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촛불은 검찰개혁 민심...與면죄부 아니다

2019-10-01 18:10

[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서초동 검찰청 앞 촛불집회는 여론 변곡점이 될까. 청와대와 민주당은 그렇게 여기는 듯하다. 여론조사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줄곧 수세에 몰렸던 청와대와 민주당에는 다행이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는 검찰개혁이다. 조국 장관 일가가 보여준 위선적 언행과는 별개다. 잘못된 검찰수사 관행에 대한 분노다. 촛불시민들은 검찰수사를 정치행위로 규정한다. 특정 장관 찍어내기,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한 부적절한 검찰권 행사라는 인식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촛불집회를 동력 삼아 조국 블랙홀을 돌파할 여지가 생겼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강도 높게 주문했다.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는 표현까지 써가면서다. 조국 블랙홀 때문에 국정은 마비됐다. 국론 분열은 두 말할 나위없다. 국민들은 이제 그만 조국 정쟁을 끝내길 바란다. 그러나 야당은 멈출 기세가 아니다. 한국당은 3일 대규모 맞불 집회를 개최한다. 국민을 볼모로 삼는 세 대결이라는 점에서 비난이 비등하다.

여권은 서초동 촛불민심을 ‘면죄부’로 오판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검찰개혁에 힘을 보탰지 ‘조국 수호’를 외친 것은 아니다. 집회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이런 목소리는 높았다. 여전히 절반을 넘는 시민들은 조국 장관 임명이 “잘못됐다”고 한다. 또한 중도층은 ‘검찰 개혁’과 ‘조국 수호’를 구분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는지에 있다. 그리고 세 대결로 변질된 조국 사태를 대하는 인식이다. 시민들을 거리로 불러낸 정치는 못난 정치다.

광장정치, 거리정치는 정치 실종이다. 경청과 논의가 배제된 광장과 거리에는 반목과 갈등만 증폭된다. 청와대와 국회 울타리에서 정치가 수렴되지 못한 때문이다. 지난 두 달여 동안 조국 사태는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는 정치복원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시민들을 가정과 일터로 되돌릴 책임이 있다. 세 대결을 방치한다면 무책임하다. 이런 와중에 원혜영 의원이 던진 화두는 눈길을 끈다. 정치복원을 위한 현실적 처방전이다.

원 의원은 협력과 소통을 바탕에 둔 정치복원을 제안했다. △개헌 △선거제 개편 △국회 개혁이다. 대립과 갈등을 넘어선 일하는 정치, 일하는 국회가 종착점이다. 그는 첫째 과제로 개헌을 꼽았다. 국정운영 틀과 방식을 새롭게 하자는 것이다. 핵심은 대통령 권한 분산, 의회와 협의하는 분권형 개헌이다. 여야 5당은 지난해 12월, 개헌 논의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한 해가 다 가도록 잠자고 있다. 개헌 논의를 다시 깨울 때다.

다음은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을 비례시키는 선거제도 개편이다. 현행 선거제도에서 득표율과 의석은 크게 불일치한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서울과 경기에서 각각 57.2%, 58.9%를 얻었다. 그런데 의석 점유율은 96.2%, 96.6%였다. 2018년은 민주당 차지였다. 민주당은 서울 50.9%, 경기 52.8%를 득표했지만 의석 점유율은 각각 92.7%와 95.1%였다. 민의가 왜곡되는 구조다. 원 의원은 일당이 독식하는 광역의회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제안했다.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38.3%를 얻었지만 의석은 과반(50.8%)을 차지했다. 18대 총선 역시 한나라당은 37.5%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51.2%를 차지했다. 반면 소수정당은 10% 이상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의석은 3%에 그쳤다. 거대 양당 구도는 심화되고, 소수정당은 설 자리가 없다. 원 의원은 “민심을 반영하지 못하는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고는 ‘일하는 정치, 일하는 국회’를 이루기 어렵다”면서 “비례성을 높여 정치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협치를 통한 국민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국회 개혁이다. 취지와 달리 국회 선진화 법은 ‘식물국회’를 초래했다. 그렇다고 폐기가 능사는 아니다. 보완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교섭단체가 주도하는 국회운영 관행을 개선하자는 것이다. 덧붙여 의사일정 강제구속이다. △임기 개시 후 7일에 개원 국회 △짝수 달 임시회 개회 △법안소위 월 2회 이상은 별도 합의 없이 지키도록 강제하자는 주장이다. 정치권은 심도 있는 논의로 답해야 한다. 생산적인 정치복원을 위해서다.

허균은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뿐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백성을 항민(恒民), 원민(怨民), 호민(豪民)으로 나누었다. 항민은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원민은 문제의식은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호민은 때가 되면 사회 모순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백성을 뜻한다. 서초동 촛불시민이 바로 호민이다. 문제는 호민들 판단이다. 당장은 나를 지지하지만 거꾸로 창(槍)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조국 장관 임명을 반대하는 시민도,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시민도 같은 호민이다.

1992년 대선에서 패한 부시는 클린턴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를 받을 즈음이면 당신은 우리의 대통령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당신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이다. 성공을 위해 응원하겠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정치문화를 먼 나라 미담으로만 들어야 하나. 민주당과 한국당에 과감한 인식 전환과 변화를 촉구한다. 그럴 때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는 정치문화를 만든다. 이제 우리도 국력에 걸맞은 정치문화를 만들 때가 됐다. 그것은 5선 중진 의원의 고언(苦言)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