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휘두른 칼은 칼잡이를 찌른다

2020-01-06 00:01


秋夜獨上江月軒 回億恨去一劍士
五更登廳非觀月 三朝避穀不求仙

가을 밤에 달이 뜬 강가 정자에 홀로 올라
한스럽게 떠난 칼잡이를 떠올린다
한밤 중에도 출근한 것은 달을 보기 위함이 아니고
세끼를 제때 챙기지 않은 것은 신선이 되기 위함이 아니었네

不知身在急流中 夜半辭家破凶賊
雷雨被襲何變有 嘆聲憂慮滿劍廳

제 몸이 급류에 휩쓸린 것도 모르고
밤늦게까지 흉적을 무찌르려 집 밖을 다니다가 
천둥 벼락을 맞았으니 이런 변고가 있는가?
걱정 가득한 칼청(劍廳)에는 탄성만 들린다.

이 한시는 2002년 11월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 제2과장이던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 독직폭행치사혐의로 구속된 홍모 서울지검 검사를 보면서 썼다고 알려진 ‘애련검사설’이다.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칼을 휘두르다 결국 자신의 칼에 스스로 찔리고 만 후배를 보는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당시 홍 검사는 의정부지역을 주름잡던 폭력조직 두목 조모씨의 살인혐의를 수사하던 중이었다. 정황상 조씨의 지시와 개입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충분했지만 물증확보가 어려웠던 수사팀은 급기야 조씨를 폭행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사라진 서울지검 11층 특별조사실에서 시작된 폭행은 무술경관까지 동원돼 몇 시간 동안 이어졌다. 함께 붙잡혀간 다른 조직원들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당시 검찰은 피의자의 옷을 벗겨놓고 두들겨 패기도 했고 성기와 낭심을 움켜잡거나 때리는 등의 성적 모멸감을 주는 방식으로 폭행을 했다. 심지어 ‘자백하지 않으면 임신 중인 네 와이프를 구속하겠다’는 등의 비열한 협박도 있었다.

결국 다음 날 아침 피의자 가운데 한명인 조씨는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검찰과 인권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검찰은 가혹행위도 모자라 밤샘 구타로 기진맥진한 피의자를 물고문까지 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 사건으로 홍 검사와 검찰 수사관 여러 명이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고 유죄판결을 받았다.

검찰 조직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한 복판에서 피의자가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심각했다. 사람이 죽었다는 결과를 차치하더라도 법과 원칙을 누구보다 존중하고 지켜야할 검찰이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고문이라는 불법을 자행했다는 것만으로 상황은 엄중했다.

직접 책임이 있는 서울지검장과 3차장검사가 문책을 받은 것은 물론이고 당시 김정길 법무부 장관과 이명재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등 소용돌이가 몰아쳤다. 검찰로서는 최대 위기였다.

여기에 추가 조사과정에서 영장도 없이 피의자를 체포했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지 못하게 막았을 뿐만 아니라 면회까지 금지시키는 등 대놓고 검사가 대놓고 법을 위반했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주범 격인 홍 검사가 겨우 징역 1년6월의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치자 거센 반발과 함께 ‘검찰 개혁’이 본격적인 화두로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 한시는 ‘칼잡이’가 칼을 함부로 휘두르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알려주는 사례로 서초동 법조계에 회자됐다. 제 아무리 정의구현이 목적이라고 해도 법과 원칙을 벗어난 검찰권 행사는 칼잡이를 찌를 뿐만 아니라 검찰 조직 전체를 풍전등화의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검찰이 피의자를 구타하는 일은 없어졌을 것으로 믿는다. 피의자든 참고인이든 불려오기만 하면 일단 윽박지르고 모멸감을 줘 원하는 진술을 받아내거나 자백을 강요하며 ‘가족’을 위협하는 일 따위는 구시대의 폐습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낮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시간을 끌다가 일부러 밤을 새워 피의자를 조사하는 꼼수라던지 이런저런 핑게로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게 막는 반인권적 행태들도 사라졌을 것으로 믿는다. 검사가 잘못을 저질러 사람이 죽었는데도 1년6개월의 징역만 선고되는 ‘그들만의 리그’도 이젠 옛날 일이 됐을 것이다. 

무엇보다 ‘정의구현’을 명분 삼아 칼을 함부로 휘두르는 검사가 그 이후로는 모조리 사라졌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법과 원칙을 무시한 채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것은 ‘검객’이 아니라 ‘망나니’에 불과하다는 교훈을 18년 전에 얻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 같은 엘리트 조직이 그 같은 대형참사를 겪고도 그렇게 간단한 교훈 하나 깨닫지 못했을 리 없다. 아무렴, 그렇지. 당연하고 말고···

장용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