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두산' 이병헌 "'광해' '내부자들'…또 배변신? 이유 있다"
2019-12-26 11:09
멋쩍다. 배우 이병헌(49)의 연기를 보며 "잘한다"고 칭찬하는 일만큼 새삼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 김병서)를 보면 그 새삼스러운 '말'이 입 밖으로 마구 터져 나온다.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인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 이병헌은 작전의 '키'를 쥔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 역을 연기한다.
"재난 영화는 처음 출연했어요. 그럼에도 선뜻 나온 건 '백두산'이 늘 봐온 재난 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에요. 제 궁금증을 자극했죠. 또 재난영화인 동시에 버디 무비 성격이 강해서 (하정우와) 케미가 잘 맞는다면 재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
영화 속 이병헌은 자유자재로 경계선을 넘나든다. 북한 무력부 소속의 냉철함과 인간 리준평의 따듯함을 오가는 그는 캐릭터를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만든다.
이는 이병헌의 '흥'한 영화 공통점이기도 하다. '광해'부터 '내부자들' '그것만이 내 세상'까지. 한없이 가볍다가도 묵직한 인물을 거리낌 없이 그려냈다.
그 모습이 여과 없이 보인 게 바로 '배변신'이다. 해당 영화 속에 공통점으로 담긴 장면이기도 하다. 무게감을 덜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 그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동시에 충격을 안겼다. "이병헌의 흥한 영화에는 꼭 배변신이 들어있다"고 농담하자, 그는 "이제라도 하나씩 꼭 넣어야 하나"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시나리오에 문제의 '대변 신'이 있었죠. (책을 읽고) '이 장면은 엉덩이를 보여주는 거야 아니면 풀숲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미는 거야?' 물었는데 감독님께서 우물쭈물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워낙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이거든요. 너무 어렵게 '선배님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말문을 열더라고요. '아, 그런 건 배우가 해줘야지! 재밌다고 생각하면 하는 거야!'하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이병헌이 언급한 장면은 리준평이 조인창(하정우 분)을 비롯한 EOD의 눈을 피해 달아나기 위해 "볼일 좀 보자"고 유인하는 장면이다. 볼일을 보던 도중 리준평은 한눈을 파는 EOD 대원을 공격하고 달아난다.
"만약 그 신이 '광해' '내부자들' 때문에 억지로 넣은 것처럼 느껴졌다면 저 역시도 거부감이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장치적으로 꼭 필요했고 억지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껏 연기했죠. 설득력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만의 정확한 '규칙'과 '이해'가 있는 배우. 그는 '백두산' 리준평 역시 섬세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첫 등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반 이상 보일 거라고 봤죠. 상대를 깜짝 놀라게 만들며 임팩트 있게 등장해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고 또 갑자기 러시아어가 터져 나오고…. '이 사람 뭐지?' 하는 궁금증과 의구심이 생기잖아요. 상대를 현혹하려는 모습이 첫 신에서 잘 드러난다고 봤어요. 캐릭터를 설정하고 하나하나 잡아가니 인물이 선명해지는 걸 느꼈죠."
리준평이 쓰는 언어를 위해 총 4명의 선생님이 따라붙었다. 북한 사투리부터 목포 사투리 중국어 그리고 짧게 등장하는 러시아어까지. 디테일이 중요했기에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시작 전엔 '북한 사투리를 써야 한다고?' 부담이 컸는데 막상 해보니까 중국어가 제일 힘들더라고요. 발음이며 성조까지. 어려움이 많았죠."
뿐만 아니었다. 리준평은 사투리뿐만 아니라 총격 액션에도 능해야 했다. "거친 액션이 많았는데 사격 연습을 따로 했냐"고 물으니 그는 "이 영화 때문에 따로 준비한 건 아니라"며 솔직히 답했다.
"예전에 '지아이조' 찍으러 갔을 때 총기 훈련을 받았어요. 또 '매그니피센트7'도요. 할리우드 영화는 총을 잠깐이라도 쥐는 역할이면 충분히 익혀야 해서 지겹도록 연습했죠. 그래서 사실 이번 작품을 찍을 땐 따로 (총격 액션을) 준비하지 못한 거 같아요. 자만일 수도 있겠죠. '난 총기 훈련받았으니까' 하고…. 반성하게 되네요."
따로 연습은 없었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내내 긴장한 상태라고 했다. "몸은 기억하고 있지만, 몸은 늘 뜨거워야 한다"라는 게 이병헌의 철칙이다.
"웜업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벌어지기도 하니까. 몸은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앞서 언급했듯 '백두산'은 재난영화인 동시에 버디 무비다. 배우들과 호흡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병헌은 완벽히 다른 '결'을 가진 하정우와도 좋은 호흡을 발휘했다.
