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경세유표 18-4] ‘네 땅도 내 땅’ 진격의 국가(國歌)들
2019-12-09 06:00
국가(國歌)는 국가(國家)다
∙ 억압의 사슬로부터 조국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바다도 건너리라 - 폴란드 국가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 희망의 왕국에는 겨울이 없다. - 폴란드 속담
◆국가(國歌)는 국가(國家)다
상징이란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갖고 나타내는 기호를 말한다. 상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 권위와 권력 등을 감각적인 것으로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 국기와 국가(國歌, National Anthem), 나라꽃, 나라문장 등으로 나타내는 상징들은 유력한 통치의 수단과 도구를 형성한다. 어쩌면 국가 자체가 상징이 엮어내는 상징체계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각국은 각기 자기 나라의 역사와 지리, 민족과 문화를 기초로 국가 상징을 정하고 있다.
특히 ‘국기’와 ‘국가’는 국가의 운명과 함께 하는 양대 대표 국가상징이다.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데 국기와 국가가 있을리 없다. 무릇 나라가 있는 한 국제사회에서 나라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국기와 국가는 필연적이다.
세계 대다수 나라는 국기와 국가를 헌법과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한국은 국기만 법으로, 국가는 법 아닌 대통령훈령으로 정하고 있다.)
국가는 국기의 도형, 그림, 색깔 등 시각적 이미지에 국한된 추상적 상징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국가는 언어와 문자, 음악으로 한 나라의 모든 시간과 공간, 지와 정을 함축하는 오감의 이미지로 대표하는 포괄적 기능을 가진다. 국가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불문하고 한 나라의 국민이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누구나 공감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영속적인 가치를 지닌다.
세계 대다수 국가 가사는 나라와 민족의 발흥기와 재건기, 전쟁, 혁명 등 역사적 사건을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읊은 서사시다. 국가의 독립과 국토의 수호, 혁명의 성취, 민족 전통과 정의, 평화, 수호를 노래한 행진곡 풍의 선율을 붙인 군가 또는 찬가다. 세계 국가의 가사에 제일 많이 등장하는 단어의 하나는 ‘빛’이다. 진취적, 긍정적, 미래지향적인 빛의 노래다.
다음은 유럽연합(EU) 각국의 국가 가사를 다섯 가지 성향별로 분류한 '2018년 유럽연합 보고서'다. 독립과 혁명 군가와 국토수호 찬가가 제일 많다.
1. 독립(혁명)전쟁 군가(8개국): 프랑스, 이탈리아, 터키, 아일랜드, 불가리아, 그리스, 포르트갈, 루마니아
2. 국토(수호) 찬가(6개국) : 폴란드, 오스트리아, 핀란드, 체코, 에스토니아, 크로아티아
3. 민족 전통 찬가(5개국) : 벨기에, 헝가리, 라트비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4. 자유 정의 평화 찬가(5개국): 독일, 몰타,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 룩셈부르크
5. 왕실 찬양가(4개국): 영국 덴마크 네델란드 스웨덴
참조: UNITED IN DIVERSITY: ANTHEMS AND FLAGS OF THE EUROPEAN UNION, 2018.
우리나라 애국가 후렴의 ‘삼천리’라 함은 약 1200km로 한반도 남단 해남에서부터 함경북도 중부 청진시까지의 거리 정도일 뿐. 간도 지역은 물론 한반도조차 포괄하지 못하는 짧은 거리다.
19세기 말 이전 한국과 명·청시대 중국의 모든 문헌에 우리 영토는 '사천리'로 표기돼 있다. ‘삼천리’는 사형보다 혹독한 곤장 100대가 병과된 삼천리 유배형을 의미했다. 상세한 내용은 뒤에 설명하겠다.
동서고금의 모든 국가는 한국의 애국가처럼 자기 나라의 영토를 구체도량단위(삼천리)로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원래의 ‘사천리’ 국토를 ‘일천리’ 나 참절한 국토 참절가를 4번이나 반복하는 후렴으로 주술 외우듯 부른다.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철이면 철마다.
대다수 나라의 국가는 자기 나라의 주권적 지위와 권능 노래 국가에 자국의 최대확장 버전을 담고 있다. 지면 관계상 인도와 네팔, 독일과 폴란드 4개 나라의 국가만 소개한다.
1. 타고르 작사 인도 국가는 파키스탄 영토 절반이 인도 영토
인도 국가 <인도의 아침 (Jana Gana Mana)>
그대만이 인도의 운명을 좌우한다./ 마음의 지배자,/ 그대의 이름은 잠자는 나라 인도의 마음을 눈뜨게 한다. / 그대의 이름은 펀자브*, 신드*, 구자라트*와 마라타*, /드라비다*와 오리사*와 벵골*의 마음에서 깨어난다./ 그 이름이 빈디아*의 언덕과 히말라야* 산봉에 메아리치고 /갠지스강*과 야무나강*의 노래와 섞이며, 인도양*의 찬송을 받는다./ 마음의 지배자 그대에게 승리 승리 승리 / 승리는 그대에게
대문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년~1941년)가 영국에 항거하면서 1911년 직접 작사·작곡했다. 타고르가 쓴 시는 5개 절로 되었으나 그 1절만을 인도 헌법의회에서 1950년 1월 24일 국가로 채택됐다.
