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칼럼] 마켓인텔리전스 강화로 산업변화에 선제 대응해야

2024-08-06 16:50

[엄태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대우교수]


 
최근 들어 글로벌 기업에서는 마켓인텔리전스 역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세계 최강국의 차기 대통령을 뽑는 미국 대선이 눈앞에 있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간의 대결로 미 대선 구도가 재편되었는데도 여전히 세간의 관심은 트럼프의 선거공약에 집중되고 있다. 이는 향후 미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따라 세계 경제는 물론이고 글로벌 기업들도 막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트럼프 후보는 선거유세에서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역설하고 있다. 미국에 투자한 전기차 기업을 지원하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도 폐지하겠다고 한다. 이에 미국에 투자한 글로벌 전기차 기업들과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이 긴장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트럼프 후보의 말 한마디에 주목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16일 반도체 지원법에 대해서도 비난을 하여 TSMC, 삼성전자 등을 긴장시키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TSMC를 겨냥해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사업을 모두 가져갔다. 대만의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으나 대만이 모두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가 현실화할 경우, 과연 반도체 지원법을 바꿀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지금 반도체 업체들에는 트럼프 발언의 속내를 읽어내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마켓인텔리전스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세계적으로 전기차가 일시적인 수요 둔화라는 캐즘 현상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BYD 등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요즘 부쩍 해외 현지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포화상태인 중국 시장을 넘어서 동남아, 유럽 등 글로벌 시장으로 진격하고 있다. 상당수 유럽 자동차 기업들은 전기차 분야에서 아직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도 전기차 혁신기업인 테슬라를 제외하고 GM과 포드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는 퍼스트 무버 전략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올해 상반기 2위를 기록하였다. 경쟁자들이 전기차 생산에 주춤하는 사이에 현대차는 여전히 전기차 생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4분기에 조지아주에서 전기차 전용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여 전기차에 심각한 정책적 규제를 가한다면 이는 산업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며, 미국의 전기차 시장성장에 찬물을 붓는 행위이다. 영국의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을 기억할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의 물결 속에서 증기자동차에 대한 마차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악법이다. 결국, 영국은 자동차 종주국이 되지 못했으며, 미국과 독일이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잡았다. 최근 미국의 전기차 혁신기업인 테슬라가 동력이 떨어져서 고민이다. CEO 일론 머스크는 ‘선두 기업은 혁신을 주도해야만 살아남는다’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중국 자율주행차 시장에 진출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현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구글의 자회사 웨이모가 로보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애플이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포기했지만, 세상은 조만간 자율주행차 시대를 본격적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테슬라가 이 사실을 잘 알기에 자율주행용 AI 반도체 칩을 자체 개발하였으며 무인 로보택시 공개를 준비 중이다. 중국에서는 바이두가 무인 로보택시를 운영하고 있으며 BYD, 화웨이, 샤오미 등 여타 업체들도 자율주행차 시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최근 전기차는 오픈AI의 생성용 AI 열풍과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이전되는 과도기적인 상황 속에서 그 열기가 주춤하고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자율주행차 시대를 앞당기려고 한다. 그것이 또 다른 기술혁신을 통해 생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 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다. 음악산업에서 애플의 아이팟과 아이튠스도 스포티파이의 스트리밍 혁신에 무릎을 꿇었다. 미국에서 한때 비디오 대여산업의 강자였던 블록버스터도 넷플릭스의 스트리밍에 패배하였다. 오프라인 유통업계 최고의 강자였던 월마트도 플랫폼 기업인 아마존에 밀려나는 쓰라린 경험을 맛보아야 했다. 미국 빅테크 대표 주자들도 바뀌었다. 한때 IBM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미국 시장을 주도하였으나 페이스북, 구글, 애플, 아마존 등에 혁신의 주도권을 넘겨주었으며 최근에는 오픈AI, 엔비디아가 미국의 새로운 기술혁신의 아이콘으로 시장을 이끌어 가고 있다.
 
국내시장도 마찬가지다.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이 지난 10년 동안 급성장을 하였으며, 네이버 등 플랫폼 기업들과 함께 오프라인 유통업체인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플랫폼 업체인 알리익스프레스의 거센 돌풍으로 쿠팡의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언제든지 틈새만 보이면 도전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LG전자는 과거 휴대전화 시장에서 세계 3위를 기록하였으나, 혁신 부족으로 2021년 스마트폰 생산을 철수하였으며, 그 역량을 전기차 전장 부문 등 다른 사업에 투입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다. LG전자와 삼성전자의 가전제품이 글로벌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것도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추격자인 하이얼, TCL 등 중국기업과의 확실한 차별화를 만드는 것이 1등 기업으로서 지위를 수성하는 길이다.
 
한국과 대만은 반도체 강국이다. 메모리 분야에서는 삼성전자가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만 TSMC가 세계 1위이다. 그런데 최근 AI 반도체가 각종 첨단산업 제품에서 필수적으로 들어가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서도 이제 메모리와 비메모리 간의 경계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실적은 여전히 좋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전통적인 메모리 부문에만 안주한다면 향후 거센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국내 반도체 회사인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를 추격하고 있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TSMC와 협력하여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고 있다. HBM 반도체 시장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삼성전자는 과거 애플에 반도체 칩을 제공하다가 애플과 특허문제로 소송전을 벌이면서 TSMC에 애플의 위탁생산을 빼앗긴 뼈아픈 경험을 하였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세계 1위 생산업체이면서 동시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이다. 또한, TSMC와도 파운드리 시장에서 경쟁 중이다. 삼성전자는 TSMC와 비교할 때에 경쟁업체 숫자가 훨씬 많다. 삼성전자 방식의 경영전략이 시너지 효과를 내지만, 때로는 단점이 될 수도 있다. HBM 반도체 시장의 패권을 놓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시장에 향후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등 중국 반도체 업체들도 가세할 것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계속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산업기술 변화의 흐름을 잘 간파해야 한다. 시장변화의 흐름을 폭넓게 읽을 수 있는 마켓인텔리전스 전문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세계시장 패권을 놓고 애플·중국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세계 1위인 삼성전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폴더블폰 디자인에 이어, 최근에는 AI통역 기능을 승부수로 내놓았다. 애플은 2007년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던 주역이었으며, 애플 창업자였던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Think Different’를 강조하였다. 그런데 현재 애플은 이렇다 할 혁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때 휴대전화 시장에서 세계 1위였던 노키아도 애플의 스마트폰 혁신에 맥없이 무너졌다. 삼성전자가 세계시장 1위의 지위를 계속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감탄하게 할 혁신적인 기술을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 와인 향을 맡을 수 있던지, 알라딘 램프요정처럼 스마트폰에서 홀로그램이 나타나는 등 소비자들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혁신은 소비자 취향과 산업발전 흐름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며 마켓인텔리전스 팀이 그 임무를 담당해야 한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특임 강의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