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제재 완화-핵 안바꿔, 한국 자중해라”…비핵화 대화 ‘완전 중단’(종합)

2020-01-11 17:16
김계관, 청와대 트럼프 생일친서 발표 다음날 담화 발표
“南 북·미 관계 중재자 역할 미련 남아 있나…주제 넘어”
“트럼프·김정은, 친분 이용한 북·미 대화 재개 없을 것”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생일 친서로 높아진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 가능성에 찬물을 부었다. 이와 함께 최근 신년사를 통해 북·미 대화 ‘조력자’에서 남북협력 ‘조정자’로서의 변화를 예고한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은 11일 담화를 통해 제재 완화를 위해 핵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히고, 우리 정부를 향해선 “자중하라”는 일침을 날렸다. 북·미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앉을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하고, 이 과정에서 남측의 역할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도 재확인한 셈이다.

김 고문은 이날 “새해벽두부터 남조선당국이 우리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미국 대통령의 생일 축하 인사를 대긴급 전달한다고 하면서 설레발을 치고 있다”며 북·미 간 직접적인 연결 채널이 있다는 것을 남측이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다고 비꼬았다.

이는 전날 청와대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생일친서를 보냈다고 전격으로 발표한 것에 대한 비난이다.

그는 우리 정부를 향해 “한집안 족속도 아닌 남조선이 호들갑을 떨었는데, 저들이 조미(북·미)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보려는 미련이 의연 남아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못 챙기는 바보 신세가 되지 않으려거든 자중하고 있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남측이 북·미 정상 간 친분에 ‘중뿔나게’ 끼어드는 것은 좀 주제넘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사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북한이 유지해온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의도를 분명히 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김 고문은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에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담화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이를 바탕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고문은 “(두 정상의) 친분을 바탕으로 혹여 우리가 다시 미국과의 대화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가진다거나 또 그런 쪽으로 분위기를 만들어 가보려고 머리를 굴려보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1년 반이 넘게 미국에 속아 시간을 낭비했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언급된 ‘1년 반’이라는 시간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부터 지난해 북한이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연말’까지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 고문은 “설사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개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말 그대로 ‘개인’적인 감정이어야 할 뿐”이라며 “(김 위원장이) 그런 사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국사를 논하지는 않으실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그러면서 북·미 대화 재개 조건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를 내세우면서도, 미국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북·미 대화 재개는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고문은 “조미 사이에 다시 대화가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미국이 그렇게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며 또 그렇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고문이 언급한 ‘우리가 갈 길’은 조선노동당 제7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 선언된 ‘정면돌파전’인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로이터·연합뉴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담화의 주체로 김계관 고문을 내세운 것은 압박의 강도를 다소 조절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며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축하친서 전달 후 곧장 반응을 보인 것은 한반도 상황을 북한이 주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담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김 고문의 이번 담화는 올해 첫 대미·대남 비난 메시지가 담긴 담화이다. 앞서 북한은 미국의 이란 수뇌부 공습에도 정부의 공식 발표 없이 중국, 러시아 등 제3국의 입을 빌려 미국을 우회적으로 비난해왔다.

대남 메시지는 지난해 11월 21일 조선중앙통신이 ‘모든 일에는 때와 장소가 있는 법’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문 대통령이 부산 한·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특별정상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하는 친서를 공개적으로 거절을 선언한 것이 마지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