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욕정이 만든 괴물 'n번방'···공범만 26만명

2020-03-24 16:31

'n번방' 사건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미성년자를 비롯해 70명이 넘는 피해자와 26만명에 달한다는 가해자들이 있는 뉴스에 코로나19 사태로 지칠 대로 지친 국민들은 짜증을 넘어 폭발 직전의 분노를 느끼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이 사흘 만에 200만명을 넘어서고 대통령까지 나서 엄벌을 촉구하는 상황이 됐다. 

'n번방' 사건을 접한 범죄분석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들을 '괴물'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하지만 괴물은 '갓갓' '와치맨' '박사' 등 대중의 숨겨진 욕정을 악용해 돈을 번 자들만이 아니었다.

미성년자들을 협박해 입에 담기도 더러운 온갖 기괴한 짓을 강요해 일그러진 욕정을 채운 자들 모두가 괴물이다.  

◆ n번방? 박사방?... 괴물의 탄생

2019년 시작된 n번방의 기원은 놀랍게도 소라넷이다. 익히 알려져 있지만 소라넷은 한때 국내 최대의 음란물 사이트였다. 소라넷이 사라지자 소라넷의 계보를 잇겠다는 남성들이 하나둘 모여든 대화방이 'n번방'의 시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에는 여교사, 여군, 여경 등 특정직업을 공격대상으로 하는 것부터 여성 청소년 심지어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것까지 늘어나게 됐다. 현재까지 경찰이 파악한 피해 여성만 74명, 이 중에서도 미성년자는 16명에 이른다.

이들 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였던 것이 바로 '갓갓'이었다. '갓갓'이 사라지고 난 뒤를 채운 것이 '와치맨', 그 다음이 이번에 검거된 '박사'다

경찰에 따르면 ‘와치맨’은 몇달 전 검거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당초 24일 결심을 하고 구형까지 마칠 예정이었지만 검찰은 이날 돌연 변론재개신청을 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3년6월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지적 때문으로 보인다.

'박사'는 지난달 10일부터 경찰이 텔레그램과 다크웹, 음란사이트, 웹하드 등 사이버 성폭력 4대 유통망을 집중 단속한 결과 최근 검거됐다. 

인터넷 등에 유통되는 정보를 종합하면  'n번방‘은 '갓갓'이 만든 것이고 '박사'는 '박사방'이라는 다른 대화방을 운영했다. 하지만 이름만 다를 뿐 그 속에서 벌어진 일들은 똑같았다.

동영상을 만드는 방식은 조금 달랐다. '박사'는 스폰서 제의, 연예게 진출 등의 미끼를 통해 피해여성을 유인해 나체사진을 받아내는 수법을 썼다. 일단 나체사진을 받아내면 공범인 공익 근무요원을 통해 신상을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협박을 했다.

반면 'n번방'은 속칭 '일탈계'에서 피해자를 물색했다. '일탈계'란 SNS에서 음란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와치맨은 이곳에서 피해자를 물색한 뒤 '당신의 사진이 도용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피해자를 유인했다.

피해자가 문자메시지를 클릭하는 순간 모든 개인정보가 와치맨에게 넘어가는데, 이렇게 얻어낸 개인정보를 악용해 피해자를 협박, 이른바 '성노예 계약서'를 쓰게 하고 ‘성 착취’ 동영상을 강요하는 수법이다.

방식은 조금 차이가 있지만  둘다 '말을 듣지 않으면 신상을 공개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들을 강요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착취한 동영상'은 '박사방'을 통해 돈을 받고 넘겼다.

이들이 운영하는 방은 번호가 올라갈수록 더 혐오스런 영상이 제공되고, 그런 만큼 비용도 비싸진다. 어떤 방은 자신의 신원을 제공해야 참가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최고 수위의 어떤 방은 착취행위를 라이브로 보면서 이런저런 요구를 할 수 있는 방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실수로 돈 보냈는데 n번방“?… 불가능한 실수

“비트코인을 잘못된 주소로 보냈는데, 알고보니 그게 텔레그램 n번방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있나?”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 확인되는 글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문제가 많을 것'이다.

고의로 참가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실수'라는 주장. 하지만 그런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처벌을 피할 길은 없어보인다. 실수로 비트코인을 보내기도 어렵거니와 몇 단계의 확인을 거치는 'n번방'의 구조상 '모르고'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제 14조에서 ‘선불금, 그 밖의 채무를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아동·청소년을 곤경에 빠트리거나 위계 또는 위력으로 성을 사는 행위의 상대방이 되게 한 자’ 등에 대해서는 징역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13조에는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상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행위에는 비접촉 노출도 포함돼 있다.

특히 N번방은 라이브 시청과 채팅, 선불금을 내고 참여하는 절차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를 공모한 자에 해당한다. 

아청법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n번방' 참가자들이 모두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