰다.

또한 한강의 작품은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감 능력, 직관, 창의성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는 의료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AI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진단을 보조하는 동안 의사는 환자의 감정을 이해하고, 삶의 맥락을 고려한 총체적인 치료 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5차 산업혁명, 인간 진화의 새로운 장을 열다

우리는 지금 5차 산업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간 플랫폼의 혁명'을 의미한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이 기술과 융합되어 능력이 극대화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술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소통을 혁신적으로 변화시키고, 나노 기술은 체내에서 실시간으로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치료하는 '내부 의사'의 역할을 한다. 유전자 편집 기술은 유전병의 근본적인 치료와 인간 수명의 비약적인 연장을 가능케 한다.

K-시니어 시대의 도래는 우리에게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이 보여준 것처럼 AI 기술의 발전은 이 도전을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만들고 있다. 화학상을 받은 하사비스와 베커의 연구는 AI를 활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과 설계를 통해 신약 개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혁신적 기술들은 증가하는 의료 수요에 대응하고, 의료의 질을 높이며, 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AI의 도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 해결책은 아니다. AI는 의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판단을 보조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의 메시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녀의 작품에서 보여준 인간의 고통, 연민, 내면세계에 대한 깊은 통찰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인간성의 가치를 일깨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인간 의사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시대의 문턱에 서 있다. AI와 인간 플랫폼의 혁명은 의료의 미래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튜링과 히포크라테스의 만남, 첨단 과학기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어우러진 이 새로운 시대의 의료는 어떤 모습일까?

K-시니어 시대의 도전을 AI 기술로 극복하되, 한강의 작품이 보여주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잃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 AI의 정확성과 효율성, 그리고 인간 의료진의 공감과 직관이 조화를 이루어 모든 인간의 삶의 질을 높여 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세대의 책임이자 미래 세대를 위한 우리의 의무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AI와 인간의 협력을 통해 의료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K-시니어 세대가 일궈온 경제 발전의 역사를 이어받아 이제 우리는 AI와 함께 더 나은 의료, 더 나은 삶을 향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2024년 노벨상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일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대한디지털헬스학회 명예회장 △대한노년근골격의학회 회장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