"저는 센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하정우는) 센스가 뛰어난 친구죠. 그게 연기에도 묻어나고 그걸 잘 활용할 줄 아는 거 같아요."
이병헌과 하정우는 연기 결 자체가 다른 배우다. 하정우가 거친 선을 자랑한다면 이병헌은 섬세한 터치로 디테일을 잡는 걸 즐긴다. "완벽히 다른 타입과 연기했기에 새롭게 환기되는 면이 있었냐"고 묻자 그는 대번에 마동석까지 꿰어 자극이 되는 면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정우 씨 마동석 씨 모두 마찬가지예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 '장치에 그치는 장면'이라고 여겼던 걸 재밌게 살려내는 걸 보고 '배우가 가진 매력이 이런 거구나' 깨닫게 됐어요. 그게 본인의 매력이고 센스가 아닐까요."
이병헌의 '호흡'은 짧게 등장한 전도연과도 빛났다. 리준평의 아내로 특별출연한 전도연은 짧지만 강렬한 연기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저도 놀랐어요. '도연 씨가 출연한다고?' 이틀 정도 촬영한다는 걸 알고 의아했죠. 이전에도 계속 호흡을 맞췄던 배우기 때문에 따로 연습할 필요도 없었어요. 정말 중요한 신이었는데도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었죠.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반갑고 좋았어요."
한국 영화 100주년. 촬영 환경부터 제작 배급 등 그간 한국영화계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그러하다.
최근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 아카데미 시상식 예비 후보로도 이름을 올리며 세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먼저 할리우드의 길을 터놓은 한국 배우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해외에서 '기생충'에 관한 평가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같은 영화인으로서 정말 뿌듯하죠. 아카데미 시상식은 단 한 번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잖아요. 외국어영화상은 물론 본상도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게 대단해요. 엄청 엄청난 일이잖아요?"
쉬지 않고 달렸다. 매년 영화·드라마를 찍고 국내외를 오갔다. 한해를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으니 "거의 쉬지 못했다"라며 멋쩍게 웃는다.
"그간 거의 쉬지 못했는데 올해에는 쉬는 시간이 조금 있었어요. 일정을 이렇게 타이트하게 잡아야지 하고 생각한 건 아닌데 운 좋게도 원할 때 원하는 작품이 탁탁 나타나 주는 거 같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데뷔 30년 차인 이병헌에게 '영화 촬영장'은 어떤 곳인지 물었다. 그는 짧게 고민한 끝에 "긴장 반 기대 반"이라고 답했다.
"긴장도 되지만 대부분은 기대가 큰 거 같아요. 한 작품 한 작품 잘해나가는 게 제겐 너무 중요하죠."
남과 북 모두를 집어삼킬 초유의 재난인 백두산의 마지막 폭발을 막아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속 이병헌은 작전의 '키'를 쥔 북한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 '리준평' 역을 연기한다.
"재난 영화는 처음 출연했어요. 그럼에도 선뜻 나온 건 '백두산'이 늘 봐온 재난 영화와는 달랐기 때문이에요. 제 궁금증을 자극했죠. 또 재난영화인 동시에 버디 무비 성격이 강해서 (하정우와) 케미가 잘 맞는다면 재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
영화 속 이병헌은 자유자재로 경계선을 넘나든다. 북한 무력부 소속의 냉철함과 인간 리준평의 따듯함을 오가는 그는 캐릭터를 입체적이고 풍성하게 만든다.
그 모습이 여과 없이 보인 게 바로 '배변신'이다. 해당 영화 속에 공통점으로 담긴 장면이기도 하다. 무게감을 덜고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 그 장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동시에 충격을 안겼다. "이병헌의 흥한 영화에는 꼭 배변신이 들어있다"고 농담하자, 그는 "이제라도 하나씩 꼭 넣어야 하나"라고 웃으며 받아쳤다.
"시나리오에 문제의 '대변 신'이 있었죠. (책을 읽고) '이 장면은 엉덩이를 보여주는 거야 아니면 풀숲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미는 거야?' 물었는데 감독님께서 우물쭈물하더라고요. 감독님이 워낙 내성적이고 조심스러운 성격이거든요. 너무 어렵게 '선배님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말문을 열더라고요. '아, 그런 건 배우가 해줘야지! 재밌다고 생각하면 하는 거야!'하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만약 그 신이 '광해' '내부자들' 때문에 억지로 넣은 것처럼 느껴졌다면 저 역시도 거부감이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장치적으로 꼭 필요했고 억지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껏 연기했죠. 설득력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만의 정확한 '규칙'과 '이해'가 있는 배우. 그는 '백두산' 리준평 역시 섬세하게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첫 등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거기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반 이상 보일 거라고 봤죠. 상대를 깜짝 놀라게 만들며 임팩트 있게 등장해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하고 또 갑자기 러시아어가 터져 나오고…. '이 사람 뭐지?' 하는 궁금증과 의구심이 생기잖아요. 상대를 현혹하려는 모습이 첫 신에서 잘 드러난다고 봤어요. 캐릭터를 설정하고 하나하나 잡아가니 인물이 선명해지는 걸 느꼈죠."
