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선택] ①‘리선권·정면돌파전·美대선’으로 본 제3차 핵담판 운명

2020-01-24 08:00
‘김형준·리선권’ 新외교라인 임명…북·미 비핵화 힘 빼나
대북제재 ‘정면돌파’ 선언…‘자력갱생’ 내부 결속에 집중
트럼프 운명 걸린 미국 대선 두고 북·미 서로 ‘눈치싸움’

“북·미 대화 낙관할 수도 없지만 비관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화의 문을 닫지 않았다고 판단, 북·미 대화 전망을 낙관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행보를 보면 북·미 정상 간 '제3차 핵 담판' 운명은 어둡기만 하다.

24일 외교가에서는 ‘재선’이라는 과제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돌연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북한이 원하는 ‘새로운 셈법’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북·미 대화가 다시 이뤄지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조선노동당 제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 이후 ‘정면돌파전’ 관철을 위한 내부 결속 다지기에 여념이 없는 것도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재개 가능성을 낮추고 있다. 게다가 북한 대미 외교라인의 투톱인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외무상의 해임으로 조금이나마 열렸던 북·미 대화의 틈이 좁아질 것이란 우려도 있다.
 

(왼쪽부터) 김형준 북한 노동당 신임 국제담당 부위원장, 리선권 신임 외무상. [사진=연합뉴스]


◆‘김형준·리선권’ 新외교라인 임명…북·미 비핵화 힘 빼나

‘미국통(通)’으로 불리던 북한 외교라인은 대미외교 경험이 없는 김형준 전 러시아 대사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교체됐다. 특히 군 출신의 ‘강경파’로 알려진 리선권의 임명 소식은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 희망에 찬물을 뿌리는 격이다.

리선권은 군 출신으로 ‘강경파’로 분류된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오른팔로 불리며 남북군사회담, 남북 고위급회담의 북측 단장으로 활동했지만, 전통적인 외교 엘리트는 아니다.

리선권 외무상 임명은 그동안 북·미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외무상의 역할 축소를 의미한다. 북한의 대미 외교 중요도도 이전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리 부위원장 대신 오랜 기간 러시아 대사였던 김형준이 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는 소식도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북한의 전반적인 대외 정책이 러시아 등 우방국과의 협력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의 근로자 단체들이 지난 22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과업을 관철하기 위한 궐기대회를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23일 1면에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연합뉴스]


◆대북제재 ‘정면돌파’ 선언…‘자력갱생’ 내부 결속에만 집중

북한이 경제난 극복에 초점을 맞추며 ‘정면돌파전’ 수행을 강조하는 것도 북·미 비핵화 협상 ‘무(無)진전’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제5차 전원회의 이후 노동신문은 연일 ‘정면돌파전’ 관철을 위한 궐기대회, 전원회의 확대회의 소식을 전하며 내부 결속을 강조하고 있다. 전날(23일)에는 근로 단체와 여성단체들의 궐기대회 소식을 전하며 모든 난관을 정면 돌파하자고 했다.

지난해 연말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요구하며 협상 재개를 저울질했던 대미 비난 메시지 횟수도 줄었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관심이 이전보다 줄어든 셈이다. 

지난 1일 ‘정면돌파전’ 선언 이후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공개 비난은 지난 10일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담화와 주용철 주제네바 북한대표부 참사관의 유엔 군축회의 공개발언이 전부다.
 

(왼쪽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트럼프 운명 걸린 美대선 두고 북·미 ‘눈치싸움’

북한은 중국, 이란 등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정책 관련 질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국가다. 또 야당인 민주당 대선 주자 토론회에서도 빈번히 등장하는 외교 사안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이란만큼은 아니지만, 북한 문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11월 미국 선거가 끝날 때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상태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북·미 모두 비핵화 협상 재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지만,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꺼낼 수 있는 카드를 고려하며 서로의 눈치를 보고 시간 끌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북핵 문제를 대선 때까지 끌고 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대선 판도가 명확하게 드러날 때까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적절한 수준에서의 압박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빅터 차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미가 적당한 시점에서 ‘1단계 합의’를 하고 미국 대선 이후까지 기다릴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이 더는 사용하지 않는 시설을 일시적으로 동결하고 미국은 부분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