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텔레그램은 범죄자들의 파라다이스?

2020-03-25 08:00

높은 보안성으로 전세계 이용자가 2억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는 텔레그램이 온갖 범죄의 경로가 되고 있다.

최근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텔레그램이 추구하는 ’철저한 보안성‘이 범죄의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숨겨진 이면'이 드러났다.

◆ '철통보안' 텔레그램, 그 양날의 검

텔레그램의 보안성은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하다. ‘철통보안’이라는 점이 범죄에 악용되는 순간, 범인은 네트워크의 익명성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의 범인들 역시 이런 점을 십분 활용했다.  

‘n번방 사건’은 ‘박사’라 불리는 조주빈씨와 같은 운영자들이 미성년자 16명을 포함한 74명의 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해 제작한 영상을 단체 대화방에 유포하고 방의 입장료를 받아 억대 수익을 챙긴 사건이다.

조씨 이전에는 ‘갓갓’, ‘와치맨’이라는 사용자가 같은 형태의 대화방을 운영했다. 갓갓은 현재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중이고 와치맨은 지난달 9월에 검거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보안 전문가들은 경찰이 이들을 검거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정기적으로 방을 '폭파'한 박사나, 일찌감치 꼬리를 감춘 '와치맨'의 IP주소를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텔레그램의 속성 상 '폭파'된 대화방의 흔적은 더 이상 서버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텔레그램은 독일의 유명한 무료 메신저로 서버를 해외에 두고 있기 때문에 국내 수사기관의 조사가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에서도 검찰의 카톡 검열 논란, 테러방지법의 통과 등 정부의 개인정보 감시 논란이 있을 때마다 유행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는 생전 ‘기술은 삶을 편리하게 변화시키지만 변화가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텔레그램의 ‘철통보안’이 해악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키울 필요가 있다.

◆ 온갖 범죄 수사망을 피하기 위한 수단...

사실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벌어진 불법 포르노물 유통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인천의 한 고교생이 텔레그램 대화방에 각종 불법 아동·청소년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입건된 바 있다. 당시에도 불법촬영물 공유방이 숱하게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었다.

뿐만 아니라, 경찰 조사에서 ‘박사’ 조씨가 처음엔 총기 또는 마약을 판다는 허위 광고를 올려 돈을 챙겼다고 밝힌 것으로 보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각종 사기 범죄도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텔레그램을 통한 마약 유통 문제도 심각하다. SNS에 떨(대마초), 아이스(필로폰), 작대기(필로폰) 등 마약을 뜻하는 은어를 검색하면 누구나 쉽게 마약 판매상의 광고 게시글에 접근할 수 있는데, 빠지지 않는 항목이 판매자의 텔레그램 아이디다.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됐던 연예인 박유천, SK와 현대 그룹3세 모두 텔레그램을 통해 마약 공급책과 접촉하거나 마약 관련 대화를 나눈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텔레그램 아이디가 포함된 SNS 마약 광고 게시글 [사진=페이스북, 인스타그램]
 

◆ 텔레그램도 허점이 있다?

사생활·개인정보 문제의 해결사로 등장한 텔레그램이 온갖 범죄의 온상이 됐다. 지금껏 그래왔듯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무수한 ‘n번방’이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 전임교수는 보안 메신저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 행위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회적 합의와 기술개발의 필요성을 들었다. 김 교수는 미국을 예로 들어 “미국은 프라이버시 영역과 법 집행 영역 사이의 다툼이 이미 공론화돼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가고 있는 상태”라며 우리나라에도 그러한 공론의 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또한 “유사시에 대비해 수사기관이 각종 암호해독기술을 개발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며 예산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해독기술을 개발한다고 하면 시민단체 등에서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주장이 분명히 나올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n번방’사건과 관련해서는 “텔레그램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최상위 수준의 보안 메신저는 아니기 때문에 텔레그램의 여러 가지 보안 취약점과 디지털 포렌식을 활용한다면 관련 정보를 뽑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모든 대화내용과 사용자를 알아내려면 텔레그램 본사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지금까지 텔레그램이 수사에 협조를 한 적은 없었다”고도 전했다.

한편, 검찰 포렌직 전문가들 중에는 의외의 '기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텔레그램을 직접 수사할 수는 없고 설령 수사한다고 해도 서버에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증거를 찾기 어렵겠지만 범인의 휴대전화 속에는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보안전문가들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서버를 수사하는 것 외에도) 쓸 수 있는 방법은 많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