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대들' 조진웅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 예인…초심 깨달아"
2019-09-03 07:00
"시나리오를 읽고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극 중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하는 예인들의 철학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대목이 있는데 뭔가 뜨끔 하더라고. 그걸 외면하고 지내다가 '아, 나 예인이었지' 하고 퍼뜩 정신 차려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민망하고 미안하고…."
지난 21일 개봉한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감독 김주호)은 조선 팔도를 무대로 풍문을 조작하고 민심을 흔드는 광대들이 권력의 실세 '한명회'(손현주 분)에 발탁되어 '세조'(박희순 분)에 대한 미담을 만들며 역사를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우 조진웅(43)은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너무도 가깝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자기 자신을 '광대'라 여기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메시지는 물론 대사 하나 하나까지 그의 폐부를 찌르는 듯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마냥 코미디만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뾰족하고 예리했죠. 시나리오를 읽고 '재밌다' '좋다'는 기분보다 '아! 들켰다!'는 생각부터 했어요. 이따금 저의 초심을 외면하기도 했었으니까."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조진웅의 일문일답
시나리오를 보고 '들켰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 극 중 '예인은 하기 싫은 건 죽어도 안 한다'는 대사가 있다. 예인의 자존심과 철학에 관해 이야기 하는 대목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아, 이게 예인의 초심이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제까지 그걸 외면하고 살다가 문득 '나 예인이었지'하고 퍼뜩 깨닫는 느낌이었다. 가끔 정의를 외면할 때도 있고, 초심을 잊을 때도 있다. 외압에 적당히 타협하기도 하는 비겁하고 못난 모습을 가졌다. 그런데 '광대들'이 그 부분을 딱 꼬집어내더라.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 막상 만났을 때는 안 들킨 척 쿨하게 굴었지. 하하하! 그러다 술 좀 마시니 태도를 싹 바꿔서 '이거, 이거 갑시다!' '이런 건 찍어야 돼'라고 했다. 아마 저 뿐아니라 여기에 출연한 배우들 모두 그런 걸 느끼지 않았을까.
배우들끼리도 이 부분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을 거 같다
- 그렇다. 모이면 이런 이야기를 하는 편이지. 우리영화는 조연배우들도 거진 연극판에 계신 분들이라 '광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고민도 했다. 한 배우와 술을 마시던 중, 그가 제게 '난 이런 걸 왜 외면하고 살았을까'라고 하더라. 울지는 않더라도 가슴으로 뜨거운 걸 나눴다.
배우들끼리는 공감이 커도, 관객에게는 동 떨어진 이야기처럼 느낄 수도 있을 텐데
- 제가 걱정하는 바다. '관객이 이런 이야기를 좋아할까?' 고민했다. 그런데 영화 부제로 '풍문조작단'이 붙으니 무게가 조금 덜어지더라.
평소 스스로를 '광대'라 부르지 않았나. 영화의 제목을 보고 퍼뜩 조진웅이 생각날 정도였다. 제목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 오히려 '광대들'이라는 제목을 반대한 게 저였다. 너무 드러낸다는 느낌이고 이미지가 세게 느껴지더라. 거기다 우리나라 영화에 'OO들'이 왜 이리 많은지. '광대'도 센데, 한국영화서 흔한 'OO들' 심지어 부제는 '조선OOO' 너무 많다는 느낌이었지.
대중적인 이미지로 접근하고자 했나보다
- 가족 시사회가 열렸을 때, 중학생 조카도 (시사회에) 불렀다. 조카부터 동생, 어머니, 아버지까지 자리에 오셨는데 그럼 얼추 10대부터 20대, 30대, 60대, 70대까지 (관객 나이가) 구성된다. 중, 고등학생 조카들은 '삼촌 영화 너무 재밌어요. 제 인생영화에요'라고 열렬하게 반응하고 30대부터는 '수고했어 형' 하고 미지근하게 반응하더라. 아버지도 그렇고. 하하하. 그래도 가족들이 모두 함께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10대부터 70대까지, 모두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다
-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영화. 그런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저는 아이가 없지만, 아이가 있다면 언제든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머니, 아버지도 모시고 볼 수 있는 영화.
젊은 층이 영화를 좋아했다는 말이 인상 깊다. 역사적 기록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내는 모습들이 인상 깊었는데.
-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게 말이 돼?' 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이게 말이 되네!' 하고 감판했다. 홍칠의 특수효과들이 재밌었는데 '와이어'를 '고래 힘줄'로 치환해 만들어내는 게 재밌더라. 런닝머신과 진상(윤박 분)이 그린 난초 등등. 이 영화의 재기발랄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광대팀의 분위기는 어땠나? 팀워크가 중요한 작업이었을 거 같은데
- (김)슬기부터 (김)민석이, 윤박까지 처음 호흡을 맞춰본 친구들인데 왜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지 알겠더라. 후배들이 성실하고, 연기를 참 잘한다. 그게 예쁘더라. 함께 작업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광대들'부터 일정이 빠듯하다. 차기작인 영화 '퍼펙트 맨'으로 관객들과 만나고 10월 초에는 최우식과 '경관의 피' 촬영을 시작한다
- '경관의 피'를 찍어야 하는데 (이규만)감독님이 자꾸 살을 빼라고 한다. '독전'에서 살을 많이 뺐더니 감독님들이 다 '그걸로 하자'고 한다. '광대들'은 '패딩턴' 같은 곰돌이 느낌이라 좋았는데. 요즘은 만나는 작품마다 '살 빼자'고 해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