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도로에 낙서한 유성기업 노동자들 ‘재물손괴 무죄’

2020-04-13 12:00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도로에 낙서를 한 유성기업 노동자의 행위가 재물손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특수재물손괴) 혐의로 유성기업 노조원에게 벌금형 등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대전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대법원은 “재물손괴죄는 타인의 재물을 본래사용 목적에 쓸 수 없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며 “도로에 낙서를 한 행위는 도로의 효용을 해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2011년부터 유성기업과 노조는 갈등을 겪어왔다. 2011년 5월 노조가 주간 2교대와 생산직 월급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파업해 갈등이 시작됐고 사측이 직장폐쇄로 맞서면서 노사는 여러 차례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다.

이 과정 중에서 회사 측에서 새로운 노조를 만들었으나 설립무효가 되기도 했다. 또 노조 측 인사가 회사 임직원을 폭행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유성기업 노조원들은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는 현수막을 제작했고, 제작과정에서 페인트가 배어나와 도로와 공장바닥에 현수막 내용이 그대로 묻어 나게 됐다. 당시 현수막 내용에는 대표이사와 부사장 등에 대한 욕설 등도 담겨 있었다. 

검찰은 이것이 '도로와 건물의 효용을 해쳤다'며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 노조원들을 기소했다.  

1심과 2심은 이들의 행위가 재물손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공장 내부의 미관이 훼손됐고 이를 복구하는 데 비용이 들었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정당행위로도 볼 수 없다”고 피고인들에게 200~300만원 사이의 벌금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낙서의 범주를 넘어 페인트 등을 이용해 문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의 크기로 글자를 기재했다”며 “차량운전자 등의 주의를 분산 시켜 통행과 안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페인트로 인해 과속 방지턱이 일부 가려지기도 했고 원상복구에 비용도 들었다”며 재물손괴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낙서로 인해 차량운전자의 통행과 안전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미관의 경우 도로의 본래목적인 차량통행에 중요한 작용을 하지 않는다”고 원심을 파기했다. 
 

[사진=대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