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가 제니 홀저 한국어 신작 선보여
2019-12-04 09:14
국립현대미술관 내년 7월 5일까지 개인전
제니 홀저(70)는 40년간 텍스트를 매개로 사회와 개인, 정치적 주제를 다뤄 온 세계적인 개념미술가다. 2017년부터 3년간 진행된 이번 커미션 프로젝트는 서울관 내 서울박스와 로비, 과천관 야외 공간을 새로 해석한 신작들을 선보인다.
1970년대 후반 제니 홀저는 격언, 속담 혹은 잠언과 같은 형식으로 역사 및 정치적 담론, 사회 문제를 주제로 자신이 쓴 경구들을 뉴욕 거리에 게시하면서 텍스트 작업을 시작했다. 작가는 티셔츠, 모자, 명판 등과 같은 일상 사물에서부터 석조물, 전자기기, 건축물, 자연 풍경 등에 언어를 투사하는 초대형 프로젝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간을 활용해 공공장소에서 대중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해왔다. 홀저는 1990년 제44회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을 대표하는 첫 여성 작가로 선정됐고 같은 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구겐하임 미술관(뉴욕, 빌바오), 휘트니 미술관, 루브르 아부다비, 뉴욕 7 월드 트레이드 센터 등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에서는 포스터, LED 사인, 돌 조각 등 작품 3점을 미술관 실내·외 공간에서 소개했다. 초기 작품 ‘경구들’(1977~1979)과 ‘선동적 에세이’(1977~1982) 포스터는 서울관 로비 벽면에 1000장이 넘게 선보였다. 작품은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어조로 작성된 ‘선동적 에세이’ 시리즈 25개 중 다른 색상으로 구현한 12가지 포스터와, ‘경구들’ 시리즈에서 발췌한 문장 240개를 인쇄한 포스터로 이뤄졌다. 한유주(소설가, 번역가)를 비롯한 전문 번역가들이 번역에 공동 참여한 가운데 안상수(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PaTI, 날개)와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들의 협업을 통해 ‘경구들’ 포스터를 처음 한글로 소개했다.
과천관 석조 다리 위에는 작가가 선정한 11개 ‘경구들에서 선정된 문구들’을 영구적으로 새긴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서울박스에는 이번 프로젝트와 동명의 신작이자 처음으로 국문과 영문 텍스트를 함께 소개하는 로봇 LED 사인 ‘당신을 위하여’(2019)가 설치됐다. 길이 6.4m의 직사각형 기둥의 네 면을 둘러싼 LED 화면 위로 작가가 선정한 문학 작품들의 텍스트가 흘러간다. 김혜순, 한강, 에밀리 정민 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호진 아지즈 등 현대 문학가 5명의 작품이 소개됐다. 약 16m 높이 천장에 매달린 사각기둥은 서울박스 공간에 맞춰 구현된 로봇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속도로 위아래로 움직인다. 제시된 내러티브들은 역사적 비극, 재앙 혹은 사회적 참상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이들의 생각을 추적한다.
작가는 "처음에는 추상화가를 지망했으나 실패하고 텍스트를 활용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며 "로봇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은 보다 경각심을 주고 상호작용을 주는 효과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영화 제작자 클라우디아 뮬러의 다큐멘터리 두 편을 서울관 필름앤비디오(MFV)에서 상영한다. 홀저의 작가 여정을 추적한 ‘어바웃 제니 홀저’(2011), 작품 세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줬던 다른 여성 작가들에 관한 견해를 밝히는 ‘여성 예술가들: 제니 홀저’(2017)도 선보인다.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 행사는 전시 기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