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신경세유표 18-2] 신기한 세계 국가(國歌) 21선

2019-12-02 06:00
선혈이 낭자한 ‘라 마르세예즈’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가장 길고 가장 비장한 국가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

“기뻐하자, 모든 오스트레일리아인이여, 우리들은 젊고 자유롭다.”
Australians all let us rejoice, For we are young and free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로 국가를 교체한(1977년) 호주 국가 <당당하게 전진하라 호주 Advance Australia Fair > 1절 서두

“무어라! 외국의 개떼들이 우리의 고향에서 법을 만들게 된다고!”
Quoi ! des cohortes étrangères Feraient la loi dans nos foyers

-세계 최초로 국가를 법률로 규정한(1795년)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 3절 서두

1. 국가(國歌) 그랜드슬램 챔피언, 선혈이 낭자한 ‘라 마르세예즈’

프랑스의 여덟 번째 국가 '라마르세예즈'는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가사이자 국가 교체회수 세계 최다(7회), 세계 최초로 국가를 법률로 규정(1795년), 헌법상 지위 최고국가(헌법 제2조 3항), 그리고 세계 최고의 인지도 등 각종 부문을 석권한 국가(國歌) 그랜드슬램 챔피언 격이다.

그런데 세계 국가들의 모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라 마르세예즈의 특징이자 가장 큰 단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피에 굶주린 가사다.

"피 묻은 깃발이 올랐도다, 들리는가, 저 들판에서 고함치는 흉폭한 적들의 소리가? 시민들이여, 저 더러운 피가 우리의 밭고랑을 적시도록!”  7개절 가사 행간마다 선혈이 낭자하다.

2. 영화 '미저리'의 모티브? 멕시코 국가 탄생 스토리

세계 최초로 작사 경연대회를 통해 제정된 멕시코의 국가 '조국에 평화를'의 탄생 스토리에서 호러 영화 '미저리(misery)'가 오버랩된다.

1853년 안토니오 로페즈 멕시코 대통령은 거액의 상금을 걸고 국가 작사 경연대회를 한다고 공고했다. 건장한 젊은 여성 과달루페 델 피노는 자신의 약혼자 프란시스코 곤잘레스에게 작사 경연대회 참여를 권했다. 그런데 곤잘레스는 자신이 연애시 전문가이기에 국가 작사는 자기 분야가 아니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녀는 곤잘레스를 침실로 유혹해 그를 침실에 감금해 버렸다. 시 10수를 쓸 때까지 살아서 나오지 못할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곤살레스는 문틈으로 10수를 밀어 넣고서야 석방되었다. 그렇게 강박에 의해 쓴 시 ‘조국의 평화’을 출품했는데 최종 결승에서 만장일치로 최우수작으로 선정됐다.

이듬해 1854년 2월 3일 로페즈 대통령은 곤잘레스에게 최우수상을 시상하면서 조국에 평화를 멕시코 국가의 공식 가사로 정한다고 선포했다. 그리하여 곤잘레스와 델 피노는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호러 영화 '미저리'가 아닌 기적같은 행복 실화 <미라클(miracle)>이라고 할까?

3.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폴란드의 국가 제목은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이다. “폴란드는 우리가 살아가는 한 무너지지 않으리라, 어떠한 외적들이 침략해도 우리는 손에 든 칼로 되찾으리라”라는 1절로 시작한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국가 역시 이렇게 시작한다. 이어서 “우리의 적은 죽으리라! 햇볕의 이슬처럼. 우리, 형제 동포, 우리는 우리 땅에서 행복하게 살리라. 그래 맞다! 살아 있어야만 희망을 걸 수 있다. 생명이 있는 한 희망은 있으니까!"

4. 난 진즉에 그 나라가 쪼개질 것을 알고 있었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체코와 슬로바키아 둘로 쪼개졌다. 그러나 필자는 진즉에 체코슬로바키아가 쪼개질 줄 알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 정부 수립시 ’1절 따로 2절 따로‘ 국가를 제정했다. 1절은 '나의 집은 어디에?' 체코의 오페라였고 2절은 '타트라 산맥에 번개가 쳐도' 슬로바키아 민요다.

그런데 체코 사람은 1절만, 슬로바키아 사람은 2절만 불렀다. 나라가 둘로 쪼개지지 않고 어찌 버티겠는가? 결국 1절 '나의 집은 어디에?'는 체코의 국가로, 2절 '타트라 산맥에 번개가 쳐도'는 슬로바키아 국가로 됐다.

5. 위대한 타고르의 힘

아시아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인도의 대문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인도 국가 '모든 국민의 마음'의 작사자겸 작곡자, 방글라데시 국가 '나의 황금빛 벵골' 작사자다. 스리랑카 국가 '조국 스리랑카'의 작사자·작곡자 아난다 사마라쿤 역시 타고르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사 작곡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 인도 국가 가사 : 그대의 이름을 찬미하고 그대의 행온과 축복을 갈구하고 그대의 승리 영광을 노래하리라
∙ 스리랑카 국가 가사 : 친애하는 조국 그대 스리랑카여. 그대 번영과 축복 속에 풍요로움이 넘치리라.

