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의 100투더퓨처] ② 그래도 인간이 늙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있다.
2019-08-26 17:39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퓨처)’ 시리즈 연재를 시작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기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투더퓨처'의 미래 귀환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실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편집자주>
우리에게는 유전적으로 노화가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늙어야 하는가? 노화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생명체가 보여주는 대사적 완벽함 때문이다. 생체 내 대사 과정은 100%의 효율성과 과오발생 0%의 하모니를 이루면서 이루어진다. 어떤 화학적 공정도 50%의 효율을 가지기도 어려운데, 이러한 생체의 특성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생체의 구조 역시 순환계, 호흡계, 내분비계, 근골격계, 소화계, 뇌인지계 어느 것 하나 군더더기 없이 균형있게 갖추어져 있다. 이와 같이 신체의 구조와 기능이 철저한 제어와 조정을 통해 생명현상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서 초래되는 노화현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듦(aging)은 일정한 성장연령까지는 점점 더 좋아지고 커지는 자람인데 반하여, 어떤 나이부터는 점점 나빠지고 줄어드는 늙음으로 이어져 간다. 왜 어떤 나이부터 자람이 늙음으로 변하여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몰랐다. 적어도 유전적 이유는 아니라고 보면서도 늙어지는 현상은 분명하기에 커다란 생물학적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노화라는 것이 생명의 필요악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살아간다는 것은 영양소를 섭취하여 에너지로 바꾸어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생체가 절대 필요로 하는 것이 산소와 포도당이다. 이런 두 가지 필수 요인이 바로 생체 노화를 초래하는 주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한편 포도당도 생체에 필수적인 에너지의 기본재료이다. 그런데 포도당과 단백질을 혼합하여 열을 가하면 갈색으로 변하는 마일라드반응이 일어난다. 이 반응은 식품을 조리하여 외관상 맛있게 보이게 하는 요인으로, 포도당의 카르보닐기가 단백질의 특정아미노산의 아미노기와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황색이나 갈색으로 변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반응이 생체 조건에서도 일어날 수 있음이 발견되었다. 당뇨병 환자에서 포도당이 헤모글로빈에 결합되어 있는 당화혈색소가 발견된 것이다. 세라미 박사는 노화는 바로 체내에 느린 속도로 일어나는 마일라드 반응에 의하여 생성된 고도당화물질(AGE)이라고 불리는 복합적 산물이 축적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이와 같이 부적절하게 당이 결합된 단백질들은 생체의 구조와 지지대를 이루는 단백질을 손상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콜라겐의 경우 인대와 혈관벽, 피부 등을 이루는 유연한 단백질인데 그 작용을 원활하게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례는 신경섬유의 다발성병변과 플라크에서도 발견되어 노인성치매의 원인으로서의 상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생체 내 중요한 생리작용을 하는 여러 가지 단백질들이 고도당화를 받게 되면 유연성을 상실하여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음이 보고되었다. 그러나 아직 생체에는 생리단백질의 고도당화를 억제하거나 차단하는 장치가 알려진 바 없다. 오로지 생체는 체내 당 수준을 철저하게 유지하는 인슐린을 포함한 정교한 내분비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나이가 들어 이러한 시스템이 원활하게 유지되지 못할 때 노화가 촉진된다는 노화의 고도당화설이 제안된 것이다.
생체가 생명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소와 당을 반드시 소모하여야 하는데, 이러한 산소와 당이 철저하게 제어되지 못하는 경우 결국은 생체에 위해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 없어서는 안 되지만 결국 생체에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는 필요악(necessary evil)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런 요인에 의하여 생체에 손상이 누적되어 노화는 피동적으로 초래되는 것이다. 노화가 생체 주도적인 프로그램에 의하여 능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생명현상의 결과 부수된 작용에 의하여 초래된다는 주장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바로 산화적 손상을 효율적으로 조절하거나 생체 내 당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방안을 강구하게 되면 노화를 제어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