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웅의 데이터 政經] 조국대전과 역지사지

2019-09-03 10:12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선거는 좋은 이념, 반듯한 정부, 정책기반이 목표가 아니다.” 선거의 새로운 개념은 “상대방을 증오한다. 의회와 행정부에 들어가고, 우리는 상대를 이길 것이다”이다. 이렇게 “공화·민주당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이슈를 중심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는 대신 스포츠경기에 열광하는 팬들처럼 행동한다.” 즉, “평균적인 공화·민주당원에게 선거란 양당의 정체성이 위태로워지는 집단경쟁에 불과하다.” 캔자스대학 패트릭 R. 밀러와 파멜라 J. 코노버는 유권자의 정치행동 및 당파와 당파성의 세기 등을 꾸준하게 연구해온 정치학자들이다. 두 사람은 연방선거연구소(ANES) 데이터를 사용해 2010년 미국 중간선거에 나타난 전국 유권자의 태도를 분석했다(참고로 미국은 70년 이상 축적된 ANES<미시간·스탠퍼드대학 공동운영> 데이터가 패널조사와 방문면접조사, 시계열조사 등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정확도 면에서 일반적인 여론조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뜻밖에도 결과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모두 이념이나 이슈보다 선거 승리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공화·민주당원 41%가 정책이나 이데올로기적 목표보다는 무조건적 선거 승리가 더 중요하다고 한 반면, 35%만이 정책이나 정치에 참여하는 게 더 중요한 동기라고 동의했다. 심지어 38%나 되는 공화·민주당원은 당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좋다고 인정했다. 특히 “도둑질, 상대 유권자 제압, 부정선거, 상대편에 대한 신체폭력, 거짓말, 마타도어 등을 스스럼없이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결론적으로 정당에 대한 충성심은 합리적인 이성이 아니라 맹목적인 정당 간 경쟁과 무의식이 그 원천이라는 사실이다.

밀러와 코노버는 당파 갈등이 정치과정에서 갈수록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것이 정치양극화를 부추긴다고 주장한다. 특히 밀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치열한 선거가 후보와 이슈에 대해 건전한 토론을 유도한다고 믿지만, 선거데이터 연구결과는 그 반대라고 밝힌다. 또한 그는 유권자들이 격렬하게 선거를 치를 때 이러한 정당 충성도가 가장 강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거가 치열할수록 당신이 상대방을 더욱더 미워하게 만든다. 유권자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180도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가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대신에 선거가 우리를 이웃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증오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밀러는 이 연구가 지난 25년간 정치양극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유권자 개개인 안에서 점점 더 자신을 격리시키는 현상을 초래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연구는 2015년 4월 캔자스대학 '과학뉴스'에 실렸으며 관련 논문으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휴스턴대학 정치학교수 스콧 클리퍼드도 2008년 대선연구결과를 재분석했다. 그 역시 ANES 데이터에서 6만1420명의 패널을 추출해 무려 21개월 동안 조사를 실시했다. 클리퍼드가 내린 결론은 ‘충성도의 차이가 정당의 힘(세력)을 예측한다’이다. 그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공화당원의 충성도 값은 0.71이고 민주당원은 0.63이다. 즉, 공화당원이 1.13배 더 강했다. 당원 안에서 강력한 충성도의 확률 또한 공화당원은 19%이고 민주당이 17%로 공화당이 다소 우세했다. 결국 고정표(=충성도가 높은 유권자)가 많은 공화당에 대항하기 위하여 민주당이 강구해야 할 수단은 부동층 공략뿐이다.

플로리다주립대 정치학자 더글러스 아흘러는 '정치저널' 2018년 7월호에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현실 속의 공화당원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은 21%에 불과하지만 민주당원은 이를 44%로 인식한다. 이와 반대로 민주당의 주된 지지기반인 노조원은 현실에서는 11%에 그치지만 공화당원의 인식 속에서는 46%로 나타난다. 따라서 ‘당파적인 신념이 고착화되면 새로운 정보를 서비스해도 좀처럼 교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상대방을 과대하게 평가하려는, 일종의 확증편향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 가능하다.

선거는 매우 진화한 전쟁이다. 총칼 대신 ‘말’을 사용한다는 점이 질적으로 다르다. 대선이나 총선과 같은 전국단위 정기 선거는 행정부와 의회 권력을 놓고 다양한 세력이 말의 경연을 펼친다. 그 결과 유권자로부터 잘 선택 받은 ‘말’을 내놓는 소수의 정당과 정치인만이 일상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현대정치를 대의민주주의 또는 정당민주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민주주의 역사가 수백년 된 미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 등지에서조차 포퓰리즘이 창궐하는 이유는 바로 의회와 행정부 구성에서 유권자를 대의하는 기능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놓고 전국 단위 선거 때 이상으로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조국 대전(大戰)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그렇지만 역지사지해 보자. 탄핵을 당한 정당 간판으로 나선 제1야당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득표율 24.03%, 무려 785만명의 지지를 얻었다. 44연패라는 부끄러운 신기록을 세운 열린우리당이었으나 2007년 대선 득표율은 26.14%, 득표수는 617만표이었다. 이 두 정당의 하방경직성은 어제오늘 이루어진 게 아니다. ‘묻지 마 친○○’ 또는 ‘무조건 반××’ 현상은 240년 민주주의 선진국 미국에서조차 무척 자연스럽다.

최 광 웅(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