이처럼 양국의 가사도 비슷하고 직접 국가를 들어보니 선율도 비슷했다. 스리랑카와 방글라데시는 인도와 사이가 썩 좋지 않다. 그러나 대문호에 대한 흠모와 경애는 국경과 종교를 초월하고 있는 것 같다.

6. 가장 길고 가장 비장한 국가

그리스 국가 '자유의 찬가'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국가이자 가장 많이 불리는 국가의 하나다. 가사가 158절이나 된다. 웬만한 시집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길어 1절만 국가로 불린다. 그리스 어느 선박회사 면접시험 때 158절 중 157절을 외워보라는 사장도 있었는데 그 사장 욕을 엄청 먹었다고 한다. 그리스가 올림픽의 발상지 덕분으로 하계와 동계 올림픽 폐막식과 차기개최국 국가에 앞서 항상 그리스 국가가 울려 퍼진다. 그런데 가사의 첫 마디가 무섭다. “날카로운 공포의 칼날로 해방을 이루자”다.

7. 가장 짧고 침울한 국가

“군주의 치세는 천대부터 팔천 대까지 작은 조약돌이 큰 바위가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

일본의 국가 '기미가요'는 세계에서 가장 짧고 (일본의 전통 정형시 와카(和歌)의 5·7·5·7·7의 31글자) 가장 침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국가로 유명하다. 일본의 기미가요는 세계에서 가장 짧고 간결한 가사에다가 전통 아악을 담은 노래로 늘어지고 힘 빠지는 곡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래도 일본의 국가는 자국의 고유한 역사성과 정체성을 담고 있는 찬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8. 가사가 없는 유일한 연주곡

스페인의 '국왕 행진곡' 세계에서 가사가 없는 유일한 국가다. 간결하고 장엄한 52초짜리 군대 행진곡풍 트럼펫 연주곡이 전부다. 왜 스페인 국가에 가사에 없는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없다. 다만 프랑코 총통 독재정권 시절 '척탄병 행진곡'이라는 제목의 군국주의·국가주의가 물씬 풍기는 국가 가사에 질려서라고 한다. 1946년 신 국가 제정 때 가사를 아예 빼버렸다고 한다.

9. 세계 유일, 1인칭 화법 국가

안도라의 국가 '위대한 샤를마뉴', 모든 국가가 국가를 대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안도라의 국가만 1인칭 서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듯 하고 있다.

안도라는 "나." "나는 두 나라 사이의 중립자 공주로 태어났다. 나는 샤를마뉴 제국의 유일한 남은 딸이다."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낀 안도라의 신세를 말해주고 있다.

10. 5개 부분으로 나누어 5개 언어로 부르는 국가

남아프리카 국가 '주여, 아프리카를 구원하소서'다. 1절은 코사어, 2절은 줄루어, 3절은 소토어, 4절은 아프리칸스어, 5절은 영어로 부른다. 악명 높던 인종차별 정책을 벗어나고 인종·종족간 화합을 위한 목적이다. 언어가 다르다 보니 자기 모국어가 아닌 가사 부분에는 웅얼웅얼거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1. 가사는 다르나 곡조는 같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국가의 멜로디는 영국의 국가 멜로디를 쓴다. 에스토니아 국가의 곡조는 핀란드 국가의 곡조를 쓴다. 영국과 리히텐슈타인의 국가,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국가는 곡조는 같으나 가사는 다르다. 그 반대의 경우, 곡조는 다르나 가사가 같은 국가는 전혀 없다. 글로벌 스탠다드 국가에서 음악은 문학의 보충일 뿐이다.

12. '우리의 언어' 알 수 없는 국가

몰도바의 국가 '우리의 언어'는 1994년 몰도바의 새 국가이다.

“우리의 언어는 과거의 깊은 그림자로부터 끓어오른 보물.., 우리의 언어는 불타는 화염... 우리의 언어는 깊은 잠에서... 우리의 언어는..." 

6번이나 등장하는 주어인데 '우리의 언어'가 무엇인지는 적시(摘示)하고 있지 않다. 몰도바의 주민이 '몰도바인'인지 '루마니아인'인지를 둘러싼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풀이된다. 루마니아 국가를 그대로 사용한 독립 직후의 몰도바가 그러한 경우이다.

13. 별빛으로 반짝이는 국가

미국 '별이 빛나는 깃발'은 빛으로 반짝인다. 성조기 국기 자체를 노래하기 때문이다.

"새벽의 여명(dawn’s early light), 빛나는 별빛 (bright stars), 아침의 광휘(morning’s first beam), 물결에 지금 비추다(now shines on the stream), 성조기는 오래도록 휘날릴지어다."

미국의 '별이 빛나는 깃발' 외에도 알바니아의 '깃발을 찬양하라', 소말리아의 '깃발을 노래함', 터키의 국가 '독립행진곡'들은 국기 속의 별과 새벽 초승달을 노래하기에 빛이 가득하다.

