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의 시작,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 성립 (1707)
제임스 1세의 집권 이후 동군연합 상태던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을 합쳐서 1707년 5월 1일 앤 여왕 시기에 성립된 국가이다. 이후 웨일스가 편입되면서 오늘날 영국의 시초가 되었다. 잉글랜드의 수도였던 런던은 1600년에 인구가 200,000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했고 그레이트브리튼이 성립되었던 1700년에는 580,000명, 폐지될 시기였던 1800년에는 870,000명으로 증가해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번성했던 도시가 되었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핵심적인 도시로 기능했다.
2. 근로자의 날 제정 (1886)
1889년 7월 세계 각국의 노동 운동 지도자들이 모여 결성한 제2인터내셔날의 창립대회에서 결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1890년 5월 1일 첫 메이데이 대회가 개최되었고 이후 전세계 여러나라에서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념해오고 있다. 메이데이는 '노동절(Labor day)'라고도 불리며 근로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근무 의욕을 높이기 위해 각국에서 법정 기념일로 제정, 시행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근로자의 날은 1993년까지 3월 10일(한국노동조합총연맹 창립일)이었으나 1994년부터 5월 1일로 변경으며, 근로자의 날 관련 법령에 따라 유급휴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직장인에게는 평일 중 가장 축복받는 날 중 하나다. 이날 은행 영업점은 일제히 문을 닫으며 주식시장 또한 거래 업무를 하지 않는다. 병원의 경우 개인 병·의원은 원장의 재량에 따라 쉴 수 있지만 대형 종합병원은 정상 진료를 한다. 공무원 관련 법률이 적용되는 공무원은 이날 쉬지 않기 때문에 행정기관은 정상 업무를 한다. 한편 북한에서는 '국제 로동절'이라고 부르며, 사회주의 7대 명절 중 하나이기도 하다.
3.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이은 사망 (1970)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 (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사 최후의 황태자이자, 식민지 조선의 마지막 이왕(李王). 종묘에 배향된 마지막 조선-대한제국의 황족이기도 하다. 종묘 정전에는 의민황태자 영왕(懿愍皇太子 英王)으로서 마지막으로 배향되었다. 고종황제의 7남으로 순종황제와 의친왕의 이복동생이며, 덕혜옹주와는 이복오빠이다. 그가 황태자로 책봉된 건 전혀 행운이 아니었다. 그저 이름(허울)뿐인 황태자(皇太子)이고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볼모격으로 끌려가 몸이 만신창이가 된 뒤에야 겨우 고국에 돌아오는 고통뿐인 인생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영친왕 측은 1945년 광복 직후와 1948년에 두 차례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요청을 했지만 전자 땐 미군정이, 후자 땐 이승만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고 한다. 이승만 정부에서는 영친왕이 일본 황족으로 살아간 것은 일본 국적을 취득한 것이라는 식으로 해석하여 '영친왕은 일본인이 되었다'고 법률을 해석하여 그의 귀국을 거부하였다. 노년엔 지병에 의한 치료비가 밀리는 등 가난한 생활을 하다가 1970년 5월 1일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4. '헤이세이 시대'의 끝, '레이와 시대' 개막 (2019)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왼쪽) 관방장관이 2019년 5월 1일 총리실에서 나루히토 새 일왕 시대의 연호(年號)가 '레이와'(令和)로 결정됐음을 발표했다. (사진=도쿄AP 연합뉴스)]
「初春
令月、氣淑風
和、梅披鏡前之粉、蘭薰珮後之香。」
「초봄의
길한 달, 기운 상서롭고 바람
평온하니, 매화는 거울 앞 가루를 날리고, 난초는 살결 같은 향을 풍기네.」
'레이와(令和)' 시대는 1989년 1월 8일부터 2019년 4월 30일까지 사용된 일본의 연호 '헤이세이(平成)'에 이어 나루히토 일왕이 일본의 제126대 천황으로 즉위하며 사용된 연호이다. 레이와 연호는 훗날 나루히토 천황이 붕어(崩御)하거나 선위할 때까지 사용되며, 차후 나루히토 일왕이 사망하면 일세일원제 원칙에 따라 레이와 덴노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될 예정이다. 레이와(令和)라는 새 연호는 일본 최초의 운문집인 만엽집(만요슈)의 제5권 매화의 노래 32수의 서문에서 따왔으며, '매화의 노래'라는 와카(和歌)는 나라 시대의 가인(歌人) 오토모노토비토(大伴旅人 665-731)가 730년 자기 저택에서 '매화 잔치(梅花の宴)'를 열었을 때 읊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