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도 코로나 앞에선 속수무책 ..유일한 돌파구는 과학

2020-04-12 12:27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24)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 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 투더 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최근 COVID-19라는 바이러스 전염이 지구 전체를 마비시켜 가고 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은 물론, 이탈리아, 스페인마저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정된 상태로 제어하고 있어 큰 대조를 이루고 있어 다행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가 안타깝게 고대하고 있는 것은 이에 대응할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이다. 위기 상황에서 인류가 기댈 것이 과학기술이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문제점은 없는가 되새겨 볼 때이다.

인류 역사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정리하면서 피터 드러커(Peter Druker)는 3단계 파도론(The 3rd Wave)을 주장하였다. 제1차 파도는 농업혁명, 제2차 파도는 산업혁명, 제3차 파도는 정보혁명이다. 최근에는 다음단계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활용을 핵심으로 4차혁명이 도래하였다고 주창되고 있다. 인류는 처음에는 나뭇가지를 필두로 하여 석기·청동기·철기로 도구를 발전시켰고, 증기기관과 전기 발전을 통한 미증유의 동력을 활용하게 되어 식량생산 증대, 거주공간 확대의 경제적 풍요를 이루어 인류가 가져왔던 양적 욕구를 해결해왔다. 20세기 들어서는 인류 생명의 양적 욕구도 충족하는 수명연장시대를 열게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를 둘러보면서 과학기술이 아직 가야 할 길은 요원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더욱이 선진국이라고 자부하였던 나라들이 무참하게 붕괴되는 현실을 보면서 과학기술의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과학기술의 핵심목표는 효율의 극대화로 생산력을 높여 산업발전을 통한 경제부강을 달성하는 데 있었다. 반면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과학기술에 대한 진지한 노력은 극히 제한적이었을 뿐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990년대 중반까지 경제 제일주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지원도 선진국과의 경쟁적 산업화 기술우위 확보에만 주력하였다. 그러나 미래는 수명연장의 초고령사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부응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연구개발(R&D)이 시급하다고 고심하던 차에, 필자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당시 위원장 한영성)에 건의하여 '과학기술과 국민의 행복'이란 주제의 연구를 위촉받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국가과학기술(연구책임자 박상철, 1997)'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제출되고 바로 우리나라는 IMF위기를 맞게 되어 국가 R&D정책에 크게 반영되지 못한 것이 새삼 아쉽다.

과제를 추진하면서 우선 300여명의 과학기술 각 분야 전문가들에게 삶의 질 향상과 상관되는 과학기술의 핵심주제를 조사해 보았다. 흥미롭게도 첫째 건강, 둘째 안전, 셋째 환경, 넷째 여가의 순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 건강상태를 최대한 유지해야 함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건강 분야의 핵심 과제로 지목되었던 것은 만성 퇴행성질환과 신종 감염성전염병의 극복이었다. 초고령사회에 만연할 암, 치매, 당뇨, 고혈압, 관절염 등에 대한 철저한 대비를 요구하였다. 그리고 신종 감염성전염병의 중요성은 당시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의 치사율이 80%를 넘었고,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AIDS)가 창궐하면서 인류 전체에 위협을 가하던 차였기에 신종 질환에 대한 체계적 대응책 마련의 중요성이 제기되었다. 둘째, 안전에 대한 우려는 사회 제반 시설과 생활환경에서의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데 있었다. 자동차, 비행기, 선박 등의 이동 수단뿐 아니라 교량, 건물, 식품, 상하수도, 주택 등의 안전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기에 강조되었다. 셋째, 환경 문제는 황사·먼지·오염·재해 등으로 자연환경 변화뿐 아니라 인간 활동으로 초래되는 환경의 변화가 인간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였다. 넷째는, 여가활용에 대한 갈망이었다. 여가를 최선의 방법으로 향유하여 삶의 질적 상태를 높이는 방법이 요구되었다. 이처럼 건강, 안전, 환경, 여가 등의 측면에 과학기술이 동원되어 인간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행복감을 증진하는 데 기여하여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삶의 질'이라는 용어는 2차 세계대전 말기에 '굿 라이프(good life)'를 의미하는 말로 미국에서 쓰이기 시작했고, 주로 물질적인 여유, 자동차·주택·소비재 등의 소유 여부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1960년대에는 교육·건강·복지·경제발전·자유세계 수호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고, 1970년대에는 OECD를 중심으로 안전·건강·환경·보람·정신적 만족감 등 비화폐적 요소와 자산·소득·사회환경·사회간접자본·안전 등과 같은 축적된 자산과 재화의 질과 배분을 고려하고 생활 안정, 주관성과 참여의식, 국제협력 등을 포함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질적 풍요함을 가져다 주었으나 원하지 않은 부작용도 불가피하게 경험하고 있다. 그 부작용은 삶의 질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적 사고가 필요하며, 과학기술 자체가 적극적으로 환경·안전·건강 등의 측면에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현금의 사태를 보면 이러한 측면에서의 과학발전이 크게 미흡하였던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인류가 의지할 수 있는 건 과학기술에 의한 예방과 치료제뿐임을 절실하게 느끼면서 이에 대한 사전 투자가 부족하였음을 반성해 볼 때이다. 우리나라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백신 개발의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관심이 소홀하였음도 되새겨 보아야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선전할 수 있는 배경에는 최근 바이오산업이 융성하게 성장하였고, 의료기술이 최첨단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인 의료보험제도가 상대적으로 완비되어 보건의료의 삼박자를 갖추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건의료의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구미의 여느 나라들보다 선진국임을 자부해도 좋다고 본다. 이제는 진정한 건강장수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지금까지 산업화 위주의 과학기술을 탈피하여 인간화에 역점을 두는 R&D를 촉구하여 문화를 소중하게 여기며 생활지향적인 과학기술을 확립하고 격변하는 사회적·자연적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인류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삶의 질 향상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