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는 자국 산업 보호하기 위한 것…원유관세 제도 개선돼야"
2020-03-16 17:29
전세계 한국·미국·칠레 뿐인 원유관세…非산유국은 한국 홀로
원유·석유제품 간 관세율도 동일…'경사관세' 정책과 동떨어져
원유·석유제품 간 관세율도 동일…'경사관세' 정책과 동떨어져
정유업계 관계자는 16일 "관세는 기본적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개념"이라면서 "석유를 생산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원유 수입에 관세를 매기는 것은 오래된 불합리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정유업체들은 원유를 수입할 때 도입금액의 3%를 관세로 지출한다. 전세계에서 원유 수입 시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칠레 등 세 국가 뿐이다. 이 중에서도 미국과 칠레는 산유국으로, 수입 원유에 대해 관세를 부과해 자국 원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을 띄고 있다. 석유를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원유 수입 시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특히 원유와 석유제품에 대해 동일하게 과세 3%를 부과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원유와 석유제품 간 관세율이 동일하면 대규모 정제설비를 갖추고 원유를 수입 및 정제할 유인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가들이 제품 가공단계가 높아질수록 높은 관세를 적용하는 '경사관세' 정책을 취한다. 미국도 휘발유에는 배럴당 52.5센트 관세를 책정한 반면 원유에는 10분의 1에 불과한 5.25센트를 부과하고 있다.
정유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현행 원유 관세제도가 불합리하다는 점을 정부에 건의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미 큰 세수입원으로 자리잡은 원유 관세를 포기할 수 없는 탓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S-OIL(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가 매년 원유 관세로 지출하는 금액은 1조원 내외로 추산된다. 업체별로 2000~3000억원을 부담하는 수준이다.
정유업이 호황일 때는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문제는 현재와 같이 악재가 겹칠 때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해 수요가 위축된 가운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로 확산하면서 항공·해운 등 대부분의 수요가 마비됐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9일 국제유가가 폭락하면서 정유사들은 올해 1분기 수천억원에 달하는 재고평가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수요가 위축된 상황에서 유가 급락 등 어려운 사업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원유 관세 등 고정 비용에 대해서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원유 관세 정책을 외국과 유사한 수준으로만 낮춰줘도 경쟁력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측은 "정제마진이 안 좋을 때마다 나오는 얘기인데, 다른 나라에서 적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나라 상황에는 필요한 정책들이 있다"면서 "석유제품을 수출할 때는 부과한 관세의 60% 가량을 환급해주며 정유업체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대학원장은 "국내 정유사들이 수입하는 원유는 난방 등 에너지원으로서의 역할 보다 납사 등 산업 원료로서의 비중이 크다"면서 "과거 원유 관세를 도입하던 목적인 '에너지 소비 경감'이라는 취지가 옅어진 것은 물론, 납사 등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관세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