14. 자기가 없고 이웃만 있는 국가

슬로베니아 국가 '축배'의 가사다.

“신의 가호 있으라,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든 나라에게. 그날, 태양이 비추는 모든 곳에서 어떠한 싸움도 사라지고, 그날, 모든 사람은 자유가 되어 더 이상 적은 없으리니, 오직 이웃만 있으리라!”

자기는 없고 남과의 관계만 있는 이타적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 유일한 국가 가사이다. 8절까지 있었으나 현재 7절만 부르고 있다.

15.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불렸던 국가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Queen)'는 영국을 비롯한 5대양 6대주에 펼쳐진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에서 국가로 쓰였다. 현재 영국 국가는 뉴질랜드에서 쓰이는 두 국가 중 하나이며, 오스트레일리아, 자메이카, 캐나다, 투발루, 지브롤터, 맨 섬 등에서도 왕실 찬가로 쓰이고 있다.

16. 작사자보다 작곡자가 더 유명한 국가

세계 대다수 국가들은 대체로 작사자가 작곡자보다 유명한 편이다. 작사자·작곡자 둘다 평범한 사람이더라도 작사자를 중시한다. 가사에 자기 나라의 지와 정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독일 국가 '독일인의 노래'는 유명한 요제프 하이든이 작곡했고 오스트리아 국가 '산의 나라, 강의 나라'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작곡했다. 아르메니아의 국가 '교황 찬가와 행진곡'은 동구권의 대표 작곡가 아람 일치 하차투리안이 작곡했다. 바티칸 국가 '교황찬가와 행진곡'은 1869년 교황 비오 9세의 성직 서품 25년제를 축하하여 프랑스의 유명 작곡가 샤를 구노가 작곡했다.

17. 기라성 같은 'VVIP' 작사가들

중화민국(대만)의 국가 '삼민주의'는 중국의 국부 쑨원이 작사했다. 컬럼비아의 국가 '콜럼비아 불멸의 영광'은 라파엘 누녜스 컬럼비아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의 국가 '조국의 행진'은 비센테 로페즈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작사했다.

또한 서부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의 국가 '모두 라이베리아에 만세를'은 바샤이워너 라이베리아 대통령이 작사했다. 타고르 노벨 문학상 수상자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국가를, 노르웨이 소설가·극작가·1903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마르티누스 비에른손은 노르웨이 국가 '그래, 우린 이 땅을 사랑한다'를 작사했다.

18. 이런 게 바로 진짜 민주주의 국가

영국의 보호령이었던 오스트레일리아는 가사와 음악 경연대회(1973년), 여론조사(1974년), 국민투표(1977년)를 통하여 새 국가로 교체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외에도 가사와 음악 경연대회를 통해 국가를 제정하거나 교체한 나라들이 17개국이나 된다. 페루,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태국, 오스트레일리아, 말레이시아, 브라질, 트리니다드토바고, 남아공, 케냐, 자마이카, 네팔, 카자흐스탄, 나미비아, 방글라데시, 남수단이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스위스는 2015년 가사 경연대회를 거쳐 선정된 새 국가를 스위스 의회에 제출한 바 있디.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가에 가사가 없는 스페인도 2006년 2009년, 2015년 가사 선정 콩쿠르를 개최했다. 

19. 가장 훌륭한 대우를 받는 작사자·작곡자

터키 국가 작사자 겸 작곡자인 메흐메트 아키프 에르소이(Mehmet Akif Ersoy, 1873~1936년)다. 마오오스만 출신의 터키 시인, 작가, 학자, 정치인이다. 터키어 보급에 평생 힘쓰고 케말파사를 도와 터키 독립전쟁의 정통성과 애국심을 고취한 터키 국민영웅이다. 터키국기와 에르소이의 작사 작곡한 독립행진곡 액자,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국부)의 사진은 터키 전역의 모든 학교 교실에 걸려 있다.

20. 국가 이름이 애국가인 국가

세계사에 애국가(patriotic song)라는 이름의 국가가 둘 있었고 현재에도 둘 있다. 전자는 포르투갈 왕국의 애국가(1809~1834년)와 러시아 연방의 애국가(1991~2000년), 후자는 대한민국의 애국가(윤치호 작사, 안익태 작곡)와 북한의 애국가(박세영 작사, 김원균 작곡)이다. 그런데 국가(國歌)의 이름이 ‘애국가’(愛國歌)라는 건 마치 우리나라의 국호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애국가(愛國家)라는 꼴이다.

21. 가장 놀라운 국가 순위

BBC통신이 선정한 ‘Rio 2016: 가장 놀라운 국가(The most amazing national anthems) 순위'는 아래와 같다.

1위 러시아 '러시아 연방 국가', 2위 미얀마 '세상 끝까지', 3위 네팔 '백만송이 꽃', 4위 이스라엘 '희망'. 5위 카자흐스탄 '나의 카자흐스탄', 6위 브라질 '브라질 국가, 7위 중국 '의용군 행진곡', 8위 모리타니 '이슬람 국가', 9위 콤고 '콩고의 노래', 10위 파라과이 '공화정이 아니면 죽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