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코미디꾼' 차승원이 돌아왔다…착한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
2019-09-05 07:00
188㎝의 큰 키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차승원(49)이 능청스레 코미디 연기를 선보이자 관객들은 충격에 빠졌다. 관객들은 천연덕스러운 그의 연기에 놀랐고 또 깊이 빠져들고 말았던 시절이 있었다. 너무도 기다리던 그가 코미디를 입고 돌아왔다. 영화 '신라의 달밤'(2001), '광복절 특사'(2002), '선생 김봉두'(2003), '귀신이 산다'(2004), '이장과 군수'(2007) 등으로 2000년대 코미디 영화 부흥기를 끌어낸 차승원의 감각은 10여년이 지나도 여전히 반짝였다.
오는 11일 개봉하는 영화 '힘을 내요, 미스터리'(감독 이계벽)도 마찬가지다. 차승원의 '반전 매력'을 십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이장과 군수' 이후 12년 만에 코미디 연기로 돌아온 그는 '역시는 역시'라는 찬사를 듣기 충분했다.
'힘을 내요, 미스터리'는 아이 같은 아빠 '철수'(차승원 분)가 갑작스레 찾아온 어른 같은 딸 '샛별'(엄채영 분)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담아냈다. 차승원은 이번 작품에서 아이보다 더 아이 같은 아빠 철수를 연기했다. 가던 길도 멈추게 하는 잘생긴 외모와 달리 아이보다 더 순수한 모습으로 '반전 매력'을 선보였다.
영화의 무드나 개그 코드 등이 취향이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차승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요, 미스터리'가 강하게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거들었다.
"따듯한 영화에 대한 열망과 더불어 이계벽 감독에 대한 막연한 호감이 있었어요. 오래오래 보고 싶을 정도로 심성이 좋더라고요. 일로 만났지만, 외적으로도 만나고 싶을 정도로. 제가 작품을 고르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거든요."
"이 감독 외에 제 마음을 흔든 건 따뜻함이에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기도 하죠. 이른바 '착한 영화'인데, 아쉬운 건 그런 영화들이 촌스럽고 심심하다고 여겨지는 거예요. 영화적인 다양성도 필요하고, 최근 흉흉한 일도 많으니 이런 따뜻하고 착한 영화가 한 번쯤 나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계벽 감독의 따뜻한 시선은 '힘을 내요, 미스터리'의 위험 요소를 완화시켰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지적 장애를 가진 주인공 등을 불편하지 않게 한 것.
"코미디와 희화화는 정말 한 끗 차이예요. 저는 이 감독이 왜곡된 시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고, 그를 믿고 있어요. 희화화에 관한 우려가 없는 이유죠."
극 중 철수는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당시 피해자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소방대원이다. 이 사고로 지적 장애를 얻어 아이만큼 순수해진 캐릭터다.
"나름대로 고민과 고심을 거쳐 만든 캐릭터예요. 이 감독이 여러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었는데, 레퍼런스로 삼지는 않았어요. 마음이 동요하지 않더라고요. 다큐멘터리 속 인물들을 마음속에 담아두려고 했고 (연기적으로) 흉내 내는 건 피했어요. 철수 캐릭터의 60~70% 정도는 제가 이미지로 만들어 낸 거예요."
또 차승원은 영화의 주요한 줄기인 대구 지하철 참사에 관해 "아픈 사건을 확대해 보여주는 것보다, 몸을 던져 피해를 막으려던 이들에 관한 존경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제가 20대일 때부터 50대가 될 때까지 한 번씩 큰 사고가 벌어졌어요. 모두가 아프고, 큰 충격을 받았던 일들이죠. 때마다 고마운 사람들도 생기는데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는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이 작품을 통해 그들을 생각하고 싶었고 말하고 싶었어요. 웬만한 희생정신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들에 관한 고마움과 옆에 있는 가족에 관한 고마움 등을 '힘을 내요, 미스터리'에 담고자 한 거죠."
데뷔 31년을 맞은 차승원은 코미디부터 사극·범죄·스릴러·멜로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해왔다. 특히 올해는 김지훈 감독의 '싱크홀'과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으로 낯선 면면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싱크홀'은 완전한 생활인을, '낙원의 밤'은 '독전' 캐릭터를 써먹을 수 있는 인물을 보여줄 거 같아요. 요즘 흥미로운 게 의외인 사람들에게 영화 제안이 들어온다는 점이에요. '왜 이 역할을 내게 주지?' 싶다니까요. 그들이 나의 어떤 모습을 봤으니까 이런 캐릭터도 주는 거겠죠? 그들이 나를 어떻게 써먹을지 기대되고 궁금해요."
가능성 있다는 말을 듣고 싶은 베테랑 배우. 그는 관객들에게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다며 평소에 더욱 잘해야 한다는 철칙을 밝히기도 했다.
"제 바람은 관객들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는 거예요. 가끔 댓글을 보면 모질게 욕먹기도 하잖아요. 그 정도만 아니고 싶다는 거죠. 너무 잘하지도, 너무 못나지도 않게. 하하하. 불호(不好)보다 호(好)를 더 얻기 위해서는 평소에 잘해야 해."
있는 대로 너무 애쓰지 않되 맡은 바는 충실히 해내야 한다는 차승원의 말이 오랜 시간 고민하고 풀어낸 '답'처럼 느껴졌다.
"크게 좋은 일도, 크게 나쁜 일도 없이 흐르는 거. 그게 좋은 거 같아요. 나이를 먹다 보니 그렇더라고요. 활활 타오르는 것도 부담스럽고 제 몫을 충실히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만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