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의 공정경제] 총체적 위기 회복 탄력성(Resilience), 거버넌스(Governance)에 달렸다
2024-12-17 06:00
사면초가, 총체적 위기다. 헌정질서를 수호할 책임이 있는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내란죄”를 저지르고 탄핵소추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
트럼프 제2기의 출범으로 세계 경제질서의 급변이 예상되고 있다. WTO 체제의 자유무역주의 원리는 보호무역주의로, 그리고 중국과 연결된 글로벌 가치사슬(GVC: Global Value Chain)의 단절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세계 교역규모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대외환경은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해 2% 성장률 달성도 쉽지 않고 내년과 내후년 전망도 올해보다 좋지 않다. 부동산가격 상승과 가계부채로 인해 금리 인하도 쉽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의 필요성이 큰 상황이다. 그러나 경기 악화에도 불구하고 감세정책을 고집함으로써 대규모 세수결손(작년 59조원, 올해 30조원 예상)이 발생하여 정책대응도 쉽지 않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 피해는 경제의 가장 약한 부문부터 발생한다. 우리 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부문은 소상공인, 자영업부문과 사회취약계층으로 정부정책이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하는 부문이다. 또한 세계 교역질서 재편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산업지원 예산 심의도 필요하였지만 12·3 내란사태로 감액만 반영된 예산이 통과되었다. 물론 추후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통해 필요한 예산을 통과시켜 대응할 수 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세계 경제질서가 재편되는 시기는 우리 경제에 위협적인 요소가 되지만 그 기회를 잘 활용하면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GVC에서 중국의 강점은 세계에서 필요한 각종 생산품을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GVC에서 중국과의 단절을 추구한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제조업 생산능력을 가진 곳이 필요하다. 우리나라가 이런 능력을 가진 국가이다.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국이 이른바 소셜 덤핑(social dumping)을 통해 다른 나라의 생산기반을 무너뜨려 중국을 배제한 GVC를 유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중국은 서방의 기술을 활용하고 축적하여 군사기술로 전용하여 다시 서방의 안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미국 등 서방이 중국으로의 기술이전과 축적을 제한하는 조치를 시행하는 이유다. 반도체, 바이오, 데이터 이용 및 가공, 새로이 주목되는 AI 등의 기술, 즉 민간기술이지만 군사적으로 전용되는 겸용 기술이 그 대상이 된 것이다. 국제 교역질서의 변화가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기술과 생산능력에 있어 한국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교역질서 재편에 걸맞은 산업정책과 외교·통상정책이 필요하다. 자유무역체제에서는 산업정책의 의의가 거의 없어졌지만 새로운 산업정책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국가와 기업이 유연하고 유기적으로 대응하였을 때 기회를 살릴 수 있다.
그 사회의 회복탄력성은 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이라는 의미를 갖는 거버넌스(Governace)에 좌우된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질서의 변화를 새로운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거버넌스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교역질서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산업정책, 통상·외교정책은 기업과 정부가 정책의 공감대를 만들고 이 정책을 국민들의 동의를 통해 힘을 결집하는 것이 요구된다. 거버넌스는 정치적으로는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통치구조와 운영 원리이고 기업에는 지배구조라는 이름으로 표현된다.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서 시민단체와 이해관계자들의 참여가 전제되는 거버넌스를 통치와 기업의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자.
우리 사회의 통치구조와 운영원리는 헌법에 표현되어 있다. 누구나 노래 부를 수 있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제1조에 근본 정신이 담겨 있다. 민주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 이해관계를 수렴하는 과정이다. 한쪽이 의견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는 의미로 다양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국가의 일을 주인인 국민이 직접 할 수 없기 때문에 대표를 뽑아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는 통치구조를 갖는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운용은 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의견만이 옳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따라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반국가가 되는 방식이었다. 이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어느 정부에서나 비슷했다.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민주의 요체다. 기업의 지배구조는 어떤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다. 물론 회사는 고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달업체, 소비자, 노동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둘러싸인 존재(S)이고 지구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E)이지만 그 출발점은 주주다. 이사(또는 경영자)는 주주의 일을 위임받은 존재다. 주주는 지배주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를 갖는 일반주주도 있다. 회사에서의 민주도 역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나 회사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투명한 정보공개다. 의사결정의 기록과 공개방식을 제도화하는 것이 핵심인 것이다. 국가(기업)권력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데 이 권력이 주인의 통제를 받지 않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지 않게 통제하는 원천이 정보공개인 것이다.