리준평이 쓰는 언어를 위해 총 4명의 선생님이 따라붙었다. 북한 사투리부터 목포 사투리 중국어 그리고 짧게 등장하는 러시아어까지. 디테일이 중요했기에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시작 전엔 '북한 사투리를 써야 한다고?' 부담이 컸는데 막상 해보니까 중국어가 제일 힘들더라고요. 발음이며 성조까지. 어려움이 많았죠."
뿐만 아니었다. 리준평은 사투리뿐만 아니라 총격 액션에도 능해야 했다. "거친 액션이 많았는데 사격 연습을 따로 했냐"고 물으니 그는 "이 영화 때문에 따로 준비한 건 아니라"며 솔직히 답했다.
"예전에 '지아이조' 찍으러 갔을 때 총기 훈련을 받았어요. 또 '매그니피센트7'도요. 할리우드 영화는 총을 잠깐이라도 쥐는 역할이면 충분히 익혀야 해서 지겹도록 연습했죠. 그래서 사실 이번 작품을 찍을 땐 따로 (총격 액션을) 준비하지 못한 거 같아요. 자만일 수도 있겠죠. '난 총기 훈련받았으니까' 하고…. 반성하게 되네요."
따로 연습은 없었다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내내 긴장한 상태라고 했다. "몸은 기억하고 있지만, 몸은 늘 뜨거워야 한다"라는 게 이병헌의 철칙이다.
"웜업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벌어지기도 하니까. 몸은 항상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앞서 언급했듯 '백두산'은 재난영화인 동시에 버디 무비다. 배우들과 호흡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병헌은 완벽히 다른 '결'을 가진 하정우와도 좋은 호흡을 발휘했다.
"저는 센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하정우는) 센스가 뛰어난 친구죠. 그게 연기에도 묻어나고 그걸 잘 활용할 줄 아는 거 같아요."
이병헌과 하정우는 연기 결 자체가 다른 배우다. 하정우가 거친 선을 자랑한다면 이병헌은 섬세한 터치로 디테일을 잡는 걸 즐긴다. "완벽히 다른 타입과 연기했기에 새롭게 환기되는 면이 있었냐"고 묻자 그는 대번에 마동석까지 꿰어 자극이 되는 면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정우 씨 마동석 씨 모두 마찬가지예요. 시나리오를 읽을 때 '장치에 그치는 장면'이라고 여겼던 걸 재밌게 살려내는 걸 보고 '배우가 가진 매력이 이런 거구나' 깨닫게 됐어요. 그게 본인의 매력이고 센스가 아닐까요."
이병헌의 '호흡'은 짧게 등장한 전도연과도 빛났다. 리준평의 아내로 특별출연한 전도연은 짧지만 강렬한 연기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저도 놀랐어요. '도연 씨가 출연한다고?' 이틀 정도 촬영한다는 걸 알고 의아했죠. 이전에도 계속 호흡을 맞췄던 배우기 때문에 따로 연습할 필요도 없었어요. 정말 중요한 신이었는데도 어렵지 않게 맞출 수 있었죠. 오랜만에 만나서 정말 반갑고 좋았어요."
한국 영화 100주년. 촬영 환경부터 제작 배급 등 그간 한국영화계의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도 그러하다.
최근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 아카데미 시상식 예비 후보로도 이름을 올리며 세간의 이목이 쏠린 가운데 먼저 할리우드의 길을 터놓은 한국 배우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해외에서 '기생충'에 관한 평가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같은 영화인으로서 정말 뿌듯하죠. 아카데미 시상식은 단 한 번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잖아요. 외국어영화상은 물론 본상도 넘볼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는 게 대단해요. 엄청 엄청난 일이잖아요?"
쉬지 않고 달렸다. 매년 영화·드라마를 찍고 국내외를 오갔다. 한해를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냐고 물으니 "거의 쉬지 못했다"라며 멋쩍게 웃는다.
"그간 거의 쉬지 못했는데 올해에는 쉬는 시간이 조금 있었어요. 일정을 이렇게 타이트하게 잡아야지 하고 생각한 건 아닌데 운 좋게도 원할 때 원하는 작품이 탁탁 나타나 주는 거 같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데뷔 30년 차인 이병헌에게 '영화 촬영장'은 어떤 곳인지 물었다. 그는 짧게 고민한 끝에 "긴장 반 기대 반"이라고 답했다.
"긴장도 되지만 대부분은 기대가 큰 거 같아요. 한 작품 한 작품 잘해나가는 게 제겐 너무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