한개 절 뿐인 가사의 총 연주시간 52초. 이 짧은 시간에 ‘펀자브’부터 ‘인도양’까지 지명이 무려 12개나 나와 세계에서 가장 지명이 나오는 국가로 손꼽힌다.
그런데 이 지명들은 모두 현재 인도의 영토일까? 아니다! 맨 처음 나오는 ‘펀자브Punjap)’는 파키스탄의 4개 주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이 사는 주의 이름이다. 두 번째 나오는 지명 ‘신드(Sind)’는 파키스탄의 최대 도시 카라치가 소재한 주의 이름이다. 참고로 파키스탄(Pakistan)의 국호는 펀자브(Punjap), 아프간(Afghan), 카슈미르(Kashimir), 신드(Sind), 발루치스탄(Baluchistan)의 글자를 딴 글이다.
사실 타고르는 파키스탄 땅을 탐내서 쓴 시가 아니다. 1911년 당시 영국이 지배중인 ‘펀자브’와 ‘신드’를 수복하려는 의도로 작시한 것이다.
사실 파키스탄은 영국령 인도제국이었으나 영국의 분할 통치의 일환이자 종교적 이유로 1947년 8월 인도와 분리 독립했다
아무튼 인도 국가는 한국의 국가 가사에 ‘요령과 길림, 송화강, 흑룡강 등 모든 만주는 우리땅’이라고 명기해놓은 격이다. 지금의 애국가가 국토참절가 일왕찬양 ‘왜국가’가 아니고 진짜 한국 애국가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2. 기개가 놀라운 네팔 국가
네팔 국가 <백송이의 꽃>
수백 송이 꽃으로 묶인, 우리는 네팔의 화환이다 / 메치*부터 머하칼리*까지 주권을 넓혀 나가자
대자연이 주는 풍요의 옷자락은 그 끝이 없고 / 열사들의 피로써 이룬 이 나라는 자유롭고 흔들리지 않는다/ 지혜와 평화와 들과 언덕과 높은 산의 땅 / 나눌 수 없는 이 사랑받는 우리 땅, 우리의 모국 네팔 / 수많은 인종, 언어, 종교, 문화가 놀랍도록 펼쳐지는 /우리의 진보하는 나라, 네팔을 모두 찬미하세!
네팔의 국가 ‘백송이 꽃’은 2006년 네팔 신정부가 주최한 국가 가사 선정 공모전 출품 1272편 가운데 최우수작 시가다. 국가의 사전적 정의는 나라의 이상과 기개(氣槪)를 나타낸, 의식(儀式) 때 부르도록 지어서 작정(作定)한 노래다. 네팔의 국가가 가장 부합하다고 평가한다.
네팔의 주권, 국토, 통일, 용기, 아름다운 경치, 자부심, 진보, 평화, 문화, 생물 다양성, 존중을 찬양하는 가사로 평가받는다. 가사의 우수성 덕분에 2016년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 올림픽 당시 영국의 BBC가 주최한 ‘가장 놀라운 국가"(Rio 2016: The most amazing national anthems)"’ 세계 3위로 등극하였다.
그런데 이 국가 둘째 마디 “메치부터 머하칼리까지 주권을 넓혀나가자” 에 등장하는 ‘메치’와 ‘머하칼리’가 어디인가? 메치는 네팔의 극동부와 그 너머 땅, 머하칼리는 네팔의 극서부와 그 너머 땅을 가리킨다. 네팔 국가 가사 역시 최대한 자국의 영토 최대 확장 버전 가사다. 영국 BBC는 이런 네팔의 넘치는 패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국가 3위곡에 선정한 건 아닐까? 모름지기 국가엔 그 나라의 이상과 기개를 담아야 한다.
3. 히틀러 이전, 독일은 ‘유럽정복’의 이상을 국가에 담았다.
독일 국가 <독일인의 노래>
1절 :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 방어와 공격의 정신으로/ 우리는 단결하자 형제처럼 단결하자/ 마스*에서 메멜*까지 에치*에서 벨트*까지 / 독일,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독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독일!
2절 :독일의 여인은, 독일의 성실은, /독일의 와인은, 독일의 노래는, / 온 세계에 간직되어야 하리라 / 이들의 오랜 아름다운 메아리는 / 우리의 온 일생에 걸쳐 / 고귀한 행동을 고무하였도다
독일의 여인, 독일의 성실,/ 독일의 와인, 독일의 노래!
3절 : 조국 독일에 권리와 자유 / 우리는 단결하자 모두 손을 잡고/ 권리와 자유는 우리의 행복/ 행운 있으라 꽃 피라 빛나는 조국 행운 있으라 / 꽃 피라 빛나는 조국 독일이여!