민주의 의미에 이어 공화국의 의미는? 공화국의 핵심 의미는 공공(公共, public)이다. 국가를 군주나 일부 권력자가 전유하는 게 아니라 전체 구성원 즉 국민이 공유하는 체제를 이른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다른데 공공의 합의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공개 토론도 하고, 협상도 하고, 절충도 하고, 마지막으로 투표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해 이해관계의 일부를 양보하기도 하고 더 큰 기여를 담당하기도 한다. 그 판단의 기준은 개인의 이해관계가 아닌 것이다. 만일 자신의 이해만 중요하고 다른 집단의 이해를 침해한다면 그 사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즉 혼란만 지속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서로 다른(different) 것을 인정하여야 하는 것이다. 디퍼런트(Differnet)의 의미는 틀리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이런 모습이 시스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제대로 작동한다면 민주공화국이다. 12·3 사태의 근본원인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이고 자신만이 옳고 그 권력을 계속 사용하려는 것에 기인하지 않을까?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지배주주가 자신의 의사결정만을 고집하고 일반주주의 이해를 무시함에 따라 회사의 존재 의의를 침해한 것이 아닌가? 권력이 무한하지 않듯 경영권도 일방이 전유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교체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헌법과 법률은 변화하는 것이며 필요에 따라 새로운 것이 추가되는데 그 조문이 도입된 이유, 즉 법정신을 되새겨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12·3 비상계엄 선포과정에서 “국무회의 심의”조항(계엄법 제2조 5항)이 탄핵심판의 주요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조항은 1949년 계엄법 제정당시에는 없던 것으로 1980년 군사쿠데타 이후 1981년에 도입된 것이다. 국회의 해제결의라는 통제 외에 사전적으로 통제받지 않는 것을 “국무회의 심의”라는 통제장치가 군부정권에 의해 도입된 것이다. 군부정권 스스로도 비상계엄의 사전통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의결이 아니지만 국무위원의 의견을 수렴하여 신중하게 행사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권한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를 새겨 “절제된 사용”을 규정한 것이다. 5분 동안 일방적 의견 전달은 심의가 아니다. 회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8년 도입된 상법의 이사충실의무, 즉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 우리 대법원은 민법 제681조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를 한번 더 강조한 선언적 규정에 불과하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이 조문이 IMF 위기 이후 경영자의 책임을 묻기 위해 IMF가 적극 권고한 것을 반영한 상법 개정이라는 의미를 본다면 대법원의 판례는 비합리적이다. 상법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를 포함하는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제모을루와 존슨은 민주를 “좁은 회랑”(narrow corridor)으로 표현하였다. 국가의 힘이 너무 강하면 전제 국가나 독재 국가로 흘러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의 힘이 너무 강하면 질서가 무너지며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두 힘의 균형이 깨지면 국가나 사회는 좁은 회랑에서 튕겨 나가 국가는 실패하며 개인은 자유를 잃는다. 민주주의는 쉽게 달성되는 것이 아니고 쉽게 깨질 수 있는 제도이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강요하지 못하게 제도적 체계와 국민의 통제가 필요한 이유이다. 권력은 언제나 폭주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폭주는 국민의 참여와 관심을 통해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탄핵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민주적이면서도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 권력은 항상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제할 장치를 마련하고 다양한 사회구성원을 인정하고 조율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다면 우리의 회복탄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런 민주적 과정은 급변하는 세계질서에 우리 국민이 뜻을 모아 한마음으로 대응하여 기회를 잡게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적이고 활발한 의사소통이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 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