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지소미아’ 이후 文정권이 가야할 길
2019-11-25 18:36
[곽재원의 Now&Future] ‘포스트 지소미아’의 암중모색···. 문재인 정권이 한숨을 돌리며 지소미아 정국 이후의 국정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색하는 심사숙고의 기간에 들어갔다.
국내외에 복잡한 문제가 산적했을 때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해 최선책을 찾아가는 게 올바른 접근법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 상황에선 간단치가 않다. 얽히고설킨 난국을 쾌도난마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여기서 잠깐 시계추를 돌려보자.
지난 7월 1일부터 11월 22일까지 한·일관계는 ‘근친증오’의 클라이막스를 연출했다. 거리 제곱에 반비례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세진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은 반대로 근친증오에도 꼭 들어맞는다.
문재인 정권과 아베정권 사이에는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다. 언제 재연될지 모를 불씨도 살아있다. 약속을 안 지키는 나라, 성의 없는 나라라며 서로 엉켜 붙어 이전투구하는 모습이 가라앉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제 한·일 관계를 잘 추스르는 일이 남았지만, 국내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도 생겼다. 한·일마찰이 한창 달아오를 때 터진 조국사태(9월 9일~10월 14일, 조국 법무장관 임명과 퇴진)도 끝났다. 그 파장이 이어지고는 있으나 강도는 약하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권과 국민에게 모두 좋은 방책은 있는가. 아마도 문재인 정권에 가장 필요한 일은 또 다른 문재인 정권을 설정한 다음 아직 찾지 못했고, 활용치 못했던 새로운 유효한 방도를 찾아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물리화학에 이성체(異性體ㆍisomer)라는 용어가 있다. 분자식은 같으나 성질이 다른 화합물을 말한다. 이성체에는 구조 이성체, 기하 이성체, 광학 이성체 등이 있다고 한다. 이 중 ‘광학 이성체’는 물리화학적 성질은 같지만 여기에 빛을 비추면 물질을 통과한 뒤 나오는 빛의 방향이 반대가 된다. 즉 오른손과 왼손처럼 거울에 비쳤을 때에는 똑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두개를 포갰을 때 결코 겹쳐지지 않는 구조를 가지는 물질을 광학이성체(거울상 이성체)라 부른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질 중에는 이러한 광학이성체가 많은데 생명체의 몸속에는 거의 어느 한가지 형태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물질을 인공적으로 합성하게 되면 두 가지 구조가 동시에 다 만들어진다. 문제는 ‘광학이성체’ 중 하나는 인체에 해가 없고 질병 치료효과도 좋지만 다른 하나는 생명을 위협할 만큼 해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화학구조를 가지고 있어도 오른손에 해당하는 부분은 사람에게 ‘약’이 되지만 왼손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케타민’이라는 화합물의 오른손 구조는 진통제로 사용될 수 있지만 왼손 구조는 사람에게 독극물이 되며, 인공감미료로 사용되는 ‘아스파탐’의 오른손은 입안에서 단맛을 내지만 왼손은 쓴맛을 내는 성질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FDA(식품약품국)에서는 모든 약품의 심사에 광학이성체 분리를 필수사항으로 넣고 있다. 양측으로부터 유효성분만을 뽑아내는 연구가 최근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네이버 지식인 참고)
임기의 반환점을 막 돈 문재인 정권은 전반기의 유효성분을 살리고, 후반기의 좋은 물질을 찾아내야 한다. 이것이 ‘문재인 정권의 이성체’이자 바로 또 다른 문재인 정권인 것이다. 물리화학의 이성체를 정치에 빗대보면 정권의 본질(성질)은 똑같이 유지하되 왼손, 오른손의 좋은 점을 가려 쓴다는 것이다. 나쁜 이성체 아니라, 더 좋은 이성체를 의미한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을 딱히 버린다고 선언할 필요도 없고, 대기업을 외면한 채 중소·벤처에 몰입해온 정책을 포기한다고 굳이 밝힐 필요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십여차례에 걸쳐 기업현장과 경제민생투어를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문재인 정권 이성체’의 모습이다.
지난 7월 이후 지금까지 탈일본, 극일본을 외치며 추진해 온 소재·부품·장비 자립화 정책과 범부서적인 경쟁력위원회의 풀가동은 정권에 모멘텀을 주고 있다. 다만 이 모멘텀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같은 시대퇴행적인 것이 아니고,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 확보를 위한 산업기술정책, 기업·산업정책, 국가경쟁력 강화 전략을 포괄하는 미래지향적이고 거시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사회에서 정권에 비춰진 빛이 정권에 약이 되고, 정권에서 사회로 나가는 빛이 사회에 약이 되는 선순환의 모델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 점에서 미디어의 역할도 대단히 중요하다.
내년 세계정세는 매우 불투명하다. 미국대선을 겨냥한 미국 제일주의의 심화(深化), 미·중 패권경쟁의 격화(激化), 영국 브렉시트에 따른 유럽의 열화(劣化), 세계 경제의 버팀목인 제조업의 악화(惡化) 등등의 커다란 악재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경제도 제조강국, 수출대국의 면모를 살리지 못하고 점차 무기력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는 형국이다. 위기론도 팽배하다. 지금이야말로 현재를 강화하고 미래를 담보할 한국의 SWOT (Strong, Weak, Opportunity, Threat)를 확실히 그려야 할 때다. 문재인 정권은 이 점에 유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