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르포] ①노인택배…7시간 일해 2만1000원 번 79살 조씨

2019-12-13 07:00
중장년층 알바 등 시니어 일자리 체험, 동행 취재
근로계약서·최저임금 없어…일할 수 있단 것만으로도 감사

 

 


우리나라의 66세 이상 노인빈곤율 2017년 기준 43.8%. OECD 평균 17.1%의 두 배를 넘는 수치. 숫자가 보여주는 노인 빈곤은 무겁게 다가온다. '노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도 쓸쓸함과 굽은 허리, 외로움과 같은 단어가 따라온다.

그러나 실버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하는 그들과 함께 뛴 하루는 신속하고, 활력이 넘쳤다. 외로움 느낄 새도 없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던 79세 지하철 택배원은 작은 요구르트 한 병에 소년처럼 활짝 웃었다. 독거와 우울 등 노인들의 부정적 이미지가 넘쳐나는 지금, 2030 못지않게 활력 넘치는 하루를 사는 70대 시니어의 노동현장을 함께 했다.


하루 지하철 비용으로만 1만2000원을 썼다. KTX를 이용한 것도 아니다. 실버 지하철 택배원을 따라다닌 하루다.

1984년 서울메트로는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임승차 제도를 도입했다. 이후 나머지 도시철도도 1991년부터 시행하면서 노인 무료승차 제도가 보편화됐다.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 이용이 가능해지면서 실버 지하철 택배는 생겨났다.

노인 일자리 부족으로 어르신들이 하는 택배 사업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 대기업은 아파트와 주택 등에 물건을 배송하는 일자리를 어르신들에게 제공해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로부터 한국의 대표적인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반면 실버 지하철 택배는 상황이 달랐다. 특히 노인 무임승차제도가 지하철 적자 원인으로 꼽히면서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는 이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지하철 무임승차 찬성과 반대, 그 틈바구니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실버 지하철 택배원들의 노동도 녹록지 않았다.
 
 

조용문 씨가 택배 앱을 통해 주문을 확인하고 있다.[사진=홍승완 기자]

 

"오른쪽 귀가 잘 안 들리니까 왼쪽에서 서서 따라와요."

11월 28일 오전 11시. 1호선 인천행 종로3가역에서 만난 실버 지하철 택배원 조용문(79) 씨는 파란색 방한 마스크와 방한모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찬 바람을 막으며 물건 주문이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추위로 갈라진 손등과 세월이 훑고 지나간 그의 주름진 손은 택배 앱의 오더 버튼을 연신 누르고 있었다. 검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자유자재로 이동하는 그에게서 노인 하면 떠오르는 '수동적' '쇠약' 등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 씨는 해가 뜨기도 전인 아침 7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 8시가 되면 그의 자택이 위치한 경기도 양주역 지하철 1호선에 올라 종로3가역으로 출근한다. 이날 그는 두꺼운 바람막이 점퍼를 입고 턱 아래까지 지퍼를 잠갔다. 아침 날씨는 영하권이었지만 손만은 맨손이었다. 택배 주문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늘 확인하고 만져야 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여름이 나아요. 우리는 지하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지하철은 시원하거든. 겨울은 춥고, 입는 옷도 많아서 번거롭고 그래요."

첫 콜이 떨어졌다. 부천이다. "장거리네요. 시작이 좋아요. 장거리면 보통 15,000원이에요." 조 씨는 종로3가역에서 1호선 인천행을 타면 안 갈아타도 된다며 아이 미소를 지었다. 열차 문이 열리자마자 노약자석을 찾았다. 첫 행선지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그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루 2만 보를 걷는다

"한 공공기관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했어요. 1998년도까지 근무하다가 55살이 되던 해에 퇴직했죠."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그는 기억을 천천히 더듬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퇴직하고 바로 지하철 택배를 했냐고요? 아니에요. 대구에서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어요. 그 후에 서울로 올라와서 지하철 택배를 시작했고요. 그게 한 2010년 정도일 거에요."

그는 자신이 일하는 실버 지하철 택배업체에만 30명~40명이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 중엔 여든이 넘은 '노인'도 있다고 말했다. 한 살 차이지만 그에게 여든은 노인이었나 보다.

오후 1시께 부천역에 도착한 그는 다시 한번 지하철 택배 앱을 켰다. 물품 수령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부천역 3번 출구에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 씨는 한 남성에게서 물건을 받았다. 제법 가벼워 보이는 서류 봉투였다. 40대로 보이는 남성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면서 "잘 전달하겠습니다"라고 한 톤 높여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연신내네요. 여기서 넉넉하게 두 시간 정도는 걸리니까 지하철 타고 조금 쉬어야겠네요."

