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국회 첫 국민소환 후보 ‘양·태·지’

2020-05-04 14:39
양정숙-태구민-지성호 당선인의 무자격, 무능력
실력, 자질 없는 국회의원 견제하는 국민소환제 도입해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은 벨기에와 조별리그 H조 마지막 경기에서 0-1로 패했다. 최종 성적 1무 2패, H조 최하위, 16강 진출 실패.

참담한 결과가 나온 직후 홍명보 당시 감독은 공식 인터뷰에서 “이번 월드컵을 통해 좋은 경험을 했다. 앞으로 더 도전하고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홍 감독과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이영표 당시 KBS 해설위원은 존경하는 선배 홍명보 감독을 강하게 비판했다. “월드컵은 경험하러 나오는 자리가 아니다. 실력을 증명하는 무대다”라고.

21대 총선을 치른 지 불과 20여일, 새 국회가 출범도 하기 전에 일부 당선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이영표의 ‘일침’을 떠올렸다. 국회를 경험하는 자리‘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벌써부터 ‘참패 국회’를 예고하고 있다.

국회 문도 열리기 전에 이미 당에서 제명된 국회의원 당선인 얘기부터 해보자.

지난달 28일, 더불어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가족 이름을 빌려 부동산을 구입한 의혹을 받는 양정숙 당선인(비례대표 17번)을 제명했다. 그는 이번 총선에 출마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재산 92억원을 신고했는데, 20대 총선 후보 시절이던 2016년에 비해 무려 43억원 늘었다. 서울 강남 일대에 아파트가 3채, 서울 잠실과 부천에 건물 2채 등인데 이 과정에서 세금을 줄이기 위해 동생 이름을 빌려 불법 ‘명의신탁’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더불어시민당 양정숙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인이 4월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윤리위원회에 참석한 후 당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당 윤리위원회는 검증 과정에서 양 당선인이 허위 자료를 제출하고 검증 위원들을 속였다며 제명을 의결했다. 시민당은 오는 6일 명의신탁과 허위자료 제출 의혹 등에 대해 형사고발할 방침이다.

양 당선인은 억울해 하며 무소속으로 의원직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당선증을 받은 당선인이라 본인이 국회의원을 사퇴하지 않으면 당이 제명하든 말든 국회로선 방법이 없다. 그가 무소속 의원으로 버틴다면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의원직 박탈 형량을 받기 전까지 적어도 2년 동안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다. 하지만 여당에서 제명된 무소속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사망선고를 받은 식물인간과 다를 바 없다.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이다.

국회 개원 전에 이미 심각한 무능력이 검증된 의원들도 드러났다. 탈북자 출신, 보수 야당 공천을 받은 당선인이라는 게 공통점이다.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공식 석상에 나타났다는 북측의 공식 확인이 나오기까지 20일 동안 ‘아니면 말고’식 주장이 쏟아졌다. (미국 매체가 한국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걸 거꾸로 대서특필한 일부 한국 언론의 ‘사대주의 보도’, ‘색깔론 보도’는 이제 논할 가치조차 없다. 같은 업종 종사자로서 부끄럽고 창피하고 참담하다. 구제불능 지경에 빠진 언론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 형국.) 특히 미래통합당 태구민(개명 전 태영호) 당선인과 그 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지성호 당선인의 말과 글은 그들의 실력을 증명했다.

태 당선인은 지난 4월 27일 CNN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정말 수술을 받았는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나거나 걷지도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라고 했다.

지 당선인은 더 했다. 1일 “김 위원장이 지난 주말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했다. 김 위원장의 사망을 99% 확신한다…과거 김일성·김정일 유고 발표를 볼 때 이번 주말께 북한이 김정은 사망을 발표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미래통합당 태영호 당선인(왼쪽)과 미래한국당 지성호 당선인. 연합뉴스]


2일 김정은 위원장의 모습이 공개되자 그들은 스스로 무책임과 무능을 재확인했다.

태 당선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정은 건강 이상설이 처음 보도된 후부터 김일성, 김정일 사망 당시 제가 겪었던 사례들에 근거해 현 상황을 분석했다…결과적으로 저의 이 분석은 다소 빗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다. 맞다, 태 당선인은 자신이 겪었던 경험에 기반한 분석이 지금의 남북관계에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4일 입장문을 내고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 이틀 동안 많은 질책을 받으면서 제 말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을 절실히 실감했다”고 했다. 이어 “국민 여러분께서 저 태영호를 국회의원으로 선택해주신 이유 중 하나가 북한 문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전망을 기대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며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이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 당선인은 사과는커녕 변명도 제대로 못했다. 그는 “김정은의 건강에 문제가 없는지 속단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보자…제 나름대로 파악한 것을 바탕으로 말한 것”이라고 언론에 밝혔다.

여의도 국회 역시 월드컵과 비슷하다. 경험하러 나오는 무대가 아니다. 국회의원은 축구 국가대표처럼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페셔널이다. 국회의원 출마는 경험하고 배우러 나오는 사람이 해선 안 된다. 국회의원이 제대로 일을 하느냐 여부에 국익과 우리의 삶, 자녀들의 미래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청년 정치인, 젊은 국회의원들은 그들이 겪고 체험한 그릇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야지 기성 정치를 답습해선 곤란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H조 3차전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손흥민(왼쪽)이 눈물을 흘리자 한국영이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드컵 참패는 4년에 한 번이지만, 4년 내내 나오는 '국회의원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부적격, 무능력 국회의원의 배지를 강제로 떼는 국민소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국민소환제란 선거로 뽑아 임기가 보장된 선출직 공직자를 유권자가 직접 파면할 수 있게 하는 직접 민주주의 제도다. 국민파면이며 국민해직이다.

우리는 2007년 참여정부 때 지방자치단체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소환하는 주민소환제만 도입해 시행 중이다. 지난 20년간 국회에서 국회의원을 적용하는 국민소환제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의원 스스로 자신의 목을 치는 제도를 도입하는데 실패했다. 여권과 진보진영은 총선공약 등에서 의지를 보였지만, 미래통합당과 그 전신인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한나라당이 줄기차게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통합당이 먼저 하자고 해야하지 않나. 180석 거대여당을 견제하면서, 간발의 차로 낙선한 지역구 의석을 되찾을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니까. 

"애꿎은 시골 기초 단체장은 소환하고 국회의원은 예외고 이래 가지고는 법의 명분이 서겠느냐"라고 질타한 사람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 전 의원이다. 그는 2006년 주민소환 법안을 심사하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보수여당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21대 국회 개원과 함께 여야는 국민소환제 도입 논의를 시작하길 바란다. 자질과 실력은 변변치 않고, 엄중한 정치현실과 판이한 개인 경험으로만 가득한 국회의원들의 임기 4년을 보장할 이유가 무엇인가.

대통령도 탄핵, 권좌에서 끌어내린 대한민국 아닌가. 국회의원 한 둘 국민이 불러 책임을 묻는 게 왜 이토록 어려운가. 21대 국회의원 임기 중 국민소환 1호가 나와야 한다. ‘양·태·지’가 그 첫 번째 후보다. 당선인 3명, 국회의원 300명의 1%다. 이 1%에 나머지 99%가 달렸다고 확신할 순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