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나의 성자 다석 류영모](16) 삶은 물음이고, 죽음은 깨달음이다

2020-01-29 09:32
동생을 잃은 21세 청년은 물었다, 살려고 태어난 인간은 왜 죽는가

오산학교 '톨스토이 신앙' 탄압사건

그 추도식(1910년 11월 7일) 이후 류영모는 톨스토이 사상에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 무렵 오산학교에서는 '톨스토이 신앙탄압'이라 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1910년 12월 학교설립자 이승훈은 기독교 신자가 된 뒤 평양신학교장이자 선교사인 로버트와 가까워졌다. 그간 교장 역할을 하던 여준이 만주로 떠나자 로버트 선교사에게 교장을 맡긴다. 이듬해 2월엔 이승훈은 안명근 사건으로 감옥에 갔고 로버트가 학교를 관리하게 됐다.

로버트는 오산학교를 기독교 장로회 학교로 만들어갔다. 학생들에게 교리문답을 하게 하고 교회교리 신앙을 고백하게 했다. 이광수는 이런 방침과 충돌하다 1913년 11월 오산학교를 떠난다. 류영모는 어떻게 됐을까. 1912년경 이 학교와 결별했는데, 자세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일제의 탄압을 받는 것만도 고통스러운데 선교사에게 사상 감시를 받는 일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도그마(dogma, 기독교 교리)로 자유로운 생각을 구속한다면 거기에 진리가 살아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였다. 1912년 오산학교를 떠나면서 그는 교회 교리 신앙도 떠난다. 오산학교에 정통 기독교를 심었던 류영모는 그 정통 기독교의 배척을 받아 자기의 길로 나아간 것이다.

대체 톨스토이는 류영모에게 어떻게 다가온 것일까. 우선 통일복음서 얘기부터 하자. 톨스토이는 기독교의 4대 복음서를 하나로 요약했다. 이것을 '요약복음서' 혹은 '통일복음서'라 부른다. 그런데 그는 복음서를 요약하면서 교회가 지금껏 중요시해온 것들의 일부를 빼버렸다.
 

[러시아 종교사상가 레프 톨스토이]



성경 내용을 재정리한 '통일복음서'의 충격

세례 요한의 수태와 출생, 투옥과 죽음을 빼버렸고, 예수의 출생과 가족계보, 이집트 탈출 부분을 잘라냈고, 가나와 가버나움에서 펼친 그리스도 기적과 악마 축출, 바다 위를 걷는 기적, 무화과나무의 건조, 병자 치료, 죽은 이의 소생을 제외시켰다. 또 예수의 부활과 예수 예언의 성취 같은 부분도 없앴다. 기독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힘주어 전파해온 성서의 부분들을 잘라낸 셈이다. 통일복음서 서문에서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것들은 조금도 교훈을 담고 있지 않다. 경전을 번잡하게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복음서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다 신성하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예수는 무지한 군중에게 설교했다. 예수가 죽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에 대해 들은 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5만종의 기록물 중에서 세 가지를 고르고 한 가지 요한복음을 더 골랐다. 성경 복음이 모두 성령으로 보내진 것이라는 상투적인 견해에 미혹되어선 안 된다."

톨스토이는 교회 교리가 예수의 가르침에 얼마나 어긋나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소년시절 처음 신약성경을 읽었을 때 예수의 가르침에서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사랑과 겸손과 자기부정이며 악에 대해 선으로 대하라는 메시지였다. 내겐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었다. 내 마음이 회의와 절망 속에 있을 때도 그랬다. 그래서 교회에 귀의했다. 그런데 교회가 믿는 신조 속에 나를 감동시킨 기독교 본질이 보이지 않았다. 예수의 가르침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였던 게 교회에선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교회는 사랑과 겸손과 자기부정의 내적인 진리에서 이탈하여 외적인 독단의 신념만을 인정하고 있었다."(톨스토이 '종교론' 중에서)

사랑과 겸손과 적선은 어디로 갔는가

톨스토이는 '교회는 죽었다'고 말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택할 것인가, 교회의 가르침을 택할 것인가. 둘 가운데 하나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교회 규율들을 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교의에서 이탈하고 싶지 않았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택했을 때 남아 있는 교의가 하나도 없었다."(톨스토이 '나의 신앙의 요체' 중에서)

류영모는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자기의 사상을 정리해 갔을 것이다. 무엇이 정통신앙인가. 교회를 버렸다는 톨스토이가 비정통인가. 예수의 진정한 정통은 어디에 있는가. 베드로가 구술한 것을 기초로 마르코(마가)가 쓴 마르코복음에는 톨스토이 통일복음서처럼 동정녀 탄생도 없고 예수 육신 부활도 원래 없었다(예수 부활은 2세기 초 아리스티온이 증보한 것에 들어갔다).

