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뒤의 그대? 서양선 심판 받고 동양선 '신선'

2019-10-10 19:43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8)

[박상철 교수]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기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사후세계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차이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이야기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 이집트의 거대건축문화, 중국과 인도의 신화, 마야 잉카 전설 등을 보면 모두 죽음과 영생에 대한 소재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건축물들 중 대부분은 망자를 묻는 묘지이다. 이집트나 마야의 피라미드, 요르단의 페트라 유적, 인도의 타지마할뿐 아니라, 터키 괴베클리 테페라는 곳에서 발견된 구조물도 일만이천년 전 수렵인들이 인골을 매장한 곳이다. 이스터섬의 모아이와 우리나라에 산재되어 있는 고인돌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유적에서 드러나는 공통된 특징은 죽어서 떠나는 아득히 먼 저승은 살아있는 인간이 바로 찾아갈 수는 없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곳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다. 또한 죽음을 삶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았기에 고대 권력자의 주검에는 순장의 풍습이 생겼고, 진시황의 능과 같이 엄청난 병마용이 등장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실물 크기의 목선을 피라미드에 안치하였고 생활에 필요한 의복 가구 화장품 음식 등을 넣었으며 사자의 서라고 불리는 장례문서에 사후세계의 배치, 악마를 퇴치하기 위한 마법 주문을 적어 놓았다.

사후세계 즉 저승에 대한 개념이 동양과 서양이 사뭇 다르다. 서양에서는 기독교 신앙이 주도하면서 생전의 행위에 대한 선악 위주의 사후 평가를 받아 천당과 지옥으로 나누어진다는 이분법적 개념이 분명하여졌다. 그리스신화에서는 망자가 스틱스강을 건너 하데스가 지배하는 명계로 가서 심판을 받아 엘리시움과 타르타로스로 구분되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 가게 된다. 이후 가톨릭은 사후세계의 삼분법적 개념을 제시했다. 이를 묘사한 단테는 신곡에서 사후세계를 지옥, 연옥, 천국의 개념으로 서술하였다. 첫번째 지옥계는 태어나면서 죽은 아기들의 영혼이나 호메로스, 소크라테스, 유클리드, 히포크라테스 등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에 태어난 불운으로 부득불 가게 된 것이다. 진정한 지옥의 고통은 두 번째 지옥계에서 시작된다. 육욕에 빠진 자들이 계속되는 돌풍에 휩쓸려 여기저기 빙빙 돌고, 마지막에는 악마 루시퍼가 대역 죄인들의 머리통을 갉아먹고 있는 곳이다. 지옥의 밑바닥에서 반대편으로 뚫린 굴을 통하여 이르는 연옥은 인간의 의지와 하느님의 섭리가 만나는 곳으로 필멸에서 불멸의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정화의 산 아홉 단계를 통과하면서 인간은 일곱 가지 죄(교만, 질투, 게으름, 분노, 탐식, 육욕, 인색)에서 해방되어 천국에 이른다. 천국은 아홉 권역으로 구성되어 서로 겹치거나 서로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편 중국의 유교와 도교문화권에서는 징벌적 평가에 의한 저승의 배정보다는 자손대대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하거나 자신이 스스로 신선이 되어 사라져가는 모습을 강조해왔다. 사후세계에 대한 중국문화권의 대표적 개념은 BC 12세기 찬술된 산해경에 서술되어 있다. 신화서이며 지리서로 산과 바다와 서식하는 동식물의 용도와 특성을 기록한 백과전서적 박물서이기도 하다. 조선, 숙신, 예맥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청구국, 군자국, 대인국, 백민국, 삼위산, 불함산 등 우리나라와 관련된 지리적 언급이 있으며, 고조선을 최초로 언급한 책이라는 점에서 산해경은 특별하다. 산해경에는 불사의 개념이 기록되어 있으며 각종 동식물 섭취에 의하여 질병이 치료되고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전하였다. 이러한 책에 서술된 사후세계는 죽음을 극복하고 인간이 운이 좋거나 노력을 하면 얼마든지 오래 살 수 있다는 염원이 가득했던 동양적 사고를 일찍이 표현하고 있다.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전통에서는 죽음을 윤회의 단계로 보고 이후 지속되는 삶의 영속성에서 대응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역점을 두었기에 서양문화권의 천당과 지옥으로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는 저승세계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 왔다. 인도에서는 죽음이라는 개념은 원래 없었고 생명체의 윤회 사상이 강하였기 때문에 죽음은 다른 생명으로 변환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육신은 화장하여 깨끗하게 하여 다음 생을 새롭게 맞도록 하였다. 죽음에 대해 생사일여의 담담함을 가졌고 다음 생을 위한 생전의 업을 잘 쌓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불교의 윤회 세계는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의 육도로 대별되며, 지옥은 그 최하층이다. 시왕경(十王經)에 의하면, 죽은 자가 새로 태어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7·7일 곧 49일이다. 그동안 바르도(中陰)에 머물며 일주일씩 일곱 왕에게 생전의 업에 대해 조사를 받는다고 하였다. 한국의 사찰에는 주불을 모신 금당 곁에 명부전 또는 지장전이란 곳이 있다. 죽은 이의 넋을 천도하기 위한 의식을 행하는 곳이다.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서원하고, 성불을 뒤로 미룬 지장보살을 주존으로 모신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 열반 후 미래 미륵불 출현 때까지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물려받은 보살이다. 지장보살이 자비의 마음으로 지옥에 빠진 중생을 구원하여 준다고 믿기 때문에 중국불교나 우리나라의 불교에서는 지옥이란 장소가 무시무시하고 살벌한 곳만으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이 동양의 사후세계는 서양의 사후세계처럼 징벌적 배분이 이뤄지는 곳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배려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다. 동양적 사상에서 지옥은 인과응보의 강제적 징벌에 의하여 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라, 반드시 가지 않을 수도 있는 곳, 또는 가더라도 영원히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이해되었다. 사후세계는 정화된 몸으로 경건하게 찾아가는 곳이며, 윤회의 다른 생으로 이행하는 임시 장소이며 그곳에는 자신을 구원해주는 지장보살과 같은 존재가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동양의 사후세계는 서양의 사후세계와 분명하게 구분이 된다. 이와 같이 동서양 간 죽음에 대한 태도는 크게 다르며 이러한 전통이 문화와 철학 그리고 생명윤리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클 수밖에 없으며 결국 불로장생을 염원하고 추구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도 큰 차이를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