그는 하루에 보통 1만 5천 보에서 2만 보를 걷는다고 말했다. 일을 시작하기 전 건강했던 건 아니다. 오른쪽 다리는 두 번이나 수술받았고, 불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면제를 먹기도 했다. 그러나 조 씨는 지하철 택배를 하면서 조금씩 건강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에게 하루 두세 건의 배송물건을 옮기는 하루는 적적한 삶의 무게보다 더 가벼운 셈이다.
 
 

조 씨는 매일 아침 아내가 준비해주는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사진=조용문 씨 제공]



"여기서 환승을 하려면 뒤쪽으로 가는 게 더 빠르니까 슬슬 이동할까요." 그는 지하철 앱을 켜지도 않고 2호선 뒤 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년이면 10년 차에 접어드는 조 씨는 지하철 노선표 없이도 환승 정보를 줄줄 꿰고 있었다. "지하철을 매일 이용하니까 어느 칸에서 내리면 빨리 갈아탈 수 있는지 다 알죠. 자연스럽게 몸에 밴 거 같네요." 6호선을 타기 위해 합정역에서 내리자 그의 말대로 6호선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통로가 나왔다.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연신내에서 물건을 배송하자마자 그는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 "물건을 전달한 후에는 꼭 문자로 회사에 보고해요. 물건을 잘 배송했다는 의미죠." 그의 업무 중 절반 이상은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나 휴대전화 비용은 온전히 그가 부담하고 있었다.

"주로 휴대전화를 가지고 일을 하죠. 택배 앱으로 주문을 받고 또 물건 전달한 후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다 휴대전화로 하니까요. 그래서 휴대전화 요금이 3만 원 정도 더 나오는 거 같아요. 따로 회사에서 지원해주거나 그런 건 없어요."

그는 노약자석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에도 틈틈이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업체로부터의 연락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그에게 없는 것은 통신요금지원뿐만이 아니었다.

"근로계약서요? 우리는 그런 거 없죠. 그냥 하루살이 일이죠. 그냥 주민등록증 하나만 있으면 돼요. 최저임금도 요즘 8천 원 조금 넘는다는데, 일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우리는 시급으로 2~3천 원 받는 수준이에요. 사실 우리 노인들을 일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울 따름이죠."

근로기준법 제17조에 따르면 업체는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로자에게 임금, 휴가, 휴일 등과 같은 필수적인 근로 조건들을 작성해 근로자에게 교부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실버 지하철 택배 업체를 몇 군데 옮겨 다녔지만 단 한 번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적은 없다고 했다.

연신내에서 배송을 마치고 종로 3가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휴대폰은 또 한 번 울렸다. "이번에는 명동에서 서류를 받아서 미아 삼거리로 전달하는 건이네요. 이것만 배송하고 오늘은 퇴근해야겠네요."

조 씨는 명동역 3번 출구 인근에 있는 한 중국 여행사에 도착해 직원들과 익숙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는 배송할 서류를 받고 능숙하게 인수증을 작성한 뒤 "잘 배송하겠다"는 인사를 빼먹지 않고 문을 나섰다.

 

조 씨가 서류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사진=홍승완 기자]



오후 4시 그는 마지막 배송업무를 앞두고 택배 앱에 들어가 당일 정산표를 확인했다. 7시간 일한 수입 내역에는 3만원이 찍혀있다. 이 중 업체가 가져가는 수수료 9000원을 제외한 2만1000원이 그의 손에 쥐어진다. 7시간 동안 그가 이동한 거리는 약 60㎞였다.

그는 마지막 배송 건을 완료하기 위해 4호선 명동역에서 당고개행 열차를 기다렸다. 조씨는 택배 앱에 찍힌 배송 주소를 연신 확인하면서도 배송 서류가 담긴 갈색 가방을 꼭 끌어안았다. 그와의 동행을 마치기 전,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답변했다. "중도에 다른 일이 생기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거처럼 일하는 거죠. 단지 그겁니다." 그는 기자에게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단 말을 건네고,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오후 6시. 일을 마친 그에게서 한 통의 문자가 와있었다. "사람들이 운임을 아끼기 위해 오토바이 퀵으로 해야 할 무거운 짐을 지하철 택배로 보내는 것도 애로사항 중 하나입니다." 

지하철 택배 사업 운송약관에 따르면 운송물은 높이와 폭이 최대 30㎝이며 길이는 40㎝ 이내다. 총중량은 5㎏을 초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