류영모는 토인비와 헤르만 헤세의 글들도 읽었다. "나는 기독교 전통적 신앙이 초보적인 검증에도 합격하지 못하는 수준이란 걸 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예수의 육신 부활 승천이 특히 그렇다.'(토인비의 '회고록' 중에서) "나는 종교 없이 산 적은 없다. 종교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교회 없이 살아왔다. 찬란한 가톨릭교회는 가까이 다가가면 유혈폭력과 정치, 비열함의 냄새가 풍긴다."(헤르만 헤세의 '인생론')

성령의 생명은 어디 있는가. '정통'이라고 지켜온 저 위경(僞經)의 구절들에 있는가. 기독교 본질에 벗어난 독단의 신념에 있는가. 무엇이 정통인가. 이 깊은 문제의식이 젊은 류영모를 치열하게 이끌었을 것이다.
 

[다석 류영모]


류영모의 천로역정

천로역정(天路歷程·The Pilgrim's Progress)은 영국작가 존 버니언의 17세기 종교소설 제목이다. 옥중에서 씌어진 이 소설은, 주인공 크리스천이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손에는 한권의 책 성서를 들고 멸망의 도시를 떠나 하늘의 도시로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는 낙담의 늪과 죽음의 계곡과 허영의 거리를 지나 마침내 천국에 닿는다. 하늘길 여행에서 만나는 낙담과 죽음과 허영은 인간의 신앙이 겪는 리스크를 우의적으로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믿음'은 방해를 받지 않고 하늘길로 직행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유혹과 장애물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다석 류영모의 천로역정은 서양인들이 경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길이었다. 20세기는 수천년간 거의 단절상태로 있었던 동서양 문명이 서로 소통하기 시작한 세기였다. 서양에서 수많은 역정(歷程)을 거쳐 당도한 '천로(天路·천국으로 가는 길)'는 동양적 사유체계 소유자의 낯선 시선 앞에서 부조리함이 정밀하게 발견되기 시작했다. 류영모라는 통찰적 지식인은 성경과 함께 불경과 노장을 섭렵하면서 인류 전체의 영성(靈性)이 찾아낸 보편적인 '천로'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게 된다.

동양적 신앙체계가 서양 기독교를 재해석하면서 주체적인 신앙적 안목으로 거듭나는 과정이었다. 이런 사유로 나아갈 수 있었던 데에는 교회 교리를 비판하고 기독교의 근본정신으로 복귀할 것을 주창한 톨스토이라는 동시대 선배의 영감(靈感)이 작동했다. 왜 하느님은 서양식인가라는 단순한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면서 나라 잃은 민족이 신앙 속에서 주체성을 회복하는 극적인 전환점을 찾아낸다. 이런 사상체계는 일본인 주체신학자 우치무라 간조의 문제의식에 일정하게 힘입었을 것이다(우치무라 간조에 대한 얘기는 다시 제대로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동생 류영묵의 죽음이 부른 일대 충격

1911년 21세 때 두 살 아래 동생인 류영묵이 죽음을 맞았다. 이때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에 빠졌다. YMCA도 같이 다녔고 연동교회도 같이 다녔던 아우였다. 그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처럼 느껴졌다. 어린 시절 의사는 자신에게 이미 서른 살을 못 넘길 거라고 예언하지 않았던가. 교회가 강조해온 교리들은 죽음의 문제에 정색을 하고 답을 해주지 않는 듯 보였다. 이 무렵 그는 성경을 두고 불경과 노자에 매달렸다. 살려고 태어난 인간은 왜 죽는가. 죽음 앞에서 잠정적인 삶은 무슨 의미와 가치가 있는가. 이 응답 없는 질문들에 매달리며 사생의 진리를 찾아 나선 시기였다. 갈증은 커졌지만 신앙은 답보상태에 있었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종교의 핵심은 죽음입니다. 죽는 연습이 철학입니다. 죽음을 없이 하자는 것이 종교입니다. 죽음의 연습은 영원한 얼생명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요 죽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산다는 것은 육체를 먹고 정신이 사는 것입니다. 몸으로 죽는 연습은 얼생명으로 사는 연습입니다."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 끝에 나온 말일 것이다. 삶은 끝없는 물음의 길이며, 죽음은 깨달음의 도(道)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육신의 죽음에서 얼생명의 하늘길까지. 류영모가 찾아낸 천로역정은 바로 그 대전환의 길이었다.

# 다석어록 : 하느님 아들이 되는 것은 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란 죽음을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는다는 것과 죽음을 넘어선다는 것은 같은 말입니다. 죽음과 깨달음은 같은 말입니다. 지식을 넘어선 사람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죽음을 넘어서고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죽어야 삽니다. 완전히 내가 없어져야 참나입니다. 참나가 우주의 중심이요 나의 주인입니다. 나의 주인이란 나를 지배하고 책임질 수 있는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 진리는 아는 것이 아닙니다.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아버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의 얼이 아버지의 얼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음이라 합니다. 깨달음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맨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장 순수한 것이 참입니다. 이 세상에서 참기쁨을 맛보려면 '나'라는 것이 적어져야 합니다. '나'가 적어져서 아주 적어져서 없어지면 기쁨만이 남습니다. 석가는 이것을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고 하였습니다. 적멸위락 이외에는 모두가 사도(邪道·올바르지 못한 길)입니다. '나'가 없어진 척한 것입니다. 도박·음행·오락·게임·구경·음주·마약에 일시 황홀해져 나를 잊는 것, 이런 게 사도입니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