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시계 돌린 허미정…‘서른에 꽃 피운’ 골프 인생

2019-09-30 09:18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 ‘21언더파’ 압도
나흘간 1위 지켜…생애 첫 ‘와이어 투 와이어’
결혼 후 골프 즐기게 돼…두 달 사이 2승 수확
한국 선수 시즌 ‘절반’ 13승 합작…최다승 ‘-3’


한국 여자골프 선수들은 현역 수명이 짧다. 나이 서른만 넘어도 베테랑으로 불리며 은퇴 시기를 고려하곤 한다. 기혼의 여성 골퍼는 손에 꼽을 정도다. 최근 국내 무대에서 ‘명품 샷’을 선보였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31승의 ‘전설’ 줄리 잉스터(59‧미국)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 잉스터는 “골프에 열정만 있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꽃다운 서른의 허미정.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허미정(30)이 한국 여자골프 후배들에게 신선한 메시지를 던졌다. 서른이 넘어 활짝 꽃을 피웠다. 지난해 1월 결혼 이후 오히려 더 강해져 돌아왔다. 5년에 한 번씩 우승해 ‘5년 주기설’을 지켰던 허미정은 최근 두 달 사이 LPGA 투어 2승을 수확했다. 그것도 나흘간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은 생애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으로 압도적인 실력을 과시했다. 허미정은 “스트레스 없이 즐기려고 노력한 덕분”이라며 웃었다.

30일(한국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내아폴리스의 브릭야드 크로싱 골프클럽(파72)에서 LPGA 투어 인디 위민 인 테크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 마지막 날. 3라운드까지 17언더파를 쳐 2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허미정의 입가에는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대회 첫날 버디만 9개를 몰아쳐 리더보드 맨 윗자리를 차지한 뒤 줄곧 1위를 지킨 여유였다.

허미정은 이날도 ‘보기 프리’ 경기를 펼쳤다. 4번 홀(파4)에서 첫 버디를 잡은 허미정은 9번과 10번 홀(이상 파4)에서 연속 버디를 낚아 단독 선두 자리를 굳힌 뒤 13번 홀(파4)에서 다시 버디를 추가해 사실상 우승에 쐐기를 박았다, 2위 나나 마센(덴마크)을 6타 차로 따돌렸다. 마센이 마지막 2개 홀에서 연속 버디를 기록했으나 허미정과는 4타 차나 났다.
 

[허미정의 여유 넘치는 미소.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허미정은 최종합계 21언더파 267타로 우승하며 상금 30만 달러(약 3억6000만원)를 벌었다. 2009년 세이프웨이 클래식에서 투어 첫 정상에 오른 허미정은 2014년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 지난달 스코틀랜드 오픈에서 우승을 이뤄내 ‘5년 주기’로 3승을 쌓았다. 하지만 투어 네 번째 챔피언 트로피를 수확하는 데는 불과 7주밖에 걸리지 않았다.

허미정은 올해 LPGA 투어에서 고진영(4승), 김세영, 박성현, 해나 그린(호주), 브룩 헨더슨(캐나다·이상 2승)에 이어 6번째로 2승 이상을 달성한 선수에 이름을 올렸다. 허미정이 한 시즌에 멀티 우승을 차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 허미정은 이 대회 우승으로 시즌 상금 28위에서 15위(84만5067 달러), CME 글로브 포인트 26위에서 10위로 껑충 뛸 전망이다. 지난해 결혼 후 부진을 겪었던 그가 투어 데뷔 이후 최고의 해를 맞은 셈이다.

허미정은 우승 직후 동료들로부터 진한 우승 축하를 받았다. 그는 이번 대회 역시 우승 비결로 꼽은 건 ‘즐기는 골프’였다. 그는 “경기 결과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특히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꼭 해보고 싶었는데 정말 행복하다”고 마냥 웃었다.
 

[우승 후 트랙에 키스 세리머니를 펼치는 허미정. 사진=AP 연합뉴스 제공]


허미정이 시즌 2승을 쌓으며 한국 선수들의 LPGA 투어 시즌 최다승 합작 신기록도 탄력을 받았다. 올해 LPGA 투어 26개 대회 가운데 절반인 13승을 합작한 한국 선수들은 남은 6개 대회에서 3승을 더하면 2015년과 2017년의 15승을 뛰어넘게 된다.

허미정은 시즌 3승에 대한 자신감도 드러냈다. 그는 “지금처럼 즐기면서 한다면 또 다른 좋은 기회가 올 것 같다”며 “다음 주 대회는 집이 있는 텍사스주에서 열린다”고 반겼다. 10월 3일 개막하는 볼런티어스 오브 아메리카 클래식은 미국 텍사스주 더 콜로니에서 열린다. 허미정은 결혼 후 이곳에서 신접살림을 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