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신령열전] 사람얼굴울 한 새가 음악의 원조...'가릉빈가'
2019-10-17 09:18
인도 고대 전설에 의하면 히말라야 설산에 사는 가릉빈가는 일곱 개의 구멍마다 다른 소리가 나는 무시카(Musica)라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소리의 높낮이와 곡조의 조화가 미묘해 듣고 있노라면 참을 수 없는 기쁨의 감정이 일어난다고 한다. 가릉빈가는 천년을 사는데, 수명을 다해 죽을 때가 되면 불을 피워놓고 음악을 연주하면서 주위를 돌며 기쁨의 춤을 추다가 스스로 불속에 뛰어들어 타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따뜻한 재에서 한 개의 알이 생겨나 부화해서 가릉빈가가 되고 황홀한 음악을 연주하다가 다시 천년이 지나면 불 속에 뛰어들어 타죽는 생사의 순환을 계속한다.
아미타경에 따르면 가릉빈가는 2500여년 전 부처가 아미타 극락정토에 대해 설교할 때, 공작·앵무·사리조·공명조 같은 신조(神鳥)들과 함께 나타나 악기를 연주하며 춤을 췄다. 이 새들은 극락정토에서 하루 여섯 번에 걸쳐 아름다우면서도 신묘한 소리를 내는데, 이는 모두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아미타불이 모습을 바꾼 것이라고 한다. 불교 경전에 의하면 고대 중인도 교살라국 사위성(舍衛城) 남쪽의 기원정사(祇園精舍)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날에 가릉빈가가 내려와 춤을 추었고, 묘음천(妙音天)이 가릉빈무(迦陵頻舞)라고 하는 무곡(舞曲)을 연주하였다고 한다.
가릉빈가에 대해 능엄경(楞嚴經) 권1에서는 “그 소리가 시방세계에 두루 미친다”고 하였으며, 정법염경(正法念經)에서는 “그 소리가 극히 신묘하여 하늘과 사람과 긴나라(音樂神)가 흉내낼 수 없으며,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염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대지도론(大智度論) 권28에서는 “이 새는 알 속에서 나오기 전에도 울음소리를 낸다. 그 울음소리는 여타 다른 새들의 것보다 미묘하고 뛰어나다”고 하였다. 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권8 공행품(共行品)에서는 부처의 32길상 가운데 하나인 범음상(梵音相)을 가릉빈가에 비유하면서 “부처의 음성이 마치 대범천왕의 것과 같고, 가릉빈가의 울음소리와 같이 아름답고 곱기 때문에 범음상이라 한다”고 하였다. 화엄경(華嚴經)에서는 “청정·미묘한 범음으로 무상한 정법(正法)을 연출하니 듣는 사람들이 기뻐하여 맑고 오묘한 도리를 얻는다”고 하였고, 장아함경(長阿含經))에서는 “범음이란 대범천왕이 내는 음성으로, 그 음이 정직하고 화아(和雅)하며, 청철(淸徹)하고 심만(深滿)하며, 편주(遍周)하여 멀리 들리는 음성”이라고 하였다. 결국 가릉빈가라는 새가 갖는 불교적인 존재의 의미는 소리에 있으며, 범음(梵音)의 구상적인 표현이자, 법음(法音)을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널리 펴기 위한 부처의 또 다른 화현(化現)이라 할 수 있다.
가릉빈가는 불교가 번성했던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승려들의 사리를 담은 부도나 수막새 기와, 구리거울 등 불교미술 양식에 많이 쓰여졌다. 고승대덕(高僧大德)의 부도로는경북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적조탑과 전남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구례 연곡사의 북·동부도가 유명하다. 와당(瓦當)은 황룡사지를 비롯하여 분황사지·삼랑사지·임해전지 등 여러 유적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천은사지·보문사지·남윤사지 등에서 발견된 와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측면형으로 묘사되고 있다. 머리에는 새의 깃을 꽂은 보관(寶冠)을 쓰고, 한쪽 날개는 위로 치켜올렸으며, 다른 한쪽은 아래로 내린 자태로서 중국 수대(隨代)의 숭산 소림사 각화(刻畵)에 나타나는 가릉빈가와 유사하다. 고려시대 부도탑에 새겨진 가릉빈가는 생황을 불고 있거나 피리, 비파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이 대부분이다. 평창올림픽 개폐회식에도 등장했던 가릉빈가의 신묘한 소리가 듣고픈 요즘이다. <논설고문·건국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