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2020년은 소재·부품·장비 기술자립의 원년

2020-02-17 15:45
핵실험 속에서 살아남인 쥐처럼 '경자년' 생존 능력 발휘할 때
기술패권주의·보호무역주의 속 산업 경쟁력 확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태평양 엔게비 섬을 핵무기 실험장으로 사용했다. 작은 섬에서 원자폭탄 14발과 수소폭탄 1발을 터뜨리는 등 핵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이 끝나고 4년 뒤 찾아간 엔게비 섬은 당연한 결과로 황무지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건강하게 살아남은 생명체가 있었다. 바로 '쥐'다.

올해는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이다. 올해 우리 경제는 핵실험 이후 엔게비 섬에서 쥐가 처했던 환경처럼 가혹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달 세계 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으며, 세계 각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도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여기에 우한발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일본은 기술패권주의를 기반으로 수출규제를 추진했다. 자국 핵심 기술이나 소재‧부품 공급을 차단해 수출 중심 한국에 경제적 공격을 가한 것이다. 일본 '모노즈쿠리 백서'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제품 및 부품 1200개 중 일본이 공급하는 품목 수는 894개로 75%를 차지했다. 이 중 270개 품목은 일본 기업이 독점 공급하고 있다. 일본이 공급하는 소재‧부품은 글로벌 가치사슬 최후방에 존재하기 때문에 공급 단절을 시행하면 전방에 있는 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구조다.

우리나라 로봇 산업에서도 핵심 부품인 감속기, 서보모터에 대한 대일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감속기는 모터의 힘을 감속시켜 로봇의 힘을 증대하는 데 사용되는 장치이며, 하모닉 감속기와 RV 감속기가 대표적이다.

QY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현재 하모닉 감속기는 전 세계 시장의 84% 이상을 일본이 생산하고 있으며, RV 감속기는 시장의 75%를 일본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로봇 부품 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통해 기술 개발엔 성공하였으나, 대다수가 중소기업으로 실증과 신뢰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는 소재·부품 기술 자립을 위하여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을 개정했으며 추가경정예산 편성·지원을 통해 향후 5년간 연간 2조원 규모를 지원한다. 그 일환으로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은 로봇 분야 핵심 부품의 신뢰성 제고를 위한 실증 테스트 및 추가 기술 개발 등 다양한 지원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핵심 소재·부품의 기술 자립을 앞당기고자 한다.

2020년은 흰쥐의 해다. 엔게비 섬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은 쥐의 탁월한 생존 능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기술패권주의, 보호무역주의 등 위협적인 산업 환경을 우리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올해는 어려움을 딛고 소재·부품·장비 기술 자립을 이루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정양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원장[사진=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