독일 국가는 하이든이 1797년 오스트리아 국가로 작곡한 것에 게르만 민족주의 시인 팔러슬레벤이 1841년 시를 맞춰 붙인 것이다. 1922년 8월 11일에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가 '독일인의 노래'를 국가로 공식 선포했다. 모두 3절로 구성돼 있는데 아돌프 히틀러 집권시에 노골적인 팽창주의 일색의 1절만 국가로 불렀다.
독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나치 독일의 국가였던 ‘독일인의 노래’가 금지되면서 독일에는 한동안 국가가 없었다. 그러나 1952년에 1절과 2절을 제외하는 조건으로 '독일인의 노래'가 국가로 부활했다. 1절은 독일의 유럽 지배를 정당화하는 팽창주의가 농후하여 제외됐으며, 2절 또한 여자와 술을 강조하는 권주가로 국가에서 제외됐다.
1990년 서독과 동독이 통일한 뒤 새로운 국가(國歌) 지정에 관한 논란이 있었으나, 결국 동독을 흡수 통일한 서독의 국가가 독일 국가로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독일 국가 1절이 얼마나 팽창주의 일색일까? 등장하는 지명이 어딘가 하고 살펴보곤 깜짝 놀랐다. 마스(뫼즈강)는 독일의 서쪽 국경을 넘어 한참 지나 프랑스, 벨기에, 네델란드를 흐르는 강이고 메멜(네만강)은 독일의 동쪽 국경을 넘어서도 한참 지나서 리투아니아와 러시아, 벨라루스를 흐르는 강이다. 에치(아디제강)는 독일의 남쪽 알프스 산맥을 넘어 한참 지나 흐르는 이탈리아 강이고, 벨트(페마른 해협)는 독일의 북쪽 바다를 건너 한참 지나 발트해 덴마크 해역이다.
알고 보니 독일의 팽창주의는 1841년 작사 당시부터 움트기 시작했다. 1918년 빌헬름2세의 독일제국 대신에 들어선 독일 최초의 민주헌정체제 바이마르 공화국 1922년 당시에 이미 독일 국가로 피어났다. 1934년 총통으로 집권한 나치독일 아돌프 히틀러는 1절만을 부르게 하여 게르만 팽창주의를 더욱 노골적으로 명확히 하여 실행했을 뿐이다.
4. 폴란드가 생존 비결은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국가에 있다.
폴란드 국가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1절: 폴란드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 죽지 않는다.
어떠한 외적들이 우리를 침략해도 우리는 손에 든 칼로 되찾으리라.
2절 :비스와강*을 건너 바르타강*을 건너 우리는 폴란드인이 되리라.
나폴레옹이 본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어떻게 승리해야 하는가를
3절: 차르니에츠키가 스웨덴과 싸워 포즈난*을 수복한 것처럼
억압의 사슬로부터 조국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바다*도 건너리라
후렴(3번 반복): 행군! 행군! 다브로스키여, 이탈리아에서 폴란드까지, 우리는 단결하리라.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폴란드의 국가는 폴란드의 독립혁명가 애국시인 요제프 비비츠키(Józef Wybicki, 1747년~1822년)가 지었다. 작곡자는 미상으로 폴란드의 4분의 3박자 민요인 마주르카 선율이다.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국가 제목은 두 번 죽었다가 세 번째 살아난 폴란드 그 자체다. 17세기 유럽에서 가장 국토가 크고 인구가 많은 강대국이었던 폴란드는 1795년 프로이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해 전 국토가 3분되어 망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1918년 독립을 되찾아 부활했던 폴란드는 다시 1939년 나치 독일과 소련의 침략을 받아 서부는 독일에, 동부는 소련에 양분돼 세계지도에서 사라졌다. 2차세계대전 연합국의 승리로 폴란드는 1945년 해방되어 또 다시 부활했다.
셋으로 쪼개져 죽었다가도 살아나고 또 다시 둘로 쪼개서 또 죽었는데, 또 다시 사는 불사신 같은 나라 국가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에 나오는 지명들을 살펴보자.
‘비스와강’은 폴란드 남부국경을, ‘바르타강’은 폴란드의 서부국경을 흐르는 강이다. 그런데 그 강들을 건너는 폴란드인이 되자고 외치고 있다.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발트해 건너 스웨덴을 역공하여 폴란드 영토를 수호했던 17세기 명장 스테판 차르니에츠키를 언급하면서 해외 침략(?) 가능성까지 노래하고 있다. 급기야 폴란드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지배했던 유럽의 판도를 꿈꾼다.
희망의 왕국에는 겨울이 없다. - 폴란드 속담이다. 그렇다. 희망에 사는 사람은 음악이 없어도 춤춘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 위대하다. 실패는 죄가 아니다. 목표가 없거나 낮은 것이 죄다. 공격이 최선이 방어다. 폴란드여 끝까지 죽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