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법 감시위원회’ 양형에 반영 문제 놓고 논란

2020-01-19 16:21
재판부 “실질적 운영 잘 되면 이재용 부회장 양형에 참작”
특검 “재벌 체계 혁신 없는 준법 감시위원회는 유명무실”

삼성이 마련한 ‘준법 감시위원회’ 운영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양형에 참작하는 문제를 놓고 재판부와 특검 간에 법정 논란이 벌어졌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17일 오후 2시 5분에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속행 공판에서 “삼성이 마련한 준법감시위원회가 잘 운영되는지를 살펴 이재용 부회장의 형을 정하는데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팀은 “재벌 체계 혁신 없는 준법 감시위원회는 언제든 유명무실 해 질 수 있다”며 준법 감시위원회를 양형 참작 사유로 삼는 것에 반대했다.

지난해 피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언급하며 이에 버금가는 그룹차원의 재발방지대책을 주문했었다. 삼성이 그에 대한 대답으로 전직 대법관까지 내세우며 지난 9일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을 공식화했다.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에 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을 필두로 법조계와 시민단체 등 외부위원 6명, 이인용 삼성고문이 이름을 올렸다.

‘재판부의 과제를 마친’ 이재용 부회장은 파기환송심 네 번째 공판을 위해 검정색 코트 차림에 회색 넥타이를 매고 17일 오후 1시 30분 서초구 법원종합청사에 모습을 드러냈다.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으로 운영돼야 양형 조건으로 고려될 수 있다. 양형 심리와 관련해 삼성이 제시한 준법감시제도의 점검이 필요하다”며 준법감시위원회를 이 부회장의 형량을 정하는 데 반영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한 재판부는 “형사소송법 제279조에 따라 제3의 전문가를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해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시행되는지 점검할 것”이라며 3명의 전문심리위원단을 구성할 계획을 밝혔다. 강일원(61) 전 헌법재판관을 전문심리위원 중 한 명으로 재판부는 지명했다. 형사소송법 제279조 제2항은 소송관계나 소송절차를 원활하게 하려고 전문심리위원을 둘 수 있고, 이들은 전문 식견이 담긴 의견을 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재판 합의에는 참여할 수 없다.

이날 재판에서 이 부회장 변호인은 “최고경영진으로부터 독립된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고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 경영진의 준법의지를 표명하고 준법 문화를 정착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새로 꾸린 준법감시위원회 활동 내용을 20분 남짓 소개했다.

그러나 특검은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를 양형사유로 판단한 것에 대하여 ‘말을 바꿨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특검은 “재판부가 첫 공판에서 준법감시제도가 재판 진행 결과와 관계가 없다고 말했는데 달라진 것”이라며 “재벌체제 혁신 없는 준법감시제도와 전문심리위원 도입에 반대하고, 협조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특검은 “재판부가 언급했던 지배구조 재편 등 재벌체제를 막는 혁신이 없이 준법감시제도만 도입하면 오너의 변심에 따라 언제든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고 반박하면서 "재벌체재 혁신과 준법감시위 도입이 양형 사유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등 (재판부는) 충실하게 심사해 달라"며 "항간에서는 준법감시위 도입에 따른 재판 진행 경과를 보고 '이재용 봐주기' 명분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다. 재판부께서도 그런 의도는 아닐 거라 보고, 또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을 양형에 반영하는 것에 대하여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대하여 실형 면제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양형이란 법원이 처단형의 범위에서 구체적으로 선고할 형을 정하는 것을 말하는데, 처단형이 3년 이하가 되는 경우에 집행유예가 가능해진다.

이재용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되었고,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되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 출범을 양형기준으로 고려하게 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될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위원회의 출범이 이재용 부회장의 감형 수단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 = 이재용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