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칼럼] 美 대선 앞두고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 시설 공개한 속셈은?
2024-09-28 08:39
북한은 지난 9월 13일 우라늄 농축 제조시설을 시찰하는 김정은의 모습을 전격적으로 공개하여 국제사회의 우려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현재 북한은 영변 지역 등 여러 곳에서 고농축 우라늄(HEU) 생산기지를 비밀리에 운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량형 원심분리기를 1만대 정도 확보하고 있으며, 매년 최소 8개 이상의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라고 추정한다. 김정은 정권은 미국 대선을 겨냥하여 올해 들어 각종 도발 행위를 복합적으로 해오고 있다. 9월 18일까지 각종 탄도미사일을 11차례 발사하였으며 9월 22일까지 쓰레기 풍선을 22차례 띄웠다.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8.15 통일 독트린’을 천명하였다. 이는 통일 대한민국을 위해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통일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며, “북한 주민들의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촉진 시키겠다”라는 뜻이 담긴 새로운 통일방안이다. 윤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의 첫걸음만 걸어도 정치·경제적 협력을 즉각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남북 대화협의체 신설도 제안했다. 그러나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전격 공개하여 핵 무력화를 한층 고조하는 상반된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실체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로 “핵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라고 협박한 적도 있었다. 트럼프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맥매스터 장군은 회고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 핵을 방어용이라고 믿었다”라고 주장하였다. 문 정부는 정권 말기에도 북한이 요구했던 유엔대북제재 해제와 종전선언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믿었던 문재인 전 정권의 안보 상황 인식이 정말 개탄스럽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했던 문 정부의 대북정책은 실패하였다. 김정은의 우라늄 농축시설 시찰 사진 한 장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최근 국제정세가 몹시 복잡하다. 한·미·일 안보협력체계의 두 축인 미국과 일본이 차기 지도자를 뽑는 선거 열풍에 빠져 왔다. 11월 5일 미 대선이 막바지에 있다. 지난 9월 10일 미 대선 후보인 해리스와 트럼프 간 세기의 토론이 열렸다. “민주당 후보 해리스가 잘했다”라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미 대선은 백중세로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일본도 그동안 기시다 현 총리를 뒤이을 자민당 총재 선거 열기로 어수선했다. 마침내 9월 27일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총재 선거에서 승리했다.
한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아직 지속 중이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으로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으며 푸틴 대통령은 서방 국가를 향해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지원하여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협박하였다. 푸틴은 실제로 9월 25일 ‘핵무기 사용규정’ 개정을 지시하였다. 미국과 서방 국가를 향해 핵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경고이다. 이란이 러시아에 탄도미사일을 제공했다. 이를 확인한 바이든 정부는 대이란 제재를 발표했다. 중동에서도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된다. 9월 23일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이 레바논에 거주하는 헤즈볼라에 대규모 폭격을 하여 중동전쟁이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전면전으로 확전될 조짐을 보인다. 김정은 정권은 혼란스러운 국제상황을 악용하여 HEU 제조시설 공개를 통해 한반도에서 불안감을 조성하고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어서 향후 북한에 유리한 국면으로 몰고 가려는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다.
도대체 김정은의 속셈이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자. 북한은 지난 30년간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핵 개발 고도화에 주력해 왔다. 북한은 국제상황이 불리하거나 새로운 기회 모색을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였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거부하거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였다. 2001년 조지 W. 부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 강경 보수주의자인 부시 대통령과 맞서기 위해 김정일 정권은 2002년 10월 미 정부에 핵 개발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시인하였으며 2003년 1월 NPT를 탈퇴하고 2003년 2월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오바마 정권 초반인 2010년에도 미국과의 협상력 제고 차원에서 핵 과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북한으로 초청하여 영변 HEU 시설을 보여주었다. 2005년 조지 W. 부시 2기 정부 출범 직후 김정일 정권은 6자회담 무기한 불참과 핵 보유 선언을 발표하였으며,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김정은 정권도 미 대선을 겨냥하여 2016년 1월 4차 핵실험에 이어, 9월에 5차 핵실험을 하였으며,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2017년 9월 6차 핵실험을 하여 대미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구축하려 했다. 북한의 반복적이고 비상식적인 도발은 ‘벼랑 끝’ 대미협상 전술의 대표적인 사례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을 압박하기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언제든지 7차 핵실험을 단행할 것이다. 지금 북한은 미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어 해리스와 트럼프 중 어떤 후보가 당선될 것인지 간을 보는 중이다.
북한의 HEU 시설은 플루토늄 핵시설보다 은밀하게 숨기기 쉽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2023년 8월 랜드연구소와 아산정책연구원은 공동연구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2030년 약 3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것이다”라고 추정하였다. 김정은의 도발적이고 위협적인 행동은 한국과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심각한 도전이다. 김정은은 ‘북한이 핵무기 제조 국가 대열에 들었다’라는 것을 국제사회를 향해 강조하고 미 대선 이후 차기 미국 정부의 관심을 끌어내어 ‘핵 협상테이블에서 담판 짓겠다’라는 속셈이다. 그동안 바이든 정부와 윤석열 정부가 굳건한 한미동맹을 통해 북핵 위협에 잘 대응함에 따라 북한의 핵 협박이 먹혀들지 않자, 김정은 정권이 차기 미 정부를 겨냥하여 한반도정세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다. 북한의 협상 목표는 비핵화가 아니라 핵 군축이며 국제사회의 여론을 조성하려는 고도의 술책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정권하에서 실시되었던 싱가포르·하노이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트럼프 정권 시즌2가 현실이 될 경우를 대비하여 차기 미 정부와 협상 지렛대로 삼기 위한 포석을 깔고 있다.
북한의 HEU 제조시설 공개 등 각종 도발 행위와 관련하여 향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 대응 방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첫째, 미 대선 전후로 북한의 도발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판단되어 윤 정부는 차기 미 행정부와의 한미동맹 강화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국가 지도자 교체 문제로 한·미·일 안보협력 체제가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미·일 외교협력 채널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둘째, 북한의 각종 신무기를 압도할 수 있도록 국산 신무기 개발과 게임 체인저급 미사일 고도화에 주력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더욱 증진해야 한다. 셋째, 북한과 러시아가 북·러 군사동맹을 통해 불법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UN 대북제재 위반행위 감시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넷째,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에서 지향한 것처럼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 문제를 적극적으로 국제사회에 제기해야 한다. 다섯째, 북한 도발이라는 엄중한 국가안보 문제에 여·야 정치권이 분열되지 않고 일치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해외동포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국가안보 의식 고취를 위한 통일·안보 교육도 적극적으로 실시되어야 한다.
여섯째,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 무력화 행태가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만큼, 근본적으로 국민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생각해야 한다. 윤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한층 더 격상시키고 차기 미 정부와 나토식 핵공유제도 도입, 주한미군 전술핵 재배치,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핵잠수함 도입 등을 적극적으로 협상해야 